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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꽃 필 무렵

토지 매입하고 건축 박람회 탐방하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는 법이다.
한 마리 토끼는 놓아주어야 한다.

드디어 토지매매 계약서를 두 손에 받아 들었다. 그동안 살고 있던 빌라도 매매로 내놓고, 박람회 일정도 알아보았다. 박람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닌지라 미리 일정을 알아보아야 한다. 가급적 박람회를 몇 회 가보길 권한다. 


딱히 그곳에서 물건 계약을 한다기보다 현재 건축시장의 트랜드도 살피고, 가격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을 소매로 저렴히 살 수 있다. 건축박람회는 우리에게 또 다른 것을 눈뜨게 했다. 아이들과 함께 가니 경제공부도 되고, 건축공부도 되었다. 여러 가지 체험도 할 수 있어서 살아있는 체험전을 다녀오는 느낌이다. 우리 아이들은 캠핑용품과 인테리어, 먹거리 구경을 좋아했다.


왼쪽_클라이밍 체험 / 오른쪽_농기구, 연장등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 디자인을 보고 연장보관 창고를 비슷하게 만들었다.


건설사에서 집을 소개하기 위해 건축을 통째로 샘플 전시한다. 전시되어 있는 집의 구조와 인테리어를 보며 아이들은 신기해했다. 최첨단을 달리는 트랜드다 보니 신기한 것 투성이다.

"우와~ 우리 이제 이런 집에서 사는 거야?" 둘째가 물어본다.

"음... 이런 집에서 살고 싶어?"

"응. 여기 너무 좋아. 2층도 있고"

"엄마 나도, 2층이 내 방이었으면 좋겠어" 큰아이도 2층이 좋단다.

많은 아이들이 2층 방을 꿈꾸듯 우리 아이들도 2층에 대한 특별함을 생각했다.




빌라를 매매로 내놓았지만 부동산에서는 감감무소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재건축을 하면 입주 시 추가 분담금이 만만치 않았다. 확실하진 않지만 주변 아파트의 재건축을 보니 적어도 1억 이상은 더 납부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주택시장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가격이 오르더니 후루룩 하고 거품이 빠진 후였다. 매매 가격은 점점 더 내려가고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이러다가 집도 못 팔고 건축자금도 마련이 어려운 건 아닌지 걱정이다. 속절없이 시간만 갔다. 땅 계약서까지 받았는데, 잔금 치르라고 연락이라도 올라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한숨만 나왔다. 남편과 나는 저녁마다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땅 매매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난 후 마치 온 우주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듯 착각에 빠져있었다. 비용 마련에 제동이 걸리고 빌라가 매매되지 않는 이 문제 앞에 심장쪼그라들고, 가진 것 없는 우리 형편이 야속하기만 했다. 한편으론 빌라를 갖고 있을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사실 처음부터 남편은 빌라 매매를 아까워했으니 더 고민이 됐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는 법이다. 한 마리 토끼는 놓아주어야 한다.


"여보세요? 여기 ㅇㅇㅇ부동산 인대요"

"네 사장님, 안녕하세요..." 갑자기 걸려온 사장님의 전화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그도 그럴 것이 계약서를 쓴 지 이미 2달이 지났다. 빌라는 안 팔리고, 잔금을 치르자고 할 테니 말이다.

"사모님, 죄송합니다. 토지분할에 문제가 좀 생겨서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무슨 말씀이세요?"

"사모님이 사신 땅을 분할해야 하는데 매도자 집이 무허가예요. 허가 주택이 아니면 분할이 안된답니다. 마침 시청에서 유예기간을 줘서 주택허가 신청했으니 걱정 마세요. 시간은 좀 걸릴 것 같으니 또 연락할게요"

"네. 문제는 없는 거죠?"

"아 그럼요. 그런데......"사장님은 고민하는 듯 말끝을 흐리셨다.

"왜요? 무슨 다른 문제가 있나요?"

"아, 그게 땅을 매도하신 분이 부인하고 의논을 안 하셨나 봐요. 명의는 부인 명의니 이실직고했죠. 그랬더니 매도자 부인이 물릴 수 없냐고 계속 찾아오네요"

"아... 그럼 저흰 어떡해요? 혹시라도 파기되는 건가요?"

"쉽게 그러진 못할 거예요. 계약금이 천만 원이니 파기하면 이천만 원을 내놔야 하는데 그러진 못하죠. 그러니까 자꾸 부동산 와서 하소연만 하네요"


전화를 끊고 깊은 안도에 숨을 내쉬었다. 당장 잔금을 치르자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땅 분할에 문제가 있어 잔금이 하염없이 연장된 거다. 우리에겐 천운이었을까? 그런데 어쩌자고 부부가 이런 중요한 일을 의논도 안 했을까? 안타깝긴 하나 물릴 수는 없으니 원망이 하늘을 찌를 터다. 그 소식이 들린 후로도 주택허가는 쉽게 나지 않았다. 무허가 주택에 덧붙인 주차장 천정을 철거해야 했고, 이런저런 시청의 요구조건이 있었던가 보다. 그렇게 우린 겨울을 맞이 했고, 봄이 왔다.


봄이 되니 얼어붙었던 주택시장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끝을 모르던 재건축도 조금씩 윤곽이 드러났고, 부쩍 사람들이 집을 보러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빌라단지 사람들은 술렁술렁거렸고, 주택조합 사업시행인가를 위해 총회를 열었는데 조금이라도 이윤을 챙기려는 사람들의 입씨름에 싸움판이었다. 사업시행인가를 빨리 받기 위해 미리 짜인 대본이 있었으나 일부 불만을 품은 몇몇 사람들은 내 집 내놓으라며 옥신각신했다. 우린 이제 내 일이 아닌 미래다 보니 그저 도장만 찍고 올뿐이다.




"여보세요? 여기 ㅇㅇㅇ부동산 인대요"

"네 사장님, 안녕하세요"

"아이고, 오래 기다리셨지요? 이제 곧 매도자 주택허가가 날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아, 그럼 이제 잔금 치르는 건가요?"

"아니요. 주택허가 나고 땅 분할이 되야해요. 분할 신청도 해뒀으니 측량하고 서류 나오려면 한 달은 걸릴 거예요." 부동산 사장님의 말에 우린 조금 더 바빠졌다. 막연히 기다리던 시간이었는데 이제 정말 집 지을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2015년 4월 27일,

주말에 땅을 찾았다. 햇살이 아주 따스했고, 사과꽃이 소담스럽게 피어있었다.

땅을 계약한 지 어느새 9개월이 되었다.

우릴 기다려준 땅이 고마웠고, 하늘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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