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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Aug 10. 2023

'개'도국에서 살 자격

마을 면담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사륜 픽업트럭을 타고 붉은 흙먼지가 날리는 울퉁불퉁한 길을 지난다. 길고 넓적한 이파리들로 무성한 나무들, 위태로워 보이는 나무집들, 그 안에서 낡은 옷을 입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사람들이 스쳐간다. 갑자기 왼쪽 손목에 떨림이 느껴졌다. 비포장 도로에 몸이 얼마나 흔들렸던지 애플워치에 '운동 중이신가요?'라는 메시지가 떠 있다. 그런 곳이다. '마을'이라는 곳은.


소변이 마려워서 길가의 주유소에 차를 세웠다. 주섬주섬 휴지를 챙겨 들고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개들이 요란하게 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주유소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개들이 타깃을 발견한 듯 목청껏 짖어대며 다가오고 있었다. 흰색 개, 검은색 개, 누렁개, 얼룩 개... 네 마리나 있다!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타나 개들에게 진정하라는 듯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냈으나 개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직원 한 명이 차에서 내리더니 괜찮다고 안심시키며 화장실까지 에스코트해 줬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후다닥 화장실로 들어갔다.


개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예측불가능한 두려운 존재일 뿐이다. 어렸을 때는 골목을 지나다니는 게 늘 곤욕이었다. 개의 의도야 어떻든 컹컹 짖으며 따라오는 개를 피해 으아아아악 소리 지르며 도망치기 일쑤였고, 짖는 개를 정면으로 노려보며 기선 제압하기, 과자를 떨어트려 관심을 분산시킨 후 재빨리 도망치기, 애써 못 본 척하고 태연하게 지나치기 등 여러 기술을 연마해야만 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골목 한가운데를 지키고 서서 짖어대거나 쫓아오는 개들을 만날 일이 없다. 개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이곳에서는 강아지, 고양이, 닭, 오리, 돼지, 소 등등을 길거리 곳곳에서 마주친다. 어쩌다 길에서 뛰기라도 하면 온 동네 개들이 짖어대며 우르르 쫓아오고, 노천식당에서 앉아 음식을 먹으면 다리 사이를 슥슥 지나다니는 개와 고양이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다. 위협적인 부리를 앞세우며 긴 다리로 껑충껑충 달려오는 닭 때문에 혼비백산하기도 하고, 도로 한가운데에 나른하게 앉아 일광욕을 하고 있는 소떼들 사이를 요리조리 조심스레 지나가야 할 때도 있다.


어쨌든 그래도 가장 곤란한 것은 골목마다 어슬렁거리는 개들이다. 라오스에서 지낸 시간까지 합하면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동남아시아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의 자유로운 개들과 전혀 친해지지 못했다. 이곳에서 만나는 개들은 예의 바른 주인장의 손에 목줄이 묶인 귀여운 개들이 아니다. 몸집도 비슷하고 생긴 것도 비슷한데, 사나워 보이는 얼굴에 날카로운 이빨, 짧고 거친 털에 살이 거의 없는 긴 다리를 가진 개들이다. 개의 품종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잘생기고 예쁜 개냐 아니냐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본래 개를 무서워하는 인간이 보기에 결코 친숙해지기 힘든 모습의 개들임은 확실하다.


쪼그려 앉아 볼 일을 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혹시라도 화장실 구석 어딘가에서 반갑지 않은 손님이 나타나기라도 할까 봐 내내 긴장하고 있다가 후다닥 뒤처리를 하고 나왔다. 도마뱀과 거미들이 돌아다니는 어두컴컴한 시멘트 공간에 쭈그려 앉아 볼 일을 보는 것이나 사납게 짖어대는 개들이 길거리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는 것은 여전히, 아니 어찌 된 일인지 점점 더 익숙해지지 않는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네 마리의 개들은 벌써 흥미를 잃어버렸는지 바닥에 널브러져 있거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차로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개도국에서 살 자격이 없다!"


깨끗하지도 편리하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농촌지역 도로변 주유소의 화장실에 반가워서인지 경계해서인지 모를 개들의 컹컹 짖는 소리 때문에 5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벌써 너덜너덜해진 기분이었다. 이런 것이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라면 이제 그만 개발도상국을 돌아다니며 일하는 것은 그만둬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오스의 시골 곳곳을 돌아다니며 더 열악한 환경도 견뎠던 날들이 숱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적응은커녕, 이제 캄보디아의 작은 지방 도시에 살면서 산책 한번 마음 편히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내면과 싸우며 견뎌왔던 것들이, 이제 막 도착한 해외봉사단 대학생만큼이나 새롭고 낯선 것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퇴근 후에는 집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개들은 가장 시원하고 편안한 곳에 자리 잡고 늘어져 있거나, 어슬렁거리며 동네 친구들과 어울린다. 개들은 자유로운데, 나는 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캄보디아의 개들이 대부분 사람에게 공격적이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그중에 한놈은 공격적인 것이 문제다!). 하지만 목줄을 하지않은 개는 순간 긴장하게 한다. 개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건 당연한 건데, 이제 그것이 불편해졌으니 이게 개발의 부작용일지도 모르겠다.


...


아니, 그래도 동네에 개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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