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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딸이 넷이라 좋겠어요!

한밤 중 걸려온 부재중 전화가...


어젯밤 늦게 막냇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부재중 알림에 무슨 일일까? 궁금하여 얼른 전화를 걸었더니 친정아버지가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서 내리다 엉덩방아를 찧었다는 거다. 황량한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아프고 움직이기 어려워 근심하다 긴급히 교회 목사님께 연락을 드려 집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근래 들어 고관절이 좋지 않아 치료를 받고 있던 터라 더 걱정이 되었다. 침상에서 꼼짝을 못 하시겠다는 아버지를 1시간 근거리에 사는 큰언니가 한밤에 달려가 언니 집으로 모셨다.


여든 중반의 연로한 나이지만, 지금껏 살아오시면서 특별히 아픈 곳도 없으셨기에 가족들은 가슴이 내려앉는 듯이 철렁했다. 한밤중에 달려가 침상에서 꼼짝 못 하고 계신 아버지를 마주한 큰언니는 가슴이 떨렸을 것이다.


아침에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다행인 건 어제 보다는 덜 아프시다고 했다. 나 또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얼마나 놀라셨냐고, 엉덩이만 좀 아프시다니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오후에는 큰언니와 병원에 가서 CT 사진도 찍어보고, 물리치료도 받기로 했다. 아버지 근거리에 큰언니가 살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참 감사한 일이다.


아버지의 버스 낙상으로 딸들이 분주하다. 최근 고관절이 약해지신 아버지를 위해 간호사인 막내는 병원에 검사예약을 해 놓은 상태다. 이전 같으면 홀로 버스 타고 이동했겠지만 이제 홀로 이동하는 일은 위험천만해 보인다. 병원 예약일이 금요일 평일인 데다 모두 회사를 다니고 있으니, 이럴 땐 프리랜서인 내가 움직여야 할 참이다. 금요일 오후 약속도 있고, 수업도 있지만 언니들과 동생의 노고에 뒷짐질 수 없는 일, 약속은 연기하고 오전에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방문하고, 오후엔 막내제부에게 아버지를 맡기고 수업을 가기로 했다.


동생, 언니와 긴급회의를 마치고 나니 그나마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는 딸이 넷이니 사위까지 긴급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8명이다. 거기에 성인인 손주들까지 하면 10명이 넘는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가 낳은 딸들로 인한 재원이기도 하다. 딸들을 재원에 비유하여 다소 불편하게 들릴지 모르나 아프신 분을 이웃에게 맡길 순 없는 일이기에 가족이 있다는 것은 참 든든한 일이다.


우리 자랄 땐 딸만 넷이라고 엄마 살아생전 구박 아닌 구박을 받기도 했는데 딸이 넷이니 돌아가며 한 번씩만 찾아가도 아버지는 매주가 가족과 지낼 수 있다. 나는 요즘 책 쓰며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가지 못했는데, 지병이 있는 둘째 언니는 아버지 뵈러 갈 때마다 쌀이며 필요 용품들을 채워놓곤 한다.


가족이란 그런 것 같다. 네가 못한 것 내가 못한 것을 세고 있을 것이 아니라,

네가 잘한 것, 내가 잘한 것 칭찬하며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말이다.

아침 통화 중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에효, 이젠 나이만 들고, 아프기만 해서 참 큰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아픈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여든이 넘도록 쓴 육체니 고장이 날 수밖에... 이 현실을 아버지나 자식인 우리 모두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 좋은 상황을 위해 노력하면 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는 그래도 좋으시겠어요. 딸이 넷이라서요."


두발로 걷던 아버지가 이제 세발로 걸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나도 그런 미래가 가까워 오는 것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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