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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의미 없다 느꼈던 시간에도 반전이 있을까

브런치 작가뿐만 아니라, 누구나 내 이름으로 된 책을 한 권 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을 것이다. 꿈 정도가 아니라 이를 악물고 버티며 글 쓰는 이유가 어쩌면 이 책 한 권에 대한 염원일 수도 있다. 나 또한 언제부터인가 인생 끝자락에 내 이름을 새겨 넣은 책 한 권을 꼭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2월 나는 6번의 원고 투고를 거쳐 여러 출판사로부터 책을 내보자는 프러포즈를 받았다. 제안이 온 출판사 가운데 한 군데 만을 선택해야 하는 행복한 고민 후 계약서를 쓰고 4개월간 집필의 시간을 가졌다. 출간 기획서를 책으로 변신시켜야 한다는 부담으로 계약서 쓴 후 두 달은 80% 분량의 내용을 미친 듯이 써 내려갔다. 나머지 20%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거나 셀프 교정을 보며 시간을 보냈는데 생각지도 않게 20% 분량을 채운다는 가벼운 생각이 두 달이나 걸렸다.


마지막까지 원고를 놓지 못하고 새벽을 밝히던 어느 날,

감히 책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지금의 순간이 너무 감사했다. 창밖으로 어스름 여명이 밝아 오고 날이 밝아옴을 알리는 닭의 외침에도 전혀 피곤하거나 힘들다 불평하지 않고 새벽을 맞이하며 내 머릿속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지겹도록 들여다본 원고가 어찌하여 반갑단 말인가?(출판사에선 원고만 봐도 토할 정도가 되면 탈고하라고 일러줬다.) 원고를 손에 들고 있는 이 순간이 반갑다 못해 낯설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를 곱씹고 있는데 문득 지난 20대 초반 시절 매일 출근하던 그곳이 떠올랐다.


찬바람이 불어오던 가을 아침이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김 부장님이 스포츠 신문을 너덜거릴 때까지 뒤적거리다가 마침 낱말풀이가 끝났는지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그제야 생각난 듯 아직 아침을 못 먹었다며 컵라면 물을 끓인다. 내게도 권하더니 익숙한 손으로 컵라면 겉 비닐을 까고 스프를 담은 후 달걀 한 개를 톡, 깨서 넣었다. 이내 끓는 물을 부으니 생 달걀이 하얗게 익으며 보글거린다.


"컵라면에는 달걀이지. 달걀을 넣어야 영양보충도 되고 든든해져. 미스 고도 한 개 넣어봐"

  

김 부장님을 따라 나도 달걀 한 개를 깨서 컵라면에 넣었다. 뜨거운 물을 부으니 달걀흰자가 투명에서 하얗게 변신하며 익었다. 잠시 뚜껑을 덮어두고 익힌 다음 휘휘 저어 바닥에 깔린 노른자까지 섞은 후 후루룩 한 젓가락 입에 넣으니 하얀 달걀흰자가 몽글몽글 딸려 올라왔다.


"와~ 역시 컵라면은 이맛이지. 이 달걀 맛에 내가 산다니까"


김 부장님은 아침을 거른 설움을 그렇게 달걀 하나에 모두 씻긴 듯 순식간에 국물까지 비워냈다. 인천에서 동대문까지 매일 오고 가는 일이 지칠 만도 하지. 친척 회사라 월급 제때 나오지 않아도 때려치운다는 말은 여직원 앞에서만 내뱉을 뿐 대표 앞에서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회사는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외국 디자인 책을 스캔하고 번역하여 펴내는 출판사였다. 미대나 디자인 학과를 대상으로 책을 팔았지만 두껍고 비싼 책이 밥벌이가 될 만큼 팔리진 않았다. 내가 디자인 학원을 졸업하고 추천받아 채용된 그곳은 직원이 김 부장, 디자이너 1명, 디자인 겸 잡무를 보는 내가 전부인 작은 출판사였다. 그래도 출판사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한 작가의 후손이 운영하는 곳이라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며 출근하게 된 곳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디자인의 '디'자도 꺼낼 수 없었고, 커피를 타거나 심부름을 하는 일이 고작이었다. 당연히 전화를 받거나 사무실을 지키는 것도 내 몫이었다. 출근과 동시 강아지처럼 회사를 지키며 눈치 보는 일과를 끝내고 퇴근을 하면 별 일없이 하루가 끝난 것에 대한 안도감에 온몸은 파김치가 되었다. 이놈의 회사를 왜 다니고 있으며 앞으로 뭘 해야 내 한 몸 먹고살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가족들은 딸이 디자인 학원을 나와 버젓이 제 밥벌이한다며 대견했을 터다. 그런 엄마에게 회사가 어렵다는 티를 낼 수가 없었다. 퇴근하고 저녁이면 눈물, 콧물에 밥 말아먹으며 설움을 삼켰다.  


그 와중에도 재밌었던 건 어쩌다 책 번역일이 시작되면 학생들이 교정을 보러 아르바이트를 왔다. 대학생인데 틈틈이 책 교정을 보며 용돈을 버는 문예창작과 학생이라고 했다. 두 명이 왔는데 하루 종일 원고만 들여다보다 갔다. 1990년대 초반이니 당시만 해도 교정 보는 일은 원고에 일일이 색깔 펜으로 체크해야만 했다. 학생들이 가고 난 뒤 나는 심심한 김에 원고를 뒤적거리며 훑는다. 의미 없는 행동이지만 짧은 시간에 오탈자를 몇 개 더 찾고야 만다. 오탈자 찾는 일이 그땐 왜 그리도 재미있던지... 아마도 전문가도 찾지 못한 것을 발견해 내는 탐정이 된 기분이랄까?


그래도 매일 보는 얼굴이 아닌 새로운 얼굴의 아르바이트생들이 오면 사무실 분위기가 한껏 상기되기도 했다. 원서가 번역되고 새 책이 나오면 팔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리라. 하지만 책이 나오고 반짝 한 달은 바쁜 듯하다가 이내 평정심을 찾고 김 부장님은 반품되는 책을 찾아오느라 분주하다. 반품 책이 모두 수거되면 또 하릴없이 스포츠 신문이나 뒤적거릴 뿐 사무실은 파리만 날리는 일의 연속이었다.


나는 의미 없이 반복되는 일상과 더 이상 발전이 없는 출판사에 다닐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아니 아르바이트비 같이 쥐꼬리만 한 내 월급조차도 감당이 안 되는 재정에 회사는 파산 직전이었다. 디자이너 언니는 담배만 뻐끔거리다 진즉 퇴사하고, 출근해 봐야 김 부장님의 푸념을 듣는 일이 전부였기에 눈칫밥도 더 이상 목에 걸려 먹기 힘들 정도였다. 전화조차 울릴 일이 없어지고 나니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그때 내 눈치를 보며 무척 미안해하던 김 부장님은 지금 어찌 지내실라나? 벌써 28년 전이니 호호 할아버지가 되어있을 것 같다. 그 후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판계를 떠났다.


남의 책이 아닌 내 책을 내기 위해 원고를 보며 셀프 교정을 보던 새벽녘,

20대 초반 그 시절이 떠오른 건 어떤 이유일까? 내 심장 저 아래 꾹꾹 눌러 담았던 쓰잘 때기 없다 여긴 그 시절이 툭! 떠오른 이유가 진정 무엇이라는 말인가? 정말 궁금했다. 원고를 탈고하고 머리를 식히며 뒹굴거리다 문득 스쳐가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인생에서 가장 의미 없다 느꼈던 시간에도 반전이 있을까?'


바로 그거였다. 사실 그 시절이 나는 낭비한 시간이라고 여겼다. 배울 것 없고, 무료했던 시간들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내 원고를 뒤적이며 나는 알았다. 어쩌면 지금의 내 모습이 이미 그때 예비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무료하게만 느꼈던 시간의 반전이다. 혼자 덜렁 사무실에 남아 있을 때면 쌓인 책들을 들추며 책 냄새를 맡았고, 유명 시인인 출판사 대표의 아버지 시를 음미하며 무료함을 삭였다.


어쩌면 무료하다고 쓰잘 때기 없다고 느꼈던 그 시간, 내 정신과 오감은 책을 더 사랑하고 더 갈구했는지도 모른다. 


남영동, 충무로에 있는 인쇄소를 심부름으로 들락거리며 종이 냄새에 매료되었는지도 모른다. 표지 디자인까지 끝내고 인쇄물을 가제본 한 샘플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동안 내 눈에 비친 인쇄소의 모습을 마냥 신기해하며 이것저것 귀찮게 질문을 해댔다. 펄럭이는 인쇄물을 크기에 맞게 잘라 본드를 칠하고 만든 샘플북을 가장 처음 만져보는 그 느낌은 어떤가? 산고의 고통을 겪고 나온 아이를 받아 든 산파의 기분만큼 뿌듯함이 '나도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리라.


그 옛날 쓰잘 때기 없다고 느꼈던 나의 그 시절처럼, 지금 누군가 의미 없다 여기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기회이며,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느꼈으면 좋겠다. 쓸모없다 생각하는 그 순간을 기록하여 쓸모 있는 것으로 변신시키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것이 글 쓰는 사람의 반전이 아닐까?

또한, 어려운 코로나 시대를 살아내는 모든 사람에게 반전의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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