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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할 수 없다고?

우리가 산 땅이 맹지라니...

우린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쥐 신세가 되었다.
벽을 뚫고 가거나
여기서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다.


"사모님, 방금 시청 개발행위허가 담당자 전화를 받았는데요, 토목공사 허가를 내줄 수 없다는데요?"

토목 설계사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도로 쪽 땅이 남의 땅이라 배수관 설치가 안 된다는 이유다. 나는 어떤 의미인지 몰라 심드렁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래요?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보죠 뭐. 땅 주인 뒤로 내면 돼요"

"......"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불과 1~2초 밖에 되지 않았는데 설계사의 한숨은 내 심장을 멎게 했다.

"집 뒤로 내는 것도 알아봤어요. 집이 무허가라 그쪽도 배수로 승인이 안 돼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분명 된다고 했는데요?"

"아이참 사모님도 답답하시네. 담당자가 문제가 있어서 안 된다는 말은 건축을 할 수 없다는 얘기예요."

건축을 할 수 없다니. 분명 배수로를 내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했는데 말이다.




"배수로는 도로를 가로질러 내고, 아휴 정 안되면 내 집 뒤로 배수로 내줄 게 걱정 마요"

탁자 위에 땅 계약서를 사이에 두고 땅 주인이 한 말이다. 우린 건축에 대해 하나도 모를 때라 배수관 하나 묻는 것이 집을 지을 수 있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큰 일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땅 주인의 주택이 무허가여서 허가에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거다.


우리가 계약한 땅 앞쪽은 마을 도로다. 땅은 도로에 접해 있기에 우리 상식으로는 집 짓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로 생각했다. 물론 부동산에서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계약 시 조건도 덧붙였다. 어떤 이유라도 집을 지을 수 없는 경우 조건 없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단서였다. 배수관이 어느 쪽으로 묻힐 것인지에 대해 언급은 했지만 땅 주인은 문제없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이것저것 따지며 꼼꼼히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땅 주인의 말을 의심 없이 믿었던 우리의 거듭된 실수였다. 토목설계가 이미 마무리되는 시점이었고 건축 설계사도 다시금 수소문 중이었다. 곧 공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이 무슨 날벼락같은 말인가? 우리 부부는 한달음에 땅 주인을 찾았다.


"아니, 우리 집 뒤로 배수로를 내준다니까 왜 안된다는 거야? 나 원 참!!"

시청 개발행위허가 승인이 안 된다는 말을 전했음에도 땅 주인은 같은 말만 번복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건축법이 까다롭지 않았기에 가능했을지는 모르지만 이젠 주먹구구식의 방법은 통하지 않음을 모르고 있는 거다. 그나저나 이제 와서 계약을 파기할 수도 없고 미칠 노릇이다. 잔뜩 울상을 하고 있는데 토목설계 대표가 도착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남편은 비장한 심정으로 물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도로에 붙은 땅 주인을 찾아가 사용 승낙을 받으면 돼요."

마을 도로로 사용하고 있는 땅 일부가 개인 소유다. 도로와 우리 땅과의 거리에 개인 소유의 땅이 있다. 걸음으로 재도 한걸음 남짓인데 개인 소유 땅으로 인해 우리 땅은 결국 맹지라는 얘기다. 흔히 시골 땅은 도로가 번듯해도 개인 소유가 많으니 잘 살펴야 한다는 말을 누누이 들었건만 우리가 찾아 헤매던 작은 땅에 눈이 멀었나 보다.


문제의 땅은 마을 사람들이 길로 이용할 수 있도록 개인 땅을 포장하여 사용했는데 우리가 매수한 땅 주인과 이해관계가 있어서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도로 땅 주인을 장로님이라고 불렀다.

"아이고, 그 양반이 승낙서를 내준다고? 어림도 없어" 매도인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며 단호히 말했다. 얼마 전 배수로 얘기를 했더니 못 해준다는 대답만 들었다며 그 양반은 절대 승인을 안 해줄 거니 찾아갈 필요도 없다고 했다.


우린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쥐 신세가 되었다. 벽을 뚫고 가거나 여기서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다. 마을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장로님이라는 분에게 전화를 드렸다. 내일 방문하겠다고, 몇 시에 뵈면 되겠는지 여쭈니 아침에 오라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귀찮은 듯 짧게 답했다.


집에 도착했지만 긴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여보, 이제 어떡하지?" 침묵을 깨고 내가 말을 건넸다.

"......"남편은 세상 짐 다 짊어진 사람처럼 말을 잃었다.


잠을 뒤척이다 새벽녘에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4시다. 남편도 부스럭거리며 일어난다. 우린 도살장에 끌려가는 동물처럼 무겁게 몸을 일으켰다. 다시 누워봐야 잠도 오지 않을 터 새벽 기도드리고 가자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예배당에 앉으니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땅 사용 승낙을 받지 못하면 여기서 모든 걸 포기해야 한다. 


살고 있는 빌라는 팔렸고 건축허가는 물 건너간 듯 보였다. 지금껏 아이들을 위해 마당 있는 집을 짓겠다는 꿈이 물거품처럼 내 손에서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하늘의 도움을 구하며 흐느껴 울고 있는데 남편이 그만 일어나자며 툭 건드린다. 8시까지 도착하려면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거다.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니 동이 터 오르고 있었다. 발갛게 오르는 해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우리의 조급한 마음을 위로하 듯 반짝였다. 화성으로 달려가는 길은 꾀나 막혔다. 출근 시간이라지만 서울도 아니고 20km 조금 넘는 거리를 2시간이 걸렸다. 현대, 기아 자동차 연구소 가는 길이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량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넉넉할 거라 생각했는데 8시 전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남편은 건축설계도를 힘 있게 움켜쥐고, 나는 한 손에 음료수 상자를 들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허락을 받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심정으로 장로님 댁에 들어갔다. 마당에는 미처 가꾸지 못한 꽃들과 나무들이 무성하게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있었다. 우리를 맞이한 건 80대 어르신이었다. 노부부가 소담히 사는 공간에는 신문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어르신이 권해주는 자리에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편히 앉으라고 했지만, 우리 마음은 편치 않았다.


"꿀꺽!" 

남편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르신 저희가 아이를 흙 밟으며 키우려고 없는 돈에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나도 얘기는 들었는데, 땅을 샀다고"

"네. 아이가 아토피도 있고 해서. 시골에서 살면 좋을 것 같아 저희가 매입했어요. 건축 이래 봐야 공장에서 만들어 조그맣게 지으려고요."

"아토피가 있다고? 시골에 살면 좋지"

남편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저희가 건축하려니 배수관 묻을 곳이 없어서 허가가 나지 않는대요. 장로님 땅으로 가로질러 배수관을 묻어야 한다고." 남편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집을 짓는다고? 애들이 몇이요?"

"둘이에요. 아들 하나 딸 하나"

"집 지어서 살 거요?"

"네"하고 우린 동시에 대답했다. 장로님은 무슨 생각을 하는 듯 여기서 살 거냐는 말을 재차 물었다.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남편은 들고 있던 설계도를 펼쳤다. 집을 지을 곳과 배수관을 묻어야 하는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다시금 설명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남편의 말을 듣던 장로님은 설계도와 우리의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침묵을 깨고 던진 장로님의 한마디는 귀를 의심케 했다.

"승낙해 줄게"

"네?"


"배수관 묻으라고. 내 승낙할 테니 필요한 서류가 뭐라고?"


남편과 나는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너무 쉽게 허락해 주시는 게 오히려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허락하는 대신 혹시 돈이라도 내놓으라는 건 아닌지 마음이 불안했지만 무조건 감사하다는 인사부터 해야 했다. 어리둥절한 우리에게 긴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에게 땅을 판 사람과는 오래도록 쌓여온 서운한 감정이 있었고, 땅은 팔았다는데 젊은 사람이 땅 투기하러 들어오는 건지 오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식들 생각하는 마음으로 이런 시골에 들어와 산다고 하니 어르신이 과거 이 땅에 정착할 때의 일이 떠오르셨다고, 힘겹게 땅을 일구었는데 우릴 보니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났다는 거다. 벚꽃, 목련, 매실나무 심던 그 시절을 생각하니 발그레해지며 미소까지 피어났다. 안주인까지 합세하여 노부부는 지난날을 추억하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오히려 우리에게 열심히 살아보라며 덕담까지 해주시고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의외로 쉽게 땅 사용 승낙을 받고 보니 어안이 벙벙했다. 그동안 마음 졸였던 심장이 다림질하듯 활짝 펴지는 느낌에 날아갈 듯 기뻤다. 새벽에 예배당에서 펑펑 울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땐 이렇게 쉽게 해결되리라곤 미처 몰랐다. 하늘의 도우심을 감사했다. 


결국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지만 문제 해결의 열쇠는 우리에게 있었다. 


사람들의 말만 듣고 포기했더라면, 

대화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좌절감으로 전원주택의 꿈을 접었을 것이다.


부딪쳐라!
문제 해결의 열쇠는 나에게 있다.





 

이전 08화 건축 설계사와 계약을 파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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