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 이사 후 첫날밤
별을 품은 아이는 따뜻한 마음이 자랐다
이삿짐은 앞으로도 한 달은 정리해야 하니 대충 마무리하고 모두의 수고를 축하했다. 이사하느라 고생했다며 일찍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은 어찌나 피곤했던지 이제 겨우 9시가 넘었건만 벌써 코를 골고 잠이 들었다. 아이들과 나는 큰아이의 방에 나란히 누웠다. 노곤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새집에 대한 어색함과 2층 집에 대한 감격으로 엄마를 부둥켜안으며 이삿날의 감동을 재잘재잘 거렸다.
"엄마, 우리 꿈꾸는 것 같아" 둘째가 말한다.
"엄마! 엄마! 우리 잠자고 일어나면 꿈은 아니겠지?" 동생의 말에 큰아이도 거든다.
"그렇게 좋아?"
"응"
2층이 자기 방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긴 숨을 쉬며 창문을 열었다. 창밖을 보던 큰아이가 외쳤다.
"엄마, 별이 보여요.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요"
"그래? 별이 보인다고?"
우린 큰아이의 말에 몸을 벌떡 일으켜 창밖을 봤다.
하늘에 별이 떠 있으니 별이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건만 빌라에서는 도시를 밝힌 가로등으로 인해 별을 보려면 밖으로 나가야 했고, 그나마 날씨가 정말 좋아야만 반짝이는 별을 겨우 몇 개 볼 수 있었다. 같은 하늘 아래 다른 하늘을 보는 것이 참 신기하기만 했다. 우린 그렇게 10월의 차가운 밤공기를 맡으며 한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후~하고 내쉬는 숨결에 찬 공기가 반사적으로 입안으로 들어왔다. 공기는 시원했고, 아이의 눈에 반짝 빛나던 별은 한껏 열어젖힌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별을 품은 아이는 한동안, 아니 오래도록 그날의 별을 이야기했고, 별보기를 즐겼다. 별을 품은 아이는 그 따뜻한 마음을 우리 부부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한 번은 내가 지인에게 마음이 상한 일이 생겼다. 믿었던 사람이고, 너무 좋아해서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고픈 사람이었는데 일을 처리하다 보니 오해가 생겼다. 서로 입장이 다름을 이야기하다 보니 마음에 생채기가 났고, 나의 그런 마음을 아는 아이들은 엄마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기 안타까웠으리라. 며칠을 심드렁하게 있는 내게 캘리 펜을 가져와 엽서에 쓰윽 그림을 그리더니 위로의 말 한마디를 적어서 내게 주었다. 나는 아이가 쓴 말 한마디에 그만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마음이 상하면 냉장보관 꼭! 하세요
아이는 내게 엽서를 전하며 말했다. "엄마, 마음이 상하면 냉장보관 꼭! 하세요. 그러면 마음이 상하지 않아요" 아이의 재치 있는 말에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미리 냉장고에 넣기로 약속했다. 지인과의 상한 마음도 툭툭 털어냈다. 자칫 속상한 마음을 끙끙거리며 오래도록 마음에 화를 품고 원망하며 살았을 텐데 아이가 건넨 따뜻한 위로의 말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어느 날은 남편이 마당에서 낡은 서랍장을 수선하려고 사포질하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큰아이가 다가와 아빠를 유심히 관찰하더니 "아빠, 나는 아빠가 우리 아빠인 게 참 자랑스러워요" 하더란다. 남편은 아이의 말에 의외라 생각하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물으니, 언제나 우리를 위해 애쓰시는 아빠가 그냥 좋다고 대답하더라고 내게 전해주었다. 우린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지도 않았고, 용돈을 넉넉히 주지도 않는다. 아이가 사달라고 조르는 물건을 한 번에 인심 쓰지 않는다. 이런 아빠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다고 여기는 아들의 마음이 너무 기특해서 가슴이 뭉클했다고 내게 털어놨다.
우리 부부는 가끔 되뇌듯 말한다. 아이들의 이런 따뜻한 마음이 그냥 자란 것이 아니라고.
별을 마음에 품고, 그 마음이 사랑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지혜가 생긴 것 같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