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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산을 좋아했다!!

Kweather보다 더 정확한 mountain weather

매년 음력 3.4일

2021.4.15일은 엄마의 기일이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싸리꽃(조팝나무) 하얗게 흐트러지던 날 내 가슴과 땅속에 엄마를 묻었다.

싸리꽃 피는 계절이 오면 마음속에 묻은 엄마와의 추억이 수면 위로 떠 오른다. 그 추억을 그동안 가슴에 묻어두기 바빴는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하나씩 다듬어지는 생각들을 사유하게 되었다.


엄마는 산을 좋아한다.

봄, 가을, 겨울 산에 갔다. 이유는 계절마다 다르다. 봄에는 산나물 뜯으러 가고, 여름엔 숲이 우거지니 잠시 쉬었다가 가을엔 오미자며 열매를 따러가고, 초겨울엔 폭설 오기 전 약초를 캐러 간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산에 가면 한보따리 들고 왔다. 엄마에겐 최대 보물일게다.


산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그 일손 많은 농사를 지으면서도 틈틈이 산에 갔다. 씨를 뿌려야 하는 바쁜 농번기라도 비가 오면 농사꾼은 쉬는 날이다. 하지만 엄마는 봄비가 내리면 먼산 바라보다 비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간다. 한 손엔 포대가 들려있다. 엄마가 나간 지 한나절쯤 지나고 나면 손에 들고 간 포대에 산나물 가득 허리춤에 매달고 온다.


한 번은 인근 동네에서 살인사건이 있었다. 그것도 산에서. 그때는 어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성범죄였음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한동안 범인을 잡지 못해 인근 동네는 모두 어수선했다. 홀로 길을 가지 않았고, 산에는 절대 가지 말라고 아버지는 엄포를 놓았다. 저녁에 머리 감고 뒤뜰에 물을 버리는 것(옛날엔 부엌에서 데운 물로 머리를 감았다. 부엌 바닥에 하수구가 없었다.) 조차도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어디선가 범인이 나타나 흉기를 들이밀고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어수선할 때, 엄마는 산에 간다고 했다. 마침 아버지는 집에 없고 나와 동생은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은 불안의 최고조였다. 산에는 제대로 갔는지, 엄마 뒤로 범인이 와락 덮치는 건 아닌지, TV 연속극을 보면서도 드라마에 몰입할 수 없었다. 가을 지나 겨울로 가는 길목, 강원도 산자락에 일찌감치 어둠이 내렸다. 엄마를 기다리던 마음이 이젠 불안을 넘어 자리에 앉지도 못할 만큼 걱정이 됐다. 큰 길가를 응시하고 있는데 동생이 소리친다.


"엄마다! 언니, 엄마 왔어."


이 얼마나 반가운 소리인지 나는 놀래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노심초사 기다리던 마음이 안심이 되었는지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엄마는 허리춤에 둘러맨 포대를 늘어뜨리며 흘러내리지 않게 허리를 최대한 굽히고 어그적 걸어오고 있었다. 허리춤 구부정한 것이 어둑한 곳에서 그림자만 봐도 알 수 있는 엄마가 맞다.


집으로 들어오는 엄마를 보며 왜 이제 왔냐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고 소리치니 누가 할머니 같은 나를 잡아가겠냐며 너스레를 떠신다. 주섬주섬 엄마가 내려놓은 포대를 펼치니 더덕, 잔대 뿌리 등 이름 모를 약초가 한가득이다. 이게 뭐라고 그 위험한 산을 홀로 다녔을까 싶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는 이 뿌리들을 캐어다가 말려 약재상에 팔았다. 솔솔 한 쌈짓돈이 되어 딸들에게, 아버지에게 흘러갔다.


전원주택에 이사 온 지도 벌써 만으로 5년이 지났다. 5년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오며 깨달았다. 먼산에 새싹이 움트기 전 냉이, 달래가 땅에서 올라온다. 먼산에 새싹이 움트고 꽃이 하나씩 피어나는 시기에 맞춰 드룹, 엄나무 순, 고사리, 산나물들이 순서대로 올라온다. 산나물이 땅에서, 나무에서 자라나는 것도 꽃이 피는 순서와 같다.


매화-벚꽃-진달래-개나리-과일나무 꽃들-아카시아...

냉이-달래-드룹-머위-쑥부쟁이-쑥-명이-돌나물-고사리...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그 순서는 크게 변함이 없다. 그 고장 온도나 음력에 따라 올라오는 시기는 다르지만 정확한 시계는 산이다. 산에 있는 나무에 물이 오르고, 싹이 올라오고, 순이 자라는 것에 따라 산의 색깔은 달라진다. 산의 색깔은 곧 농사철이나 나물을 수확할 시기를 알려준다. 이 진리를 깨닫는데 5년이 걸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시골 텃밭을 가꾸며 자연히 익히게 된 농사 시계다.


나는 늘 엄마가 바라보는 앞산을 멀뚱멀뚱 같이 바라봤다. 17년 전 엄마는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한 번은 물었다. 

"엄마 산에 뭐가 있어? 뭘 그렇게 봐?"

"산은 정직해. 먹거리도 주고, 돈도 주지. 산에 가면 내가 뿌리지 않았는데 거저 얻는 게 많아. 조금만 움직이면 돈이 되는데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지"

또 다른 이유는 산을 타며 몸을 움직이며 노동을 하니 모든 시름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었을 터다. 시름 잊고 만끽하는 피톤치드의 향은 온몸이 다시 태어나는 느낌일 것이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나도 보인다. 엄마가 말하는 산이 어떤 의미인지. 봄비가 오고 나면 산은 색깔이 확연히 달라진다. 그 산을 보며 나물 캐고, 농사도 시작하면 된다. 뉴스보다 더 정확한 Kweather 다. 

2021.4월의 앞산과 텃밭에서 자라는 명이
2016년 4월 앞산에서
[정원가의 열두 달] 책에서 카렐 차페크는 말한다.
이제 세상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은 변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당신은 정원에 비가 내리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햇살이 비치면 그건 정원을 밝게 비추는 햇살이다. 저녁이 되면 정원이 휴식을 취하겠구나 생각하며 기뻐한다.  (정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하지만 엄마는 내게 말할 거다.


"이제 세상을 바라보는 너의 시선이 변했구나. 비가 오는 날이면 너는 산에 비가 내리고 있다고 말할 것이고, 햇살이 비치면 그건 산을 밝게 비추는 햇살이고, 저녁이 되면 산이 휴식을 취하겠구나 생각하며 기뻐하겠지. 나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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