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병환으로 병원 투어가 시작되었다. 힘든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낼 수 있을지 그저 막막할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버지를 픽업하고 아버지와 가족들의 현재를 기록하는 일뿐이라는 것이다. 이 또한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고 뭐라 할 사람도 있겠으나 글 쓰는 작가로서 후대에 남길 것은 따뜻한 기록이라 생각한다.
지난번 아버지의 버스 낙상 사고 <아버지는 딸이 넷이라 좋겠어요>를 올렸었다. 우린 단지 낙상으로 인한 뼈에 금이라도 갔을까 싶어 걱정이었는데, 우려한 일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봄부터 고관절이 아프다는 아버지를 모시고 정형외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치료래봐야 X레이를 찍고 물리치료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많이 아파하는 아버지에 비해 병원에서의 진단은 고령으로 인한 퇴행성 소견이 전부였다. 연세가 84세, 모두 그럴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나와 언니는 의사에게 세밀한 검사를 해봐야 하는지 재차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전혀 이상이 없으며 뼈도 연세에 비해 건강하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우린 속절없이 물리치료를 하며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이번 낙상 사고를 만난 것이다.
이렇게 구구절절 말하는 이유는 의사의 말을 맹신하지 마시라고 전하고 싶다.
이런 오진이 병원 투어를 하는 환자를 낳는 악순환이지 않을까.
여러 달 물리치료로 아버지는 나았다 아팠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번 버스 낙상 사고를 만난 것이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동생이 진료를 봤던 서울에 있는 정형외과를 찾았다. 고관절이 계속 아팠다고 하니 세밀한 검사에 들어갔다. MRI 필름에는 일반인이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종양이 있었다. 종양으로 인해 뼈가 밀려 통증이 있었다는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우린 모두 갈 곳 잃은 방랑자처럼 할 말을 잃었다. 누구라도 말을 꺼낼라치면 터져 나올 울음을 그저 입술 꾹 깨물고 있을 뿐이다. 우리 앞에 놓인 현상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 하지만 다행히 막냇동생이 병원 근무자라 전장에서 총알을 받으며 견뎌내고 있다. 어쨌건 우린 동생이 한번 거른 의사의 말을 전해 들을 테니 말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딸들과 사위들 모두 한마음이 되어 조용히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어제는 서울에서 검사를 마친 아버지를 원주에서 보던 진료일에 맞춰 이동을 해야 했다. 평일 이동이라 내가 담당하기로 하고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여 동생이 사는 구리로 이동했다. 중간에 사고가 있었는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구리에 도착하니 약속보다 40분이 늦었다. 성격 급한 아버지는 늦는다고 전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 오냐 전화를 했고, 가는 도중 차가 막혔다고 하니 그걸 계산해서 일찍 출발해야지 그러냐며 또 한마디 하신다. 나는 간밤에 작업하느라 늦게 잠을 잤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뭐 그것도 못 기다리느냐고,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급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올라오지만 그저 웃음으로 상황을 넘겼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버지랑 이동하는 중 내내 마음이 불편할 것이 뻔하다.
아파트 주차장을 벗어나 밖으로 나오니 전날 비가 와서인지 날씨가 화창하다 못해 맑고 신선했다. 깨끗한 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 주었다. 차도 막히지 않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아버지를 모시고 원주 언니네 도착하니 형부가 대기하고 있다. 먼길 힘들지 않았느냐며 인사를 건네고, 장인 어르신 배 고플까 얼른 점심을 차려낸다. 따끈한 북엇국이다. 나는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기에 그냥 가려는데 한사코 한술 뜨라고 내 것도 차려주셨다. 마침 이동시간에 짬이 생겨 형부가 차려준 밥상을 마주했다. 무, 두부, 파, 북어 등 간단하게 끓여내었는데 북엇국이 아주 구수했다. 아버지는 큰사위 끓여준 북엇국을 뚝딱 비우셨다. 살뜰히 약을 챙기는 큰 형부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물도 따라주고, 변비 올까 염려하며 장 건강 보조식품도 뜯어 드리는 정성이 딸인 나보다 더 살갑다.
우리 가족에게 닥친 아버지의 병환이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아버지와 허락된 시간 잘 보내고 싶다. 1년이든 10년이든... 그 이상 천국까지도 말이다.
준비가 된 사람은 영감이 머리를 스치는 그 찰나의 순간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실리어 블루 존슨-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것이리라. 큰 형부 덕분에 아버지와의 따뜻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