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전원주택을 꿈꾸는 이가 있다면 건축주로서의 권리를 뺏기지 않는 지혜가 있길 응원한다.
토목공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건축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날마다 건축설계도를 수정하며 우리가 살고 싶은 집을 수십 번 수백 번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건축설계 사무소에서는 남편의 열정을 칭찬했다. 전공자도 아닌데 살고 싶은 집 그림을 그려오는 건축주는 드물다는 것이다. 물론 첫 번째 건축설계사는 남편이 들이미는 설계도를 귀찮아했다. 다 알아서 할 건데 뭐 그리 애쓰냐는 식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이렇게 라도 해야 서로 설명이 쉽고, 집을 짓는 건축주로서 벅찬 마음을 쏟아내고 싶어 했다.
집을 짓다 보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집 짓는 일은 신경 쓸 일이 많고 챙겨야 할 것이 많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랬다. 집을 짓고 나니 10년은 더 산 느낌을 받는 것은 유독 우리만의 경험은 아니다. 주변에 집을 지어 본 건축주들은 이 말에 이구동성 맞장구를 친다. 맞장구치는 것을 넘어 신신당부하는 이도 있다. 10년 늙을 각오 단단히 하라고 말이다. 우린 처음 '그토록 꿈꾸었던 일인데 고생도 낙이지 뭘 그리 겁을 주느냐'라고 의아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을 짓고 보니 그 말 뜻을 알게 되었다.
건축=인생이다.
건축을 하다 보면 평생 만나야 할 사람들의 유형을 다 만나게 된다. 그들과의 관계가 쉬운 일은 아니란 뜻이다. 우린 1층~2층 합해서 30평 조금 안 되는 집을 지었다. 30평 이하는 공사감리를 두지 않고도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지금은 조건이 조금 더 까다로워졌지만 2015년 당시만 해도 국민주택 평수 정도의 감리는 건축시공사나 현장소장, 건축주의 몫이었다. 남편은 직장에 메어있으니 나는 아이들 학교 등교를 마치면 공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들어오고 나가는 자재들을 꼼꼼히 확인하고, 빠진 것은 없는지, 공사가 순서에 맞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현장에서 수시로 점검했다. 그러다 보니 공사에 투입되는 수많은 직업과 유형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요약해 보면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사 관계자 유형 1.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스스로 꼼꼼히 일하는 사람. 2. 꼼꼼히 일하기는 하지만 주변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일하는 사람. 3. 건축주, 혹은 공사 담당자의 지시만 수행하며 일하는 사람. 4. 건축주, 혹은 공사 담당자가 요청해도 수정하지 않고 제멋대로 일하는 사람.
포클레인 기사에서부터 인테리어까지 30가지가 넘는 업종과 일을 하며, 별별 사람과 관계를 맺다 보니 4가지로 축약이 되었다. 건축주나 공사 담당자의 관점에서 어떤 유형의 사람이 가장 신뢰받고, 또 일을 맡기고 싶은 사람인지 말하지 않아도 모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1번 유형의 사람은 음료수 하나라도 혹은 식사라도 더 챙기고 싶고, 수고비가 들더라도 아깝지 않다. 2번의 유형은 그나마 다행이긴 하나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 경우 대충하는 모습을 보여 조금은 안타까웠다. 3번의 유형은 지시가 없다면 잘못된 것을 알아도 고치지 않고 그냥 마무리해 버리고 만다. 나중에서야 잘못되었으니 수정하자고 요청을 하면 진작 말하지 이제야 말한다며 투덜거리기 일쑤다. 4번 유형은 말할 필요 없이 고개를 갸우뚱 만들 뿐 아니라 일하다 보면 수시로 다툼이 일어난다. 1번의 경우처럼 공사를 맡기고 안심이 되는 사람도 많다. 그나마 2번은 낫다. 하지만 3, 4번과 같이 힘들게 하는 경우가 생기다 보니 건축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이 한꺼번에 평가절하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학생 때 선생님에게 자주 듣던 말이 있다.
"스스로 하는 사람, 시켜야 하는 사람, 시켜도 안 하는 사람중에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는 너희들의 인생을 바꿔놓는다"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다. 학생 시절에는 그 말이 그렇게도 듣기 싫고 한 귀로 흘려버린 말인데 수많은 사람을 짧은 기간에 만나다 보니 선생님이 했던 그 말의 뜻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나 또한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고 나 자신에게 되뇌게 된다.
이런저런 상황으로 나는 공사장을 떠나지 못하고 꼼짝없이 꼰대 아닌 꼰대 아줌마가 되어 공사장을 지켰다. 건축이라면 1도 모르던, 설계도가 뭔지도 모르던 아줌마에서 설계도를 읽게 되고 공사장의 언어를 알게 되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이야기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공사장을 전전하다 보니 매일 신고 다닌 샌들 모양대로 내 발등에는 태양에 그을린 선명한 줄이 그어졌다. 2015년 그해 여름, 태양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그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하루는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공사장으로 달려갔는데 주문하지 않은 단단한 돌이 무더기로 도착해 있었다. 분명 우린 주문한 적이 없는데, 견적을 받을 때도 보강토로 계단을 쌓을 거라 했는데 대체 어디서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수소문 끝에 보강토 업체에서 가져온 것임을 알았다. 가격이 겁나게 비싼 돌이라며 계단석으로 쓰이는 돌이라 했다. 조금 싸게 주겠다며 계단에 쓰라는 것이다. 우린 비싼 돌을 쓸 여유도 없을뿐더러 계약에 없던 구성이기에 다시 가져가라고 했다. 여러 번 실랑이 끝에 돌이 오게 된 이유가 다른 공사장에서 많은 양 주문으로 인해 사용하고 남은 것인데 우리가 사라는 것이다.
결국,
계단석을 다시 물리기엔 무리가 있었고, 굳이 어울리지 않는 모양은 아니어서 계단으로 사용했지만 요구하는 값을 다 주진 않았다. 우리 의사에 반하는 일이었기에 양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건축주 의사와 상관없이 원치 않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곳이 집짓기 공사 현장이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생각지도 않은 곳에 돈이 새는 경우가 생기니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조율하는 과정에 서로 불편한 감정이 오가는 것이 싫다고 해서 하나씩 양보하다 보면 원래 의도가 아닌 엉뚱한 집이 되기도 한다.
한 예를 더 들어보자.
이웃에 얼마 전 집짓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집을 한번 지어 본 나로서는 당연히 관심이 가고,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A부터 Z까지 남편과 함께 꼼꼼히 살피며 집을 지은 터라(욕심낼 것과 포기할 것을 빠르게 판단해야 한다) 공사 현장을 보면 대충 어떤 집이 나올지 그림이 그려진다. 현장소장이 화를 내고 있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이웃에서 싱크대 하는 분이 있는데 수시로 찾아와 이 집에 들여놓을 걸 강요한 것이다. 비싸게 제작했다고는 하나 기성품이라 이 집 구조와는 맞지 않는데 조금 저렴하게 준다고 하니 건축주도 혹하는 마음에 들여놓겠다고 한 것이다. 현장소장은 저렴하게 준다고 하더라도 이 집과 어울리지 않는 싱크대라며 잔뜩 속상해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집짓기 공사는 10년 한꺼번에 늙어 버리는 골치 아픈 일만은 아니다. 평생 한번 겪을까 말까 하는 축복이요, 꿈꾸었던 집에 대한 욕심을 가능케 하는 일이다. 안 되는 것을 무조건 억지 부리는 건 곤란하지만 공사 관계자와 서로 타협하며 살고 싶은 집을 짓겠다는 건축주의 권리를 찾았으면 한다.
지금, 이 순간
전원주택을 꿈꾸는 이가 있다면 3,4번 유형의 사람들에게 건축주의 권리를 뺏기지 않는 지혜가 있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