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 속에서도 지켜야 할 것

by 마감했나연

<추천 곡> 닿아있자 - 새봄 (With 오왠)


*소설 속 모티브와 콘셉트 외의 인물, 단체, 장소, 사건 등은 모두 실제와 관계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며칠 뒤, 유원우와 관련된 이상한 소문이 SNS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다. 누군가가 익명 커뮤니티에 쓴 글이었다.


“유원우, 최근 멤버들과 불화로 밴드 탈퇴 준비 중이라는 소식. 솔로 활동에 더 집중하고 싶어 한다고 하네요.”


처음엔 그저 뜬소문처럼 보였다. 하지만 같은 내용이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몇몇 가십성 매체들이 이를 기사화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유원우가 최근 솔로 활동에 집중했던 이유도 탈퇴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연희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편집장에게 불려 갔다.


“나 기자, 유원우 관련된 루머 봤지? 너 요즘 그쪽 라인 잘 알고 있으니까 사실관계 파악해서 기사 써. 경쟁사들보다 늦으면 안 돼.”


나연희는 자리로 돌아와 한숨을 내쉬었다. 탈퇴라니, 말도 안 돼.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망설임 끝에 나연희는 유원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그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나 기자님?”


“원우 씨, 지금 온라인에서 도는 얘기 봤어요? 밴드 탈퇴 준비 중이라는 루머.”


유원우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한숨 소리가 들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밴드 탈퇴는커녕, 다음 앨범 준비로 매일 연습실에 있는데… 대체 누가 이런 걸 퍼뜨리는지 모르겠네요.”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알겠어요. 제가 이 부분 바로 정리할게요. 사실관계 바로잡는 기사로요.”


그렇게 통화를 끊고 나연희는 서둘러 기사를 작성했다.


[단독] 유원우, 밴드 탈퇴설 사실무근…“다음 앨범 준비 중”


기사에는 유원우의 직접 발언을 인용해 루머가 근거 없는 이야기임을 분명히 했다.


기사는 빠르게 메인 페이지에 걸렸고, 다른 언론사들도 이를 인용하기 시작했다. 사무실 안에서도 반응이 바로 왔다.


“나 기자, 역시 발 빠르네! 요즘 원우 쪽 잘 잡고 있더라니까. 단독으로 이 정도 기사 뽑아주면 회사에서도 더 기대하겠어.” 편집장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러나 칭찬의 달콤함도 잠시, 퇴근 직전 휴대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뜬 이름은 00일보 선배 기자.


“나 기자, 요즘 유원우랑 친하네? 바로 단독 기사까지 뽑고.”


나연희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 그냥 확인차 연락했던 건데 마침 통화가 닿아서요.”


선배 기자의 목소리가 묘하게 짓궂어졌다.


“그래? 근데 진짜 아무 사이 아니야? 저번에 찍힌 사진도 있고, 요즘 돌아가는 분위기도 묘해서 말이야.”


나연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솔직하게 말할 수도,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에요. 그냥 친분 있는 정도죠.”


“흠, 그렇다고 치자 그럼. 아무튼 조심해. 사람들 눈은 생각보다 예리하니까.”


전화를 끊고 나서야 나연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몇 시간이 지나고 나연희는 퇴근 후 카페에서 기사 마감 중에 있었다. 커피가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 화면을 바라보던 중, 휴대전화가 울렸다.


[유원우] 기자님, 근처에 계세요? 잠깐 볼 수 있을까요?]


망설임도 잠시, 나연희는 답장을 보냈다.

[네, 어디 계신가요?]


10분 뒤, 카페 문이 열리고 유원우가 들어왔다. 역시나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푸른 계열의 니트를 입은 그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끌었다. 나연희는 조용히 손을 흔들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유원우는 커피를 시키며 웃었다. “별일은 아니고, 그냥… 요즘 기자님 생각이 자꾸 나서요. 바쁜가 싶어 망설였는데, 안 보면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그의 솔직함에 나연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최근 들어 누군가가 이런 식으로 다가오는 일이 드물었다. 특히 일과 사생활을 엄격히 분리해 온 그녀에겐 더욱.


“이런 말 하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는 거 아는데요.” 유원우는 커피잔을 손에 쥔 채 말을 이었다.

“기자님이랑 있을 때, 내가 나 자신을 좀 더 솔직하게 느껴요. 그래서 자꾸 보고 싶어 져요.”


나연희는 한참을 그를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이상하네요. 저도 그래요.”


순간,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기자와 가수라는 틀을 넘어,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


그날 밤, 나연희는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닫고 창밖을 바라봤다. 선을 넘는다는 건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었다. 다만, 그 선 너머의 세상에서 무엇을 마주할지 아직은 알 수 없을 뿐이었다.


유원우는 더 이상 숨기려 하지 않았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였다. 연락은 더 자주 왔고, 이유 없이 찾아오는 일이 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 관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다음 날, 일이 끝난 저녁에 유원우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바빠요?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조금 걱정되는 마음에 그녀는 바로 장소를 물었고, 둘은 유원우의 회사 근처 조용한 공원에서 만났다.


유원우는 한참 말없이 나연희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 기자님, 나 이제 좀 솔직해지려고요.”


“…뭐에 대해서요?”


“내 마음이요.”


나연희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예상치 못한 고백이었다.


“처음 기자간담회 때 봤을 때부터… 아니, 그날도 좋았지만, 오히려 우리가 따로 인터뷰하면서 알게 된 나 기자님 모습이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솔직하고, 예리하고, 또 이상하게 편안하고.”


유원우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요.. 내가 먼저 말해버리면 나 기자님은 더 고민될 것 같지만… 그래도 말하고 싶었어요.“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나, 좋아해요.”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나연희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유원우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봤다. 반응을 기다리는 듯한 그의 눈빛에 나연희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기자와 연예인.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두 사람.

그동안 나연희가 써온 수많은 연애 기사 속 주인공이 자신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쫓던 관계가, 이제 내 일이 아니라 내 삶이 되어버렸다.’


심장이 자꾸만 두근거렸다.

설렘인지, 혼란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그녀를 휘감았다. 입술이 그녀도 모르게 열렸다가 다시 다물어졌다. 쉽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유원우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강요하지도, 다그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전하고 그녀가 스스로 답을 찾기를 바라는 듯했다. 하지만 나연희는 여전히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지 못했고, 쉽게 답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날 밤, 나연희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침대에 누운 채, 하염없이 천장을 바라봤다. 감정과 이성이 끊임없이 싸웠다.


‘이 관계를 받아들이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는 기자라는 걸 잊지 말자.’

‘하지만.. 사람으로서의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책임감과 욕망, 현실과 본능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흔들렸다. 그를 향한 마음이 없었다면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를 마주할 때마다, 유원우라는 사람 자체가 이미 그녀 안에서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아티스트로서, 음악가로서, 그리고 한 남자로서.


‘그를 좋아하면 안 되는 걸까?’

‘우리도 그냥 ‘나연희‘와 ’유원우‘로서 마주할 순 없는 걸까..?’


결국 그녀는 밤새도록 떠오르는 고민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기자로서의 본분을 지키며 선을 그어야 하는지, 아니면 사람으로서 본능과 마음을 따를 것인지.

새벽이 다 가도록 그녀는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조금씩 그에게 기울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깊어진 감정을 인정할 용기가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결정했다.

사람으로서의 감정에 더 솔직해지기로.


정신없이 몰아친 업무를 겨우 끝마친 나연희는 그날 오후, 유원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우 씨, 오늘 저녁 시간 돼요? 밥이나 같이 먹을래요?”


전화기 너머의 유원우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네, 그럼 오늘은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실게요.”


그렇게 두 사람은 조심스럽지만 진심을 담아 만남을 시작했다. 바깥세상의 시선과는 무관하게, 그들만의 속도로, 그들만의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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