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늘 만날까, 밤에 별이 예쁘다던데
<추천 곡> 우리 오늘 만날까 - 이민혁
*소설 속 모티브와 콘셉트 외의 인물, 단체, 장소, 사건 등은 모두 실제와 관계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나연희와 유원우의 관계는 이제 더 이상 숨겨진 감정도, 거리감도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솔직해지기로 결심한 후,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몰랐던 서로의 세계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됐다.
유원우는 나연희의 삶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그동안 자신이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걸 깨달았다. 인터뷰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만 봤을 때는 단순히 질문을 던지고 기사를 쓰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연희의 하루를 가까이서 지켜보니, 그 직업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하루에 인터뷰 한두건 하면 다행이지, 취재 일정이 생기면 하루 종일 발이 닳도록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해. 마감에 쫓기고, 기사가 나가면 또 후속 반응도 봐야 하고…”
나연희는 피곤한 얼굴로 노트북을 두드리며 말했다.
유원우는 말없이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바라봤다. 그녀의 어깨너머로 화면을 보니,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기사 초안과 메모들이 가득했다.
“이제야 알겠어. 기자님이 항상 피곤해 보였던 이유를.” 유원우는 조용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연희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어차피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
그녀의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그 안에 깃든 무게를 알 것 같았다.
유원우는 말없이 그녀 앞에 따뜻한 차를 내려놓았다.
“그렇다고 혼자 다 견딜 필요는 없잖아.”
나연희는 잠시 타이핑 중이던 손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앞의 차에서 은은한 향기가 퍼졌다.
“유자차야. 몸 좀 따뜻해지라고.”
그녀는 살짝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다가 작게 웃었다.
“의외네. 이런 거 잘 챙겨주고.”
“누군가를 챙기는 건 익숙한데, 기자님이 받아주는 건 익숙하지 않네.”
나연희는 차를 손으로 감싸 쥐며 살짝 시선을 피했다.
따뜻한 온기가 손끝에 스며들었다.
반대로 나연희도 유원우를 만나면서 스타의 삶이 결코 화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가수는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이지만, 무대 아래에서는 생각보다 더 외로운 사람이야.”
나연희는 그의 말을 가만히 곱씹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유원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오히려 더 그래. 늘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정작 내 얘기를 솔직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
그의 목소리에는 담담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조용한 외로움이 배어 있었다.
유원우가 불쑥 내뱉은 말에 나연희는 고개를 들었다.
“난 너희가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고 팬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아서 오히려 외로울 틈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유원우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보이겠지. 근데 무대 아래로 내려오면, 뭐랄까 좀 공허하고 허전해. 다들 ‘유원우’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정작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고민을 하며 사는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연희는 기자로서 스타들을 바라보던 자신의 시선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들의 화려한 겉모습만을 보고 쉽게 판단해 버렸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네가 나한테 다가왔을 때 더 신기했어. 기자인데도, 이상하게 넌 날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 같았거든.”
나연희는 그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원우의 말처럼, 그녀 역시 이제는 그의 무대 위 모습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었다.
유원우는 어느덧 데뷔 13년 차 가수가 됐고, 음악적으로도 멋지게 성공한 꽤나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연애를 시작한 후, 그는 늘 나연희에게 좋은 것들을 아낌없이 베풀었다.
“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돼.”
고급 일식집에서 비싼 저녁을 먹고 나오며 나연희가 말했을 때, 유원우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곳만 가고, 좋은 걸 마음껏 누리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그는 늘 좋은 곳에 데려가 주었고, 좋은 것들을 사주었고, 바쁜 스케줄 가운데에서도 나연희에게 최선을 다했다.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언제나 그녀를 위한 배려가 가득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연희도 매번 받기만 하는 게 영 불편했다. 좋아하고 아끼기에 유원우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었다. 그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고, 자신이 물질적으로 더 베풀 수 있는 건 없었지만, 그가 힘들어할 때마다 늘 정신적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유원우가 스케줄로 지쳐 있을 때, 나연희는 그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었고, 무대 뒤에서 불안해할 때는 단 한마디로 그를 위로해 주었다.
“괜찮아. 네가 무대 위에서 어떤 모습이든, 나는 그냥 네가 좋아.”
그 한마디가 그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위안이 됐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그녀가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그에겐 많은 위로가 됐다.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반짝이는 순간만 보지만, 난 알아요. 그 뒤에서 얼마나 부단히 노력하고 애쓰고 있는지.”
유원우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노력은 절대 헛되지 않을 거예요.”
나연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말을 듣고 나면, 이상하게도 조금 더 버틸 힘이 났다.
무대 뒤에서 불안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연을 앞두고 숨을 가다듬으며 긴장을 풀려해도, 때때로 자신을 향한 팬들의 기대와 부담감이 그를 짓눌렀다.
그럴 때 나연희는 묵묵히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는 언제나 팬으로서 그의 무대를 응원하면서도, 동시에 연인으로서 ‘사람 유원우’를 더 소중히 여겨주었다. 무대에서 예상치 못한 실수를 하거나 완벽한 퍼포먼스를 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그에게 나연희는 말했다.
“한 번의 실수로 네가 만들어온 모든 게 사라지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마음 편히 해. 이 시간을 즐기고 와.”
혹여 넘어질까 봐 두려워할 때면,
“넘어지면 내가 일으켜 줄게요. 대신 넘어지더라도 너무 창피해하지는 말기.”
유원우는 피식 웃었다.
“창피하지는 않을 거야. 대신 엄청 투덜댈지도 몰라.”
나연희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그럼 들어줄 테니까 마음껏 투덜대요.”
그녀는 항상 그런 사람이었다.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면서도, 결국은 언제나 그의 편에 서 있었다.
“네가 가는 길이 어디든, 난 무조건 네 편이야.”
그 한마디가, 때때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에도 그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그들은 그렇게 매일같이 서로에게 끊임없이 표현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애정을 줬다.
“기자님.“
“왜?”
“그냥. 보고 싶어서 불러봤어.”
유원우는 나연희를 볼 때마다 사랑스럽다는 듯이 미소 지었고, 표현이 서툴던 나연희도 점점 그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나도.”
“뭐?”
“보고 싶었어.”
사랑이 깊어지는 과정 속에서, 둘은 서로를 더욱 이해하고, 더 많이 아껴주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에게 세상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서로를 진심으로 바라봐 주는 이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후 며칠 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나연희는 퇴근 후 유원우와 가벼운 저녁을 먹거나, 같이 책방을 들러 책을 고르기도 했다. 둘 다 각자 스케줄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틈을 내어 서로를 찾는 일이 익숙해졌다.
어느 날 저녁, 나연희가 퇴근길에 카톡을 확인하자 유원우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기자님, 오늘 별 보러 갈래요?]
‘별? 갑자기?’
나연희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답장을 보냈다.
[좋아. 어디로 갈까요?]
몇 시간 뒤, 두 사람은 서울 외곽의 조용한 전망대에 서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곳까지 달려온 끝에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나연희는 조용히 숨을 들이마셨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요함이었다.
찬 공기 속에서 유원우가 담요를 건넸다.
“생각보다 쌀쌀하지.”
나연희는 담요를 어깨에 두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도심을 벗어나니 별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렇게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던 중, 유원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런 순간이 참 좋아. 복잡한 세상에서 잠깐 벗어난 것 같아서.”
나연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원우 씨 덕분에 이런 순간을 알게 됐어. 고마워.”
그 말에 유원우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따뜻하면서도 어딘가 간절했다.
“서울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네.”
나연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유원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별 보는 거 좋아해?“
“응, 좋아해. 근데 어릴 때나 많이 봤지. 기자 되고 나서는 이런 여유도 갖기가 쉽지 않더라고.”
그 말에 유원우는 잠시 나연희를 바라봤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빛은 유난히 평온해 보였다.
“그럼 잘 왔네.” 유원우가 미소 지었다.
“이런 건 가끔씩이라도 봐야 해요.”
이 말에 환하게, 그리고 예쁘게 그녀가 웃었다.
“연희 씨.”
갑작스럽게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나연희는 흠칫 놀랐다. 처음으로 그의 입에서 나오는 자신의 이름이, 이상하게 가슴을 두드렸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유원우는 한걸음 다가섰다. 그러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랑 만나기로 결정한 거, 쉽지 않았을 텐데.”
나연희는 시선을 내렸다. 사실이었다.
평범한 삶을 살던 그녀에게 연예인과의 연애는 많은 고민을 안겨줬다. 그가 어떤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이 길을 선택한 건 그녀 자신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녀가 선택한 건 유원우였다.
유원우는 그런 나연희를 조용히 바라보다, 살며시 손을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조심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런데도 날 받아줘서 고마워요.“
나연희는 천천히 유원우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진지했고,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고 있었다.
그 감정을 더 깊이 전달하고 싶었는지, 그는 그녀의 손을 한 번 더 꼭 쥐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연희 씨가 부담이 되지 않도록, 내가 더 잘할게요. 절대 후회하지 않게 할게.”
그의 목소리는 단단하면서도 조심스러웠다.
마치 한 번의 맹세처럼.
나연희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그럼… 기대해도 되겠네요?“
유원우는 그 말을 듣자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나연희는 가만히 그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여 그의 손을 포근히 감쌌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요. 그러니까, 잘해봐요. 나 정말 기대할 거야.“
그녀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보이자, 유원우는 작게 웃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유난히 밝은 별 하나가 반짝였다. 별빛 아래, 두 사람의 거리는 더 이상 좁힐 필요가 없을 만큼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