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왓에 다녀온 것이 벌써 15년 전이다. 그땐 가이드북을 하나 들고 혼자서 3일동안 앙코르와트와 주변 사원들을 열심히도 걸어다녔더랬다. 더운 날씨에 피곤함이 쌓여 있었고, 가이드북을 들여다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는 것이 더 많아서 아무도 가지 않는 작은 사원의 돌무더기 위에 주저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빈둥거리는 것에 만족했었다.
가이드북을 읽기 어려웠던 이유는 기초 배경지식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었다. 힌두교도, 남방불교도, 앙코르제국도 낯설기만했다. 처음 듣는 신과 왕들의 이름, 처음 듣는 신화와 역사 이야기들이 갑자기 우르르 쏟아지면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가이드투어를 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처음엔 새로운 세계에 흥미를 느낄지 모르겠지만 무자비하게 내리꼿히는 뜨거운 햇살과 달궈진 돌덩이들 사이에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다보면 앎의 기쁨도 잠시, 제발 시원한데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해질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가이드투어를 하며 그런 경험이 많았다. 알고있는 작은 지식 하나라도 놓칠세라, 발음도 생소한 이름의 신과 왕들이 등장하는 온갖 이야기들을 줄줄이 풀어내는 열정적인 가이드에게 이제 그만 알고 싶다고, 제발 간단히 하고 끝내달라고 싹싹 빌고싶어지는 순간 말이다. 너무 많은 것을 듣고 나면 오히려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이런 참사를 막고 싶다면, 앙코르왓에 가기 전에 들러야할 곳이 있다. 바로 씨엠립에 위치한 '앙코르 국립 박물관'이다.
비가 그친 오후에 찾은 앙코르 국립 박물관, 눅눅한 공기를 날려버릴 시원한 실내를 기대했는데 입장을 하고 나선형 계단을 따라 2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금새 땀이 났다.
박물관은 주제에 따라 전시관이 나뉘어져 있고 2층에 다다르면 첫번째로 보이는 브리핑 홀로 들어서자 비로소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불어왔다. 브리핑 홀(The Briefing Hall)에는 박물관에 대한 영상을 다양한 언어로 보여주는데, 15분 정도 걸린다.
브리핑룸에 잠시 앉아서 쉬다가 다음 전시관인 전용관(Exclusive Gallery)으로 건너갔다. 이곳에는 수많은 크고작은 불상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천불도'라고 부르는 전시관이다. 입구에 무드라(좌선할때의 손모양)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는데, 불상마다 취하고 있는 무드라의 모양을 살피며 구경하면 수 많은 불상들이 하는 이야기를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디오가이드를 들으며 쭉 따라가면, 크메르 문명관(Gallery A: Khmer Civilization), 종교와 신앙관(Gallery B: Religion and Beliefs), 위대한 크메르 왕들 전시관(Gallery C: Great Khmer Kings), 앙코르 와트관(Gallery D: Angkor Wat), 앙코르 톰관(Gallery E: Angkor Thom) 등으로 이어지며 본격적인 앙코르문명에 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박물관의 모든 것을 샅샅이 알아야할 필요는 없다. 그저 힌두교와 불교가 어우러진 앙코르문명의 초급단계의 맛을 본 것으로도 족하다. 이제 시바와 비슈누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우유바다신화에 등장하는 신과 악마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자야바르만 7세라든지, 로케슈바라라는 이름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박물관은 옛 이야기를 품고 있다. 위대한 이야기부터 인류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까지.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 앞엔 언제 만들어진 무엇인지 간단한 몇마디가 쓰여있을 뿐이지만, 수백년, 수천년의 세월을 건너온 그 이야기를 찾아내는 건 우리의 몫이다. 그게 박물관이 가진 매력이겠지.
덥고 꿉꿉한 우기에 씨엠립을 찾았다면 앙코르 국립 박물관에서 보송보송한 기분으로 지성과 감성을 채우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앙코르 국립 박물관 입장료 : 5 USD
오디오가이드 비용 : 12US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