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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기일에, 친구 아버지 조문을 다녀왔다.

엄마의 18주기에는 온 가족이 모일 수 있을까?


실낱 같은 기대를 했지만, 오미크론은 빼놓지 않고 가가호호 방문이 이어져 친정 가족들이 돌아가며 아프기 시작했다. 만약을 대비해 플랜 A, B, C를 계획해 놓고 엄마 기일 전 주말에 다녀오자고 의논을 했지만 기관지와 코, 면역이 약한 친정식구들에게 오미크론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결국 이번 엄마 기일은 나 홀로 다녀오기로 결론을 내고 모두들 마음 편히 건강챙기기를 다독였다.


아버지를 위한 음식을 챙겨 출발했다.

고민이 됐던 건 우리 집 상황도 작은 아이가 두통을 호소해 여러 번 신속진단검사를 실시했고, 나 또한 출발 전 검사를 하며 코쑤심을 참아야 했다. 다행히 음성이라 시골을 갈 수 있었다.


지난 토요일, 날씨는 화창했고, 나뭇가지에서는 하나 둘 꽃망울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때를 놓칠세라 상춘객이 쏟아져 나왔고, 언니에게 들려 아버지 약을 가져가야 하는데 1시간 40분 거리를 두배나 걸려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조금 일찍 도착하면 아버지와 같이 갈까 싶었는데 늦어지는 바람에 나 홀로 엄마 산소를 가야 했다. 어차피 늦은 김에 조급한 마음 내려놓고 주변 풍경을 살피며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지나는 길에 안흥찐빵마을을 들려 찐빵을 한 아름 샀다. 아버지와 사이좋게 나눠먹어야겠다고 말이다.


강원도 산수를 구경하며 엄마가 계신 뱃재공설묘지로 향했다. 곳곳에 농사를 짓기 위한 준비가 시골 풍경을 한껏 구수하게 했고, 만나는 트랙터의 바쁜 걸음에 느긋이 뒤를 따르기도 했다. 공설묘지에 도착하고 보니 엄마를 위해 마음만 잔뜩 가져온 터라 드릴 것이 없는 게 아닌가? 아버지와 사이좋게 나눠 먹으려 했던 찐빵을 들고 엄마산소를 찾았다.


찐빵 상자를 올려놓고 맛있게 드시라며 두런두런 얘기도 나누고, 기도하고, 사진도 찍었다. 포동포동 맛있는 찐빵 하나를 들고 한입 베어 물었다. 냠냠 맛있게 먹어보지만, 엄마가 드시지 않는 찐빵은 목이 메일뿐 목구멍에서 넘어가질 않는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아버지가 계신 시골로 달렸다.

여유로운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내비게이션이 고속도로가 아닌 지방도로 나를 안내했다. 좀 돌아가는 듯 싶었지만 그냥 이끄는 대로 가보자는 마음에 지나간 곳은 '금당계곡'이다. 계곡을 따라 달리지만 차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시원하게 흐르는 강물을 보니 내 마음도 시원해지는 것 같다.

드디어 아버지 집에 도착이다. 아직 저녁 전이지만 간식으로 드시라고 찐빵을 내어 놓으니 한자리에서 5개를 드신다. 아버지께 산소에서 엄마는 찐빵을 안 드시더라고 했더니 웃으신다. 하지만 아버지는 찐빵이 좋다고 하셨다. 아버지도 나처럼 엄마가 만든 찐빵을 생각하며 그리움으로 드실테다. 엄마의 찐빵은 우리에게 각별하다. https://brunch.co.kr/@naarya/185

찐빵을 맛있게 드신 아버지는 말동무가 그리우셨는지 내가 가는 동선마다 따라다녔다.

동네 누구 자녀가 결혼을 한다더라, 병원은 언제 또 가야 한다, 요즘은 입맛이 참 좋더라, 다리는 불편하지 않고 걸어 다닐만하다며 쉴 새 없이 이야기하신다.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다가 이야기가 끊어지실 때쯤 엄마의 18기 추도 기념예배를 아버지와 조촐히 드렸다. 꽃처럼 예뻤던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며 사후엔 천국에 계신 엄마를 꼭 만나자고 다짐하며 예배를 마쳤다.

저녁이 되어 삼계탕을 따끈히 데우니, 한사코 먹고 가라고 하신다. 혹여라도 아빠와 식사하다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마스크를 벗지 않겠다고, 이번엔 조촐하지만 다음엔 놀러도 가자며 아버지를 다독였는데, 마스크를 벗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먹지 않는 딸이 못내 안타까웠나 보다.

"난 이제 살만큼 살아서 아쉽지 않다, 그냥 같이 먹어도 돼"


아버지의 말에 그럼 각자 떨어져서 먹자고 하고는 아버지는 주방에서, 나는 거실 끝에 앉아서 각자 식사를 마쳤다. 커피도 툇마루에 앉아 마시니 안타까운 나머지 한마디 하신다.


"나원참! 전쟁도 이런 전쟁이 있을까, 사람 사는 게 이런 세상이 다 있냐?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못 가니 사람이 사는 게 아니지"


어둑어둑 해 지자 짐을 하나씩 챙겼다. 들기름 짜 놓았다며 한병 담아 주신다. 들깨 한말이면 기름이 1.5L 1병과 500ml 1병이 나온다고 했다. 감자가루 만들어 놓은 것도 있다며 감자가루도 한 봉지, 얼려놓은 옥수수도 한 봉지, 마침 마을회에서 오리고기를 주었는데 양념육을 만들어 왔으니 생고기는 나보고 가져가란다. 아버지 챙겨주시는 사랑을 담고 보니 어느새 대형 장바구니 한가득이다.

아버지 안아 드리는 대신 있는 힘껏 손 흔들고 자동차 시동을 켰다.

"아버지 다음에는 바닷가로 맛있는 것 먹으러 가요"

"그래, 조심히 올라가거라"


아침부터 언니네 집-안흥찐빵마을-엄마 산소가 있는 뱃재-금당계곡-아버지 집-집으로 귀가까지 500km를 다녔다. 하루가 참 길다.


'휴, 큰 숙제 잘 마쳤구나. 바이러스라도 있을까 걱정되어 아버지와 손 한번 못 잡았지만, 이렇게라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주일에 늦잠도 자고, 온라인으로 예배도 드리고, 아이들 프로그램도 다녀왔다. 이제 쉴 일만 남은 것에 안도하며 마당일을 살피는데 카톡이 울린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친구 아버지의 부고 안내장이다. 어려운 시기는 있었지만 병환을 잘 이겨내신다는 말을 전해 들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란 말인가?

연락을 받고 중학교 동창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월요일에 조문을 가자는 일정을 잡으며 생각했다.


'엄마는 미리 아셨을까? 엄마의 기일도 당겨서 기념하게 하다니'


엄마의 기일에 친구 아버지의 조문을 갔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하늘의 시계가 내 발걸음을 장례식장으로 향하게 하는구나!


코로나 시대 전에 만나고 몇 년만의 만남이지만 늘 만났던 것처럼 반갑고 좋다. 단지 이것이 축하의 자리면 좋았으련만... 그래도 나의 친구가 위로가 되었길 바라는 마음이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최근 사망자가 급격히 늘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가볍게 넘어간다고도 하지만 어르신들은 겪지 말아야 할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사망자가 늘어나 화장터는 포화 상태고, 4~ 5일장이 된다니, 모두 조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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