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겹게 세차를 하고 있는데 아들이 달려온다. 마침 호스에서 뿜어 나오는 물줄기를 샤워기처럼 뿌려내며 차에 물을 뿌릴 때였다. 이것도 약간의 기술이 필요하다. 호스에 샤워꼭지가 있다면 괜찮지만 없다면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호수 물 나오는 동그란 부분을 납작하게 만들어 주고 물을 조금 세게 틀면 물이 퍼지며 비가 오듯이 가늘게 떨어진다. 해가 창창하게 비출 때는 쏟아지는 물방울 사이로 무지개도 볼 수 있다. 차에 물을 뿌려대는 이 상황이 재미있어 보였던 거다.
“엄마, 나도 해 볼래”
“안 돼”하고 나는 단호히 말한다.
“왜요? 나도 해 볼래”
“안된다니까”
“왜요? 내가 못할까 봐?”
“아니, 이거 너무 재밌어서 엄마가 주기 싫거든. 엄마가 할 거야”
아들은 더 하고 싶어 조를 지경이다.
“나도 해볼래요.”하며 내가 쥐고 있던 호수를 낚아채간다.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물줄기는 그냥 굵게 떨어지고 만다.
“엄마처럼 비가 오는 거는 어떻게 해요?”
나는 못 이기는 척 호수를 납작하게 눌러 잡으라고 알려준다. 신나게 물을 뿌리는 아들에게 엉덩이 두들겨주며 잘한다고 칭찬하고는 세차 솔에 거품을 묻혀 슥슥 차를 닦는다. 아들은 물을 뿌리다 말고 세차 솔에 눈길이 간다.
“엄마 나랑 바꾸자”
“안 돼”
“왜요? 나도 그거 잘할 수 있어”
“엄마도 알아”
“엄마도 알면서 왜 안돼요?”
“이건 줄 수 없어. 이건 더 재밌거든. 그리고 솔을 잘못 문지르면 차에 상처가 나니까 기술도 필요하고 조심히 해야 해서 안 돼.”
“나도 조심히 상처 안 나게 잘할 수 있어요. 나도 해보고 싶어요.”
나는 아들을 한번 쳐다보고는 약간의 미심쩍은 소리로 말한다.
“이거 엄청 어려운데 할 수 있을까?”
“그럼요. 내가 잘할 수 있어요.” 세차 솔을 뺏다시피 하여 아이의 손에 가 있다.
이쯤 되면 내 할 일은 끝났다.
솔질이 덜 된 부분을 가리키며 잘하라고 다독여주고, 아이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을 찾아 손으로 닦아내면 된다.
아들은 뭐가 재미있는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신나게 세차를 한다. 8살에 시작된 아이의 세차 놀이는 중학생인 지금도 노래를 부르며 세차를 한다. 이젠 둘째까지 합세다. 세차를 하다 보면 솔에 물을 잔뜩 머금은 채로 ‘사랑해’ 글씨도 쓰고, 하트도 그린다.
자녀와 함께하는 세차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난 세차를 함께 할 무렵 아이들과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읽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 감동하며 여러 번 보았기에 톰의 익살스러움과 악동 소년들의 재미를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지시로 하는 집안일이 아닌 재미있게 집안일을 함께 하는 방법을 많이 고민할 때였다. 톰은 담장에 페인트칠을 해야 하는 싫은 일을 마치 재미나는 듯이 했고 톰의 친구들은 한 번만 해보고 싶다고 톰에게 다가온다. 애원을 하다못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맛있는 간식거리들을 톰에게 주며 페인트칠을 해보고자 애쓴다. 결국 톰은 친구들이 가져다준 간식을 먹으며 여유롭게 담에 색칠을 모두 끝낸 일화다. 마크 트웨인의 상상은 내게도 자녀와 즐겁게 일을 배우는 지혜를 주었다. 우린 세차 놀이를 계기로 집안일을 재미있게 하는 방법을 하나씩 터득하게 되었다.
전원주택에 살다 보면 사람 손이 일일이 닿아야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마당에 잔디를 깎거나, 수시로 올라오는 풀을 뽑는 일은 일상생활처럼 해야 한다. 나무가 썩지 말라고 데크에 오일 스탠을 칠하는 일도 매년 해야 하는 일중 하나다. 비용을 주고 일을 맡길 수도 있지만 사람 한 명 인건비만 25만 원의 비용을 지출해야 하니 쉽게 사람을 쓸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린 비용도 아낄 겸, 가족의 협력도 도모할 겸 1년에 한 번씩 오일 스탠을 직접 칠한다. 오일 스탠은 덥거나, 추울 땐 칠하지 않는다. 이땐 얼룩이 지기 때문이다. 몇 해의 경험을 해보니 5, 6월과 9, 10월이 좋다. 오일 스탠의 색깔은 아이들과 의논하여 함께 정한다. 처음엔 호두나무 색깔이었는데 올해는 둘째가 좋아하는 초록색으로 구입했다. 먼저 오일 스탠이 묻더라도 괜찮은 혹은 낡아서 버려도 되는 옷으로 갈아입고 만반의 준비를 한다. 아이들의 몸이 자라 작아진 옷으로 입기도 하는데, 매번 오일 스탠 패션에 모두 배꼽을 잡고 웃기도 한다.
먼저 어디부터 칠할 것인지 구획을 정한다. 항상 2층 데크를 먼저 칠하는데 바깥쪽은 위험하므로 남편이 사다리를 가져다 놓고 칠한다. 처음 칠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느라 얼굴에 오일이 묻고, 옷 여기저기 튀겨서 웃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화를 낼 때는 서로 기분도 상하지만 남편은 이내 중재를 하며 즐겁게 하자고 다독인다. 일이 아니라 그림 그리듯이 하자고 말하니 화를 누그러뜨리고 금세 콧노래를 부른다. 한 해 두 해 칠하다 보니 이젠 아이들도 오일이 묻거나 말거나 신경 쓰기보다 구석구석 빠뜨린 곳은 없는지 살피기까지 한다. 중학생이 된 큰아이는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노래를 부른다. 어느새 가족 떼창이 되기도 하고, 각자 추억을 이야기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를 때도 있다.
오일 스탠을 칠한 날은 고기를 구워주거나,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수고한 것에 대한 상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