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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있는 집에서 사는 꿈

자연과 더불어 캠핑할 수 있는 집

우리들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포기'라는 말은 먼지 털 듯 툭툭 털어 냈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 키우며 꿈을 키워갔다. 빌라 옆 드넓은 공원을 내 집 앞마당 이용하듯 매일 오가면서 생각을 굳혔다. 사람이란 자고로 좋은 게 있으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인가 보다. 공원을 이용하다 보니 조금씩 가족만의 공간이 생각났다. 한편 모래놀이터가 있었으면 좋겠고, 자연과 더불어 캠핑하며 고기도 구워 먹었으면 좋겠고, 한여름에는 밤하늘 바라보며 돗자리 깔고 누웠으면 좋겠고...


빌라에 이사오면서 부터 10년 동안 매년 다녔던 화랑유원지다.  Photo  by. 고경애 (왼쪽 위 부터 봄, 여름, 가을, 겨울)


하지만 이런 생각은 개인 공간이나 캠핑장소에서나 가능하지 공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서울 토박이였던 남편은 한 술 더 떠서 텃밭을 가꿔보고 싶어 했다. 


여름휴가에 우린 언제나 시댁과 친정을 간다. 휴가철이면 친정에서는 이제 막 고랭지 감자를 캘 때다. 남편이 땅속에서 주렁주렁 달려 나오는 감자가 신기해 감자 캐는 걸 도울라치면 농작물 망가뜨린다며 아버지는 남편을 구경꾼 만드신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이 감자를 캐면 감자에 흠집을 잘 낸다. 어른 주먹보다 크고 잘생긴 감자는 '최상'의 상품인데, 여기에 흠집이라도 난다면 상품가치는 '중'으로 떨어진다. 황금이 철로 바뀌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일을 잘 모르던 남편은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멀뚱 거리며 어색하기만 하다. 새로운 시도에 대해 겁내지 않는 남편에겐 장인어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터고, 중간에 낀 나는 만회라도 하듯 남편에게 캐어놓은 감자 옮기는 일을 맡긴다.


서울 토박이인 남편에겐 식물이 자라 수확하는 과정을 보는 일은 신 세계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쌀이 나무에 달리는 줄 알았는데 벼에서 이삭이 달린 것을 보고 놀라는 사고 전환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남편은 이런 즐거움에 먼 거리지만 장인어른 계신 시골 가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버지는 사위에게 일을 잘 시키지 않으시고 언제나 딸을 부른다.


농작물을 키우는 일은 씨앗을 뿌려 싹이 되고 열매 맺는 과정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적은 돈을 투자해서 시간, 자연, 노력만 기울이면 몇 배가 되는 유익을 준다. 또 어떤 것은 자연에서 그대로 채취하면 되니 이렇게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물론 직접 몸을 써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하지만 채소를 얻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한 서울살이에 익숙하다 보니, 지천에 있는 나물을 보면 돈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친정집 뒤뜰에는 쑥이 한가득이다. 큰아이 아토피가 심할 때 깨끗한 쑥을 뜯어다가 산야초 오일을 만들어 사용했는데, 도심에서 천연의 쑥을 구하기란 힘들뿐더러 "이게 대체 얼마야?" 신기해하며 열심히 쑥을 뜯던 남편의 모습이 떠오른다.




2011년 어느 일요일,

목사님 설교 중에 화성에 대한 말씀을 잠깐 하셨다. 잠깐 지나가듯 하신 말인데 내 귀에 스피커를 대고 말하는 것처럼 크게 울림이 느껴졌다. 설교가 끝난 후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서 만난 남편에게 대뜸 물었다.

"여보, 오늘 설교 중에 가장 마음에 닿는 말씀이 뭐였어요?"

"화성"

"맞아. 설교도 좋았지만 화성이야기는 내 귀에다 대고 말하시는 것 같았어"

"얼른 밥 먹고 가보자"

"어딜요?"

"어디긴 화성이지. 우리가 생각한 전원생활이 그곳에선 가능할지도 몰라"


이 날의 설교는 전원생활에 대해 막연히 생각했던 우리가 행동으로 옮기 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점심을 먹고 곧장 화성 시골길을 달렸다. 화성시청을 가는 길이지만 2차선 도로 옆으로 펼쳐진 논과 밭들은 강원도 시골을 연상케 했다. 처음부터 땅을 구해 집을 짓는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아 아파트나 전세라도 시세를 먼저 알아보고자 했다. 먼저 살다가 익숙해지면 땅을 구해보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된 그곳의 도시화 바람은 찾는 이가 많은지 전, 월세는 구하기 힘들고 막 지어진 새 아파트는 여윳돈이 없는 우리 형편으론 너무 비쌌다. 시골이니 쌀 것이라 여기고 그나마 덥석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렇게 좌절을 경험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현실을 직시한 남편과 나는 한동안 전원주택 얘기도 꺼낼 수 없었고, 다시금 회사와 집을 오가며 주어진 현실에 타협 하 듯 쳇바퀴와 같은 삶을 이어갔다. 남편의 직장생활은 팍팍했고, 직장 단합을 위해 마시지 못하는 술을 마셔야 한다며 괴로워했다. 이대로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고, 삶에 지친 남편의 모습을 보는 나도 힘에 부쳤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남편에게 삶의 희망이 되는 한마디가 절실히 필요하 던 그때,

내가 배우고 익히던 요리에서 쿠키클레이를 하던 날이었다. 천연의 색깔로 형형색색 옷을 입은 쿠키 반죽으로 무엇을 빚을까 고민하다가 남편을 위해 꿈의 집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쿠키 반죽을 떼어 집을 만들고, 나무를 만들고, 돌다리와 울타리를 만들었다. 연습 중이라 모양이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럴듯했고, 남편이 좋아할 것 같았다. 우리가 꿈꾸던 전원주택을 쿠키 반죽으로 만들고 오븐에 구웠다. 상자에 담으니 제법 멋있어 보였다. 종이를 잘라 편지를 쓰고 귀가가 늦은 남편을 위해 식탁 위에 올려놓고 아이들과 잠이 들었다.

우리들의 꿈인 '전원주택' 쿠키 반죽이 오븐에 구워진 모양 / 남편에게 선물한 '전원주택' 쿠키와 편지


내 진심이 느껴진 걸까?

포기하고 주저앉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던 걸까?

선물을 본 남편은 포기했던 꿈을 다시금 끄집어냈고,

우린 그렇게 가족이 함께 누리고 싶은 미래를 그렸다.

공동주택이 제공해 줄 수 없는 우리들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포기'라는 말은 먼지 털 듯 툭툭 털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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