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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설계사와
계약을 파기했다.

신뢰를 저버린 자는 미련 없이 떠나라

따뜻한 봄날,

노후를 위해 집을 장만한다며 흰머리 희끗희끗하신 분이 집을 보러 오셨다. 집이야 뭐 재건축하면 허물 테니 둘러볼 게 뭐 있겠나 싶지만 꼼꼼히 보시고 이것저것 질문도 하셨다. 그리곤 이내 부동산에서 계약서 쓸 테니 내일 도장을 가지고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주택 가격을 자꾸 깎으려는 여느 부동산보다 값도 더 잘 받아주셨다. 천운을 만난 것일까? 두 가지 조건을 요청했는데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기분 좋게 매매계약서를 작성했다.

두 가지 조건은,
-집을 지을 중도금이 필요하니 잔금처리는 중도금과 잔금으로 나누어 줄 것을 요청했다.
-집이 지어질 동안 월세로 살 수 있는지 양해를 구했더니 얼마든지 있으라고 했다.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이루어진다는 신기루 같은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기억하며 9개월을 기다렸는데 빌라 매매도 순조롭게 이뤄지니 하늘이 도우셨음이 느껴졌다.

마치 미리 대본을 짜 놓고 우릴 기다린 행운의 여신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착각임을, 고난 없는 길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빌라 매매가 결정된 후, 

부동산에서 소개받아 토목설계를 의뢰하고 건축설계는 토목설계 대표에게서 소개를 받아 의뢰를 맡겼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실수였다. 으레 지인소개라고 하면 믿고 맡기는데 두 곳 모두 대표들이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두 회사 대표는 술친구였다. 결론을 말하자면 준공허가를 위해 마지막 토목설계보완서류를 시청에서 요청했는데 제때 제출이 되지 않았다. 허가는 받아야 하고 토목설계사 대표는 연락이 두절됐다.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시청 담당자와 여러 번 통화를 했고, 결국 무작정 담당자를 찾아갔다. 


설계사가 연락이 안 된다고 입주를 못하겠으니 방법을 달리해 달라고 조르다시피 했다. 참으로 난감했다. 허가서류가 순서대로 나란히 진행되어야 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무런 설명 없이 일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건축설계사는 설계도가 토목건축과 일치하지 않아 설계 수정을 요청했는데(토목공사에서 측구관 설치 시 여분의 공간이 없었다) 수정을 하지 않았고 의뢰인인 우리와 연락도 원활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시청 관계자와 통화했다고 거짓으로 둘러댔다. 이미 수정된 서류가 접수 안되었다고 시청 담당자와 방금 확인했는데 말이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토목설계-토목공사-건축설계-건축공사가 일정이 짜여 있고 이 모든 것이 톱니바퀴 돌듯이 하나로 돌아갈 때 완성이 된다. 당시만 해도 작은 평수는 현장감사를 따로 두지 않아도 되었기에 직영 건축에 뛰어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하다. 공사비를 조금이라도 아껴야 했기에 우리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처음 건축이라지만 챙겨야 할 것이 너무 많았고,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과연 옳은 것이 뭘까' 


건축설계비용은 1/2 지불이 된 상태였지만 고심 끝에 건축설계사를 변경하기로 했다. 손해를 감수하고 건축설계사와의 계약을 파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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