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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2층 집

왜 흰색 2층 집을 짓고 싶었을까?

집 지을 때처럼 많은 선택의 순간이 또 있을까?
선택을 많이 하다 보니 선택과 포기가 좀 더 빨라지게 되었다. 


전원주택에 대한 낭만을 내려놓고 나서야 다시금 건축에 몰입할 수 있었고, 공장에서 제작하는 이동식 주택을 선택했기에 현장에서의 진두지휘를 잠시 쉴 수 있었다. 최근 건축박람회를 가보니 이젠 콘크리트도 박스로 만들어 조립하는 이동식이 가능하다. 물론 상용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콘크리트 외에도 목조주택, 모듈러 주택, 황토주택, 컨테이너 주택 등 이동식 주택도 다양한 공법으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단점이라고 하면 박스 형태로 만들어 이동한 후 안착과 조립을 해야 하니 공간 제작에 약간의 제한이 따르기도 하지만 공장에서 여러 채의 집을 지을 수 있어 비용절감이 가능하다. 건축에 많은 비용을 차지하는 인건비 절감 효과도 있었다.


이제 우리 할 일은 한 번씩 공장에 들려 건축이 설계대로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물론 창문과 문 종류는 어떤 것으로 할지, 햇빛 창은 어디에다 둘지 설계외에 조금 더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은 건축사와 수시로 협의하고 상담하며 선택해야 하는 과정은 있지만 토목공사 때처럼 시시때때로 공사장에 있어야 할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한가한 것은 아니다. 이동식 주택 조립 후 설치해야 할 제품을 위해 주말이면 싱크대 공장도 찾아가 상담하고, 욕실제품, 조명등, 도배, 장판 등을 보러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니 '집 지을 때처럼 많은 선택의 순간이 또 있을까?' 선택을 많이 하다 보니 선택과 포기가 좀 더 빨라지게 되었다. 이 또한 좋은 인생 경험이자 훈련이 되었다.

이동식 주택 점검


우여곡절 끝에 2층 집이 안착되고 내부 공사가 시작되었다. 바닥은 보일러 배관을 깔고 콘크리트 타설 후 양생기간이 필요하다. 양생이 끝나면 본격적인 내부공사가 시작된다. 내부공사와 동시에 외부 마감재 공사도 함께 진행이 된다. 목록을 체크해 가며 감독을 해야 하는 내 역할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전기 설치와 위치는 적당한가?

수도 인입과 연결이 잘 되고 있는가?

싱크대 설치가 잘 되었는가?

가스인입 공사에는 문제가 없는가?

화장실 내부 타일 시공과 제품 설치가 잘 되었는가?

천정 마감은 잘 되었는가?

보일러 연결과 작동은 잘되는가?

도배, 장판은 시공이 잘 되었는가?

조명은 안전하게 제품 설치가 잘 되었는가?

하자는 없는가?


꼼꼼히 확인하고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반드시 수정하거나 협의를 거쳐야 한다. 뭘 그리 꼼꼼히 보느냐고 하겠지만 집을 짓다 보면 설렁설렁할 수가 없다. 싱크대를 설치할 때 수납장, 대리석 상판 모든 공사가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사 후 그릇을 정리하다 보니 싱크대 문쪽에 날파리가 보이는 게 아닌가? 수건으로 스윽 문질러 보았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하이그로시 되어있는 나무 안쪽에 벌레가 있었던 것이다. 이건 아무리 닦는다 해도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할 수 없이 싱크대 업체에 연락을 했고, 하자로 인정되어 문짝 하나를 교체하는 일도 있었다.

도배 하는 모습(큰아이는 집짓기에 사용된 새로운 기계가 들어올 때마다 곁에서 관찰했다) / 싱크대 공사 / 욕실 제품 설치


마지막 내부공사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전기, 가스, 수도 인입공사를 마무리해야 한다. 이 세 가지는 인입공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검사를 받은 후 승인까지 받아야만 한다. 승인을 받았다면 승인서가 준공 신청 시 서류가 함께 첨부되어야 하므로 잘 챙겨야 할 부분이다. (표 1. 준공 시 준비서류 목록 첨부)


막바지 내부공사가 마무리되는 동안 외부 마감재와 색상을 선택하고 물받이 공사까지 끝이 났다. 외부 마감재 색상은 가족 모두 의논 끝에 흰색으로 정했다. 장장 5개월에 걸친 건축이 마무리되고 준공서류를 기다리는 동안 입주청소를 했다. 입주청소는 천정 높이가 있기에 우리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청소업체에 의뢰를 하고 맡겼는데, 문득 10년 전 빌라 입주청소 때가 생각났다.


결혼 3년 차 신혼 시절 임신 6개월의 몸으로 남편과 함께 첫 주택구입에 대한 설렘으로 입주청소를 우리 손으로 했다. 첫 주택구입이지만 새 아파트도 아니고, 다 허물어져가는 30년 넘은 빌라인지라 리모델링을 해야 하지만 가진 돈에, 결혼예물까지 몽땅 털었기에 여유 자금이 없었다. 이것저것 공사하기 시작하면 집을 뜯어고쳐야 할 판이라 질끈 눈감고 도배만 저렴한 걸로 했다. 빌라 입주 때를 생각하니 내 앞에 마주한 흰색 2층 집은 대저택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였고 청소업체에 맡기고 나니 마치 황제라도 된듯했다.


드디어 이사하는 날,

아이들은 등교 보내고 부지런히 이삿짐을 챙겼다. 가스, 수도, 통신을 마감하고 요금을 정산했다. 함께 산 이웃들은 아쉽다며 음료수를 들려주고, 눈물 글썽이며 그동안 나눈 정들을 추억 하며 얼싸안았다. 어르신들은 좋은 집에서 잘 살라며 덕담을 해주셨다. 10년간 함께 얼굴 보며 정든 세월인데 헤어짐은 역시 마음이 아프다. 나 또한 재건축 후 멋진 집에 입주하시라고 인사를 드리고 아쉬움을 남기며 빌라를 떠나 새집으로 향했다.


전원주택에 입주하고 첫 주말을 맞이했다.

남편은 창고에 넣을 선반을 만들고,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아들은 아빠의 도움을 받아 짐을 실어 나를 수레를 만들었다. 딸아이는 오빠 곁에서 도와주기도 하다가 모래놀이를 했다. 나는 주방 옆 다용도실에서 미처 정리되지 않은 요리 도구들을 정리했다. 우린 각자 분주했지만 평화롭고, 행복한 주말 낮 시간을 보냈다.

 


저녁식사 후 전원주택 입주를 축하하는 케이크에 불을 붙였고, 촛불을 끄며 각자 소원도 빌었다. 아이들은 새 집이 좋은지 "아빠, 엄마 새집 주셔서 고맙습니다"하고 재잘재잘 인사했다. 그간의 공사로 인해 잠도 줄여가며 공사에 전념을 다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사 후 첫 주말_달이 차오르던 날 밤 / 입주를 축하하며 축하케이크


우린 왜 흰색 2층 집을 짓고 싶었을까?


집을 지을 당시만 해도 그냥 보편적이고, 깔끔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원하는 컬러색으로 덮어 도색할 때 어렵지 않을 거라 여기며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우연히 서가에 꽂힌 책을 펼쳤다가 깜짝 놀랐다. 오래전 읽었던 책인데, 첫 장에 전원주택에 대한 꿈이 메모되어 있었다. 아주 구체적으로 말이다.


    

하얀 전원주택, 잔디마당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
즐겁게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요리하고 파티하는 모습


오래전 이지성 작가의 '꿈꾸는 다락방' 책을 읽으며 꾸었던 꿈이다. 이 메모를 적을 때만 해도 허름한 빌라에 살고 있었고, 빌라 대출금을 갚느라 숨이 턱까지 차올라 미래는 불투명했다. 어린아이 둘을 키우며 전업주부로 사는 살림살이가 버거워 남편은 주말이면 투잡을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전원주택이란 신기루와 같은 것이었고, 과연 이루어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꿈을 적고 곱씹으며 실천하다 보니 하늘이 우릴 도왔고 그 꿈이 현실로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우린 입주하고 소수의 지인들과 집들이 파티를 했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 맛있는 것을 차려주며 어울리도록 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아이들은 마당에서 땅 파며 모래 놀이하는 것을 특히 좋아했다.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은 즐거워 보였고, 각자 관심에 따라 돌을 캐는 아이, 모래를 파는 아이, 뛰어노는 아이, 그림을 그리는 아이 다양했다. 마당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 우리가 꿈꾸고 이루고자 애썼던 순간이다. 꿈꾸고 조금씩 실천하다 보니 어느 순간 과거에 꿈꾸었던 그 꿈에 우리 가족이 다다르게 되었다.


우리가 행복을 누리는 이 순간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신기루와 같은 꿈일 수 있다. 하지만 뒷짐만 지고 있을 것인가? 당장 노트를 펴고 꿈을 적어보자. 집이 아니어도 좋다. 아주 사소한 꿈도 좋다. 짧게는 몇 달 후 길게는 10년 후 당신은 그 꿈에 닿아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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