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가 꺼진 자리에서

by 마감했나연

<추천 곡> 마음 - 폴킴


*소설 속 모티브와 콘셉트 외의 인물, 단체, 장소, 사건 등은 모두 실제와 관계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뒤로하고, 나연희는 최대한 일에만 집중했다. 며칠 뒤 유원우의 두 번째 솔로 콘서트를 취재하는 날이 왔다. 유원우는 그동안 자신의 음악과 관련해 점점 더 많은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연희는 공연장에 도착하자마자 취재증과 노트북을 챙겼다. 유원우의 솔로 콘서트를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은 건 며칠 전이었다. 회사에서 배정한 스케줄일 뿐이었지만, 마음이 묘하게 복잡했다. 참 지독하게도 계속 얽히는구나.


공연장에서 유원우를 보는 건 너무도 오랜만이었다. 무명일 때 이후 처음이니 대략 5~6년은 된 듯하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유원우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공연이 시작되자 객석은 팬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무대 중앙에 홀로 선 유원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흰 셔츠에 검은 팬츠, 손에 쥔 마이크. 그는 조용히 첫 곡의 전주가 흐르기를 기다렸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이어 두 곡을 열창한 그는 노래가 끝나자, 찾아준 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연희는 무심한 척 노트북을 펼쳤지만, 시선은 자꾸 무대 위에 머물렀다. 유원우는 평소보다 더 집중한 듯 보였다. 노래 한 곡 한 곡에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 모습이었다.


그가 잔잔한 발라드를 부르다 문득 객석을 바라보는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정확히 맞닿았다.


‘설마, 나를 본 건가?’


나연희는 당황해 시선을 피했고, 유원우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공연은 점점 고조되었다. 신나는 곡에서는 팬들과 함께 뛰어놀듯 무대를 누볐고, 감성적인 곡에서는 눈을 감고 노래에 몰입했다. 나연희는 열심히 기록을 하면서도, 정작 공연의 분위기에 휩쓸려 제대로 메모조차 하지 못했다.


마지막 곡을 앞두고 유원우는 잠시 숨을 고르며 관객석을 천천히 둘러봤다. 환호로 가득한 객석, 반짝이는 응원봉,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들. 그는 마이크를 쥔 손을 살짝 움켜잡으며 말했다.


“오늘은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마음이 좀 특별했어요. 늘 감사하지만, 유난히 더 힘이 나는 날이 있잖아요. 그런 날은 보통, 소중한 사람이 가까이 있을 때인 것 같더라고요.”


팬들이 궁금하다는 듯 웅성거렸지만, 유원우는 구체적인 설명 없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자리에 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연희는 무대에서 시선을 돌렸다. 누가 들어도 팬을 향한 인사처럼 들릴 법한 말이었지만, 그 의미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괜히 메모장에 의미 없는 낙서를 했다.


‘소중한 사람…’


그렇게 마지막 곡이 시작됐고, 유원우는 무대 위에서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을 다해 노래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하나둘 퇴장하는 동안, 나연희는 취재석에서 일어났다.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잠깐 백스테이지로 올래요?]


유원우였다.


나연희는 고민할 틈도 없이 안내 스태프에게 기자 패스를 보여주고 무대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분주한 스태프들 사이로 유원우가 검은 타월을 목에 두른 채 대기실 앞에 서 있었다.


“기자님!”


나연희를 향해 걸어오는 그의 얼굴은 공연의 열기로 인해 조금 붉어져 있었고, 그 표정은 여전히 무대 위와는 다른, 훨씬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을 주었다.


“공연 잘 봤어요.”


나연희가 먼저 말을 건넸다. 유원우는 미소를 지으며 물 한 병을 건넸다.


“진짜로 와서 봤네요. 아까 무대에서 보고 깜짝 놀랐어요.”


“회사에서 스케줄이 잡혔어요. 사적으로 온 건 아니고.”


“그래도 덕분에 힘이 났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공연의 여운이 남아 두 사람 모두 말수를 줄인 듯했다.


유원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대에서 노래할 때는 이상하게 모든 게 솔직해지는 것 같아요. 감정도, 생각도 다 그대로 드러나는 느낌이랄까.”


나연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늘 무대에서 더 빛나 보였나 봐요.”


유원우는 잠시 나연희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덧붙였다.


“근데 무대가 끝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요. 그래서 오늘은 무대 밖에서도 솔직해지고 싶어요.”


나연희는 그 말의 의미를 곱씹으며 작게 웃었다.


“솔직하게 뭘 말하고 싶은데요?”


유원우는 한걸음 다가서며 대답했다.


“그냥… 오늘도 당신이 여기 있어서 좋았다고요.”


그 말에 나연희는 더 이상 두 사람의 경계를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만큼은, 무대 뒤의 현실에서도 감정과 본능을 따르기로. 그럼에도 아직 어색하고 무안한 기분은 숨길 수가 없었다.


"다 끝난 거죠? 그럼 이만 갈게요. 공연 잘 봤어요. 고생했어요.“


나연희가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려는 순간, 유원우가 그녀를 잡았다.


"잠깐만요. 금방 정리하고 나갈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줄래요?"


그 말에 나연희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나오는 길, 밤공기는 시원했고, 공연장의 불빛은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30분쯤 지났을까. 팬들도 대부분 돌아간 늦은 시간, 여전히 주차장 근처에는 몇몇 열성 팬들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골목에서 나연희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서있었다.


그때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퇴근길 인사 먼저 하고 나갈게요. 조금만 더 기다려요.]


나연희는 미소를 지으며 근처 벤치에 앉았다. 주변은 점점 조용해지고, 밤공기가 한층 차가워졌다.


그때 휴대폰 알람이 다시 울렸다.


[괜찮으면 근처 공원에서 기다릴래요?]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짧게 답장을 보냈다.


[네, 천천히 오세요.]


문자를 보낸 후, 그녀는 천천히 일어났다. 저 멀리 퇴근길 인사를 기다리는 팬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몇 분 뒤 유원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환호성과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도 그는 일일이 팬들의 얼굴을 보며 인사를 건넸다.


“오늘 와줘서 고마워요! 조심히 들어가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연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공연장 근처에서 조금 벗어나 골목을 지나 공원 쪽으로 향했다. 차디찬 밤공기가 긴장된 마음을 조금 풀어주는 듯했다.


한편, 손을 흔들며 퇴근길 인사를 마친 유원우는 차에 올랐다. 매니저가 “바로 숙소로 가지?”라고 묻자, 그는 짧게 대답했다.


“잠깐 들를 곳이 있어요.”


차는 천천히 공연장을 빠져나갔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멀찍이 이동하던 중 그는 반대편 도로에서 내려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골목을 돌아 공원 쪽으로 걸어가며, 그는 주머니 속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유원우] 거의 다 왔어요.


보내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원 벤치 근처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나연희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유원우는 숨을 고르며 나연희 앞에 섰다. 무대 위와는 전혀 다른, 편안한 옷차림에 모자를 눌러쓴 모습이었다.


“아뇨. 공연 생각하면서 멍 때리다 보니 금방이었어요.”


둘은 말없이 나란히 걸었다. 화려한 공연장과는 전혀 다른, 조용한 밤공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 그렇게 몇 분을 걷다 도착한 벤치에 나란히 앉자, 유원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대에서 봤을 때는 실감이 안 났는데, 지금 보니까 진짜 와줬네요.”


나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하죠. 중요한 무댄데, 안 오면 섭섭했을 거잖아요. 물론 취재 요청이 와서 온 거기도 하지만요.”


그 순간, 공연 내내 마음속에 담아뒀던 말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무대 위의 화려함과 무대 밖의 소탈함, 그리고 그 사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 있다는 걸 두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다.


유원우는 신나게 공연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무대 뒤에서의 긴장, 리허설 때 생긴 해프닝, 그리고 마지막 곡을 그녀를 위해 부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의 심정까지.


“아까 무대에서 기자님 찾았을 때, 진짜 떨렸어요.”


“농담이죠? 무대에서 그렇게 여유로워 보였는데.”


유원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상하게, 기자님이 있는 걸 알면 긴장되면서도 편안해져요. 뭔가… 나를 제대로 봐주는 사람 같아서.”


그가 말을 마친 후 잠시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나연희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누군가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자신을 받아들여준다는 것이 고마웠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느끼는 신뢰가 전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공연은 어땠어요?” 나연희가 물었다.


유원우는 평소보다 더욱 깊은 목소리로 답했다.

“생각보다 긴장이 많이 됐어요. 하지만 이렇게 팬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자리는 정말 소중하죠. 언제나 큰 힘이 돼요.”


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나연희는 그가 왜 그렇게 팬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왜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려고 하는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무대에서의 유원우와 무대 뒤의 유원우는 조금은 다른 사람 같았다. 무대 위에서는 자신감과 에너지가 넘치는 가수지만, 무대 뒤에서는 자신을 열고 소통하려는 예민하고 차분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 간극 속에서 그가 겪어온 고민과 고통이 엿보였다.


“팬들에게 그토록 힘을 받는다는 건 정말 대단하네요. 그럼, 공연 후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편이에요?” 나연희는 그와의 대화를 이어가려 했다.


유원우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 천천히 말했다.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공연이 끝나면 잠시 휴식이 필요해서, 그때는 음악도 듣고 게임도 하고 책도 읽어보고.. 밀린 잠도 자고…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죠.”


그 말에 나연희는 또다시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가 말하는 ‘혼자’라는 시간은, 그가 겪어온 외로움과 관계된 것처럼 들렸다. 무대 위에서는 팬들에게 힘을 얻고, 무대 뒤에서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그의 진지한 이야기는, 그가 여태 겪어온 다양한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가 왜 이렇게 스스로를 가두려고 했었는지 점점 더 궁금해졌다.


“원우 씨, 그럼 그 혼자만의 시간에 대해 좀 더 얘기해 줄 수 있나요? 어떻게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을 정리하는지 궁금해요.” 나연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원우는 잠시 조용히 있었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간을 보내면서도 마음이 정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예전에는 외로움을 느끼면 더 많이 활동하려 했어요.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고요. 그래서 항상 스케줄을 잡고, 무언가에 집중하려 했죠.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그런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마음이 어떤지 좀 더 이해하려고 해요.”


나연희는 그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외로움을 숨기려 하지 않았고,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외로움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음악과 팬들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겪어온 고립과 그로 인한 상처는, 그의 음악과 공연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동시에 그가 이제 그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그럼 그 외로움 속에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나연희는 다시 한번 물었다.


유원우는 잠시 머뭇거리다,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 속에서 긴 고민과 깊은 감정이 느껴졌다.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이해하는 거예요. 내가 무엇을 원하고, 내가 무엇을 해야 진짜로 행복할 수 있는지… 그런 걸 알아가야만 그 외로움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나연희는 그의 말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원우는 단순히 외로움을 참으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화려한 성공 뒤 찾아온 공허함에 무뎌지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 외로움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으려 했고, 그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점점 깨닫고 있었다.


“오늘 무대, 정말 좋았어요.” 나연희가 말을 건넸다.

“근데 마지막 멘트, 좀 의미심장하던데요?”


유원우는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알아챘어요?”


“뭐, 직업병 같은 거죠.”


잠시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사각거렸다. 유원우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사실… 요즘 무대에 설 때마다 생각해요. 내가 왜 음악을 시작했는지,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은지. 그런데 오늘은 확실했어요. 당신이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대가 더 의미 있었어요.”


나연희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화려한 조명이 아닌 희미한 가로등 아래, 그는 무대 위보다 솔직해 보였다.


“그럼, 앞으로도 자주 초대해 줘요. 기사 쓰는 김에 좋은 음악도 듣게. 내일 공연도 잘 마치고요.”


유원우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말로 다 하지 않아도 되는 무언가가 두 사람 사이에 자리 잡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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