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세월의 흐름은 돈 보다 빠르다.

세월은 준비 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앞으로'라는 말은 무의미하다.
'지금 현재 여기'가 있을 뿐이다.
세월의 흐름은 돈보다 빠르고,
돈을 모으는 사이 아이들은 쑥쑥 자란다.



기초공사 바닥 진동로라로 땅 다지기 / 배관설치 / 정화조 설치
기초공사 철근배근과 거푸집 / 콘크리트 타설


2015년 8월 7일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올리며 첫 삽을 뜬 후 7일간 기초공사가 끝났다.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 옹벽을 쌓고 터파기 공사를 했다. 콘크리트만 부으면 되는지 알았더니 절차가 많아서 놀랐다. 터파기를 한 후 잡석을 깔고 방습 필름, 단열재도 깔았다. 그리고 이어진 철근배근은 사람 손으로 얼기설기 엮느라 하루 종일 걸렸다. 철근 배근이 끝나자 드디어 콘크리트가 타설 되었다. 콘크리트 타설은 레미콘 차와 펌프카가 하나로 합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날로, 마침 방학 때라 공사현장을 지키던 아이들이 가장 신기해하고 재밌어했던 장면이다. 길게 뻗은 펌프카 붐대가 움직이며 자리 잡으면 펌프카 기사의 원격조종기가 조종됨과 동시 촤르르르 쏟아지는 콘크리트들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콘크리트 타설이 끝나고 나니 도구들을 이용하여 콘크리트들을 굴려가며 수평을 잡느라 분주한 손길들이 이어졌다. 콘크리트를 수평으로 맞추고 나니 며칠간의 기초공사로 수고한 분들이 서로 노고를 치하하며 하나, 둘 퇴근했다. 덩그러니 남은 나와 아이들은 현장을 살폈다.


휴~ 이제 한 고비 넘은 것 같다. 타설 한 콘크리트가 적당한 습기로 햇빛과 바람에 의해 건조되고, 거푸집 철거하고 나면 집을 올릴 수 있다고 했다. 계단석으로 시시비비가 있었고, 옹벽으로 쌓을 보강토가 계약한 것보다 추가로 들어가 남편과 나는 보강토 회사를 직접 찾아가 추가 결재를 하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옹벽공사까지 마무리하는데 1주일간의 공사가 무사히 끝났음을 감사했고, 그다음 이어질 공사를 준비하기까지 시멘트 양생기간으로 인해 잠깐의 쉴틈이 생긴 것이다. 그간 바쁘게 움직였던 1주일이 한 달은 더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2015년 8월 9일,

오랜만의 여유로움을 느끼며 주일 예배를 다녀왔다. 오후에는 아이들과 여유로운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앞으로 있을 집 공사에 대해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도록 순서를 매겨가며 메모했다. 이번 휴가는 기초 공사하는데 시간을 다 썼으니 곧 부모님 찾아뵙고 공사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리자고 했다. 사실 어른들은 우리가 전원주택을 짓겠다고 했을 때 말렸다. 아파트에 살면 아파트 주변 관리도 잘되고 편한데 뭣하러 사서 고생하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하루속히 공사가 끝나고 부모님 모시고 집들이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시아버지는 유독 손재주가 좋으셔서 이것저것 집수리도 손수 해보신 터라 우리들의 수고를 알아주실 터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미래를 그려가던 무렵, 

어머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앞뒤 설명도 없이 서둘러 집으로 오라는 거다. 


아버님이 위독하시다고......


우린 더 말할 정신도 없었다. 불길한 예감을 안고 여행가방에 주섬주섬 여유분의 옷가지를 챙겼다. 여행가방과 함께 차에 올랐고 남편은 속력을 다해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주행이 시작되자 나는 다시금 어머님께 전화를 드려 이것저것 여쭤보았다. 아버지가 위급하시다고, 아무래도 마지막이 될 것 같으니 서둘러서 오라고 했다. 주말 저녁이라 여름휴가를 끝내고 돌아오는 차들로 도로가 꽉 막혔다. 


막히는 차만큼이나 눈물이 시야를 가려 눈앞이 캄캄했다. 우린 기도했다. 가실 때 가시더라도 마지막 모습이라도 뵐 수 있기를, 제발 우리 집이 완성된 걸 보시고 떠나시길 말이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아버님께 우리 집을 보여드리지 못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아버님은 숨을 거두셨다.

 

아버님은 세상 편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계셨다. 남편과 결혼 후 11년을 뵈었지만 이 순간이 가장 평온해 보이셨다. 나는 아버님께 다가가 귓전에 대고 평안히 천국 가시라고 천국에서는 아프지 마시라고 흐느끼듯 말했다. 


아버님은 47세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셨다. 사고 후 다리가 온전치 못했고,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그 후 대장암과 뇌졸중까지 겪으셨다. 아버님의 사고는 가족 모두의 삶을 앗아갔다. 어머님은 한복을 지으시며 세 형제를 키워야 했고, 아버님은 제 한 몸 거두기도 힘들어 어머님께 수발을 맡겨야 했다. 그 삶이 얼마나 팍팍했을지 남편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고충을 느낄 수 있었다. 뇌졸중 이후 후각기능에도 이상이 생겨서 명절 때 기름진 음식을 할라치면 냄새난다며 온 집안 문이란 문은 다 열어놓고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추석 때는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설날에는 추워서 오들 거리며 음식을 장만하기도 했다. 


냄새난다고 호통을 치시던 아버님의 입술은 우리가 곁에 있는데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리 이뻐하던 손주들을 보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잘 살라고, 아파 죽겠으니 빨리 하늘나라로 가겠다고 투정 부리는 말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굳게 닫친 아버님의 입술은 옴짝 달짝하지 않았다. 헤어질 연습조차 하지 못했는데 우린 그렇게 아버님 장례를 지내야 했다.


죽음, 헤어질 연습을 할 수 있다면......


헤어질 연습조차 하지 못하고 천국으로 보낸 일이 내겐 벌써 두 번째다. 그 첫 번째는 나의 사랑하는 엄마다. 엄마는 2004년 국회의원 선거날 동생과 함께 만나고 온 것을 끝으로 헤어질 연습조차 하지 못한 채 천국으로 보내야 했다. 엄마는 선천성 지주막하 출혈로 쓰러진 지 나흘 만에 천국으로 가셨다. 어쩜 생명이란 것이 이리도 허무할까?


엄마와 난 전원주택을 '예쁜 집'이라고 했다. 이웃에 예쁜 집이 들어오면 함께 구경을 갔다. 농사짓느라 고생했으니 이제 예쁜 집 짓고 편히 살라는 얘기를 나눴는데...... 엄마는 예쁜 집 말만 하다가 돌아가셨다.


2억을 포기하고 마당 있는 집을 짓겠다는 생각을 한건 엄마의 허무한 죽음을 맞으며 삶이 참으로 헛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앞으로'라는 말은 무의미하다. '지금 현재 여기'가 있을 뿐이다. 세월의 흐름은 돈보다 빠르고, 돈을 모으는 사이 아이들은 쑥쑥 자란다. 아버님도 우리의 마당 있는 집을 못 보시고 그렇게 떠나셨다.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아이들에게 늘 웃음을 주시던 아버님에 대해 추억했다. 70을 넘긴 연세에도 트위스트 스텝을 추며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셨다. 한 번은 서랍에 꽁꽁 숨겨놓았던 코주부 안경을 꺼내 연기를 하셨는데, 그 모습에 아이들은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고 할아버지와 유쾌하게 사진을 찍었다.


집으로 향하다 말고 남편은 공사장으로 차를 돌렸다. 기초공사는 거푸집이 철거되어 있었고, 시멘트 양생은 잘 되어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먼지를 보며 물을 뿌리고 먼지를 쓸어내렸다. 먼지를 쓸며 남편은 중얼거렸다.


"아버지 조금만 기다려주지 그랬어요"



이전 11화 건축=인생을 배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