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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Sep 17. 2020

땀막훙 레시피

완벽한 땀막훙을 먹는 법

'땀막훙 짠능더(땀막훙 한접시 주세요)'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 낡은 나무테이블 딱 하나, 그릇 너댓개, 접시 너댓개, 소금, 설탕, 미원, 빠덱, 라임, 고추따위가 든 플라스틱통들, 액젓, 간장 따위가 든 병 몇 가지, 그리고 작은 절구통 하나가 아무렇게나 놓여져있는 그 곳은 간판도 메뉴판도 없었지만 동네의 누구나 그 곳이 땀막훙을 파는 음식점인 줄을 알고 있었다.


땀막훙은 파파야샐러드라고 번역되지만 김치가 차이니즈캐비지 샐러드가 아니듯 땀막훙은 땀막훙일 뿐이다. 아삭한 식감의 그린파파야(막훙)를 채썰어 온갖양념을 넣어 쿵쿵 찧어서(땀) 만들기에 '땀막훙'이다. 라오스에 먼저 정을 붙인 사람으로서 유명한 태국의 '쏨땀'은 단지 애들 장난일뿐이라며 땀막훙부심을 부리게되는데,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지날때마다 사방에 날리는 먼지가 이미 늘어날대로 늘어난 모공마다 속속 박혀드는 것 같은 시골의 노천식당에 앉아 쿰쿰한 냄새가 나는 빠덱(생선젓갈)이 뭉텅, 얼얼한 고추 열댓개가 우르르 들어간 땀막훙 정도는 먹어봐야 땀막훙의 맛을 논할 자격이 된다고나 할까. 덥거나 더 더운 계절뿐인 라오스에서 혼이 나갈 듯 가장 더운 계절엔, 그늘에 앉아 맵디 맵거나 시디 신 간식을 먹어야 그나마 정신을 붙들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건기의 끝, 메마른 붉은흙이 뭉게뭉게 뜨거운바람을 타고 흩날리고 태양의 열기를 가득 품은 열매들이 무성한 잎사귀 사이로 파랗게 빨갛게 매달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땀막훙을 주문했고, 주인 아주머니는 들은 둥 만 둥 알았다는 말도 눈빛도 없이 휑하니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아무리 수다를 떨어도 아무리 멍하게 시간을 보내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 '혹시, 파파야를 따러 간 것 아니야?' 라는 농담이 오고갔을 무렵, 그녀가 용도를 알 수 없는 기다란 막대를 들고 나타났다. 파파야를 따러 갔냐는 말은 정말로 농담이었지만 우리는 그녀가 손에 땀막훙은 커녕 파파야조차 들고 오지 않은 것에 몹시 실망했다. 라오스는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그녀는 우리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채, 갈래갈래 찢어진 우산모양으로 길쭉하게 솟은 파파야나무로 터벅터벅 걸어가서, 긴 막대로 뚝 하고 그린파파야 한통을 따오더니, 넙적한 칼로 쓱쓱쓱쓱 녹색 껍질을 벗기고, 칼을 세워 하얀 속을 툭툭툭툭 돌려가며 칼집을 낸 후, 칼을 눕혀 싹싹싹싹 밀어내면 채쳐진 파파야가 절구그릇 위에 착착착착 쌓이고, 바글바글 까맣고 동그란 파파야씨들은 휙 아무데나 던져버린 후, 채썰어진 파파야 위에 빠덱*을 두어스푼 툭툭 넣고, 소금과 설탕을 휘휘 뿌리고, 쥐똥고추를 한주먹 우르르 넣고, 액젓을 쭉 짜넣고, 마늘 두어개, 라임 서너개, 방울토마토 대여섯개, 길쭉한 콩줄기 몇 개를 적당히 썰어 넣은 후 방망이로 쿵쿵쿵쿵쿵 찧어 완성된 땀막훙을 접시에 담아왔다.


맵고, 시고, 달고, 짜고, 오감을 자극하는 영혼의 음식 땀막훙을 먹는 완벽한 순간이었다.

* 빠덱: 메콩강에서 잡은 민물생선을 삭혀 만든 라오스 전통 젓갈로 땀막훙과 쏨땀을 구분짓는 핵심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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