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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 Dec 17. 2023

내 방의 크리스마스 조명

프놈펜의 러시안 마켓에 갔을 때, 장식용 알전구를 하나 샀었다. 야시장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그란 볼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조명을 전부터 사고 싶었다. 살까 말까 고민하던 것이 라오스에 살 때부터니까 적어도 십수 년은 됐다. 예쁠 것 같아서 한번 사볼까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집에 달아놓을 공간도 마땅치 않을 것 같고, 없다고 아쉬울 물건도 아니니 매번 지나치곤 했다. 무엇보다 아무 때나 사고 싶으면 살 수 있으니 간절함도 크지 않았다.


이곳 스레이소폰에 거주하게 되고 나서 얼마 후 프놈펜 출장을 가게 됐을 때 러시안 마켓에 들렀었다. 정작 프놈펜에서 살 때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이다. 주중엔 퇴근 후 시장이 문을 닫아서 못 갔고, 주말엔 집에서 미적거리다 못 갔다. 이번에 못 가면 다음에 가지 뭐, 하는 생각을 하며.


스레이소폰에 살게 되니 그 흔해빠진 조명이 그제야 간절해졌다. 프놈펜 출장 일정보다 일부러 하루 일찍 출발해서 러시안마켓에 갔다. 한창 더운 시즌이라 제대로 구경하기도 힘들었지만, 기념품들을 파는 가게에서 그 조명을 찾아 사 왔다. 알록달록한 색깔이 많았지만 흰색과 옅은 베이지색의 조합을 구했다.  


역시나 걸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침대 머리맡에 길게 늘어놓았다. 그 동그란 볼들이 자꾸 빠져서 굴러다니는 것이 좀 거슬렸지만 밤에 불을 밝히면 그런대로 괜찮았다.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으면 불이 들어오는데 따로 전원 스위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니 며칠 켜 놓고 자다가 곧 귀찮아졌다. 결국 침대 머리맡에 쓸데없이 나뒹구는 신세가 되었다.


어느 날은 집에 와보니 숙소를 청소해 주는 메이드가 전구조명을 전부 비닐봉지에 넣어 치워 놓았다. 침대맡을 청소할 때 얼마나 걸리적거렸을까 생각해 보면 이해는 가지만, 선을 넘은 행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기가 막히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굳이 다시 설치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알전구 조명은 비닐봉지에 싸인 채 잊혔다.


아이가 집에 왔을 때, 조명을 다시 꺼냈다. 분명 아이가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고심하며 설치 장소를 찾았다. 아무래도 침대 머리맡은 적당한 장소가 아니었다. 침대 앞의 화장대 위에 고리 두 개를 걸고 거울 주변으로 둘러주었다. 씨엠립의 바벨 에코숍에서 사 온 크리스마스 뜨개 장식들도 함께 달아놓으니 트리는 없지만 꽤나 훌륭한 크리스마스 조명이 되었다. 자려고 누우면 아늑하게 빛나는 조명과 크리스마스 장식을 아이는 몹시 마음에 들어 했다.


"꼭 밤하늘의 별 같아."


매일 밤 아이는 반짝이는 동그란 조명들을 바라보며 잠든다. 어떤 물건의 쓸모는 무엇으로 정해지는 걸까? 침대에 누워 가만히 불빛들을 바라보면 그야말로 풍요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흔하고 거추장스러운이  조명이 특별해진 건 함께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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