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을 끄고, 스탠드를 켠다. 노란색 불빛 아래에서 노트북을 켜고 잔잔한 음악을 고른다. 그거면 된다. 글을 쓸 준비가 된 것이다. 최근 한달 간 글을 쓸 수 없었다. 바빴고, 그 후엔 아팠고, 다시 바빠졌고, 다시 아팠다.
시간에 밀리고 쫓기며 하루를 보내고, 머리속을 떠도는 그 날의 기억들, 감정과 생각들을 메모할 기운조차 없이 잠 속으로 빨려들어가던 순간에 간절히 바라던 것이 있었다.
쓰고 싶다.
간신히 노트를 펴고 졸린 눈을 꿈뻑이던 날도 있었다. 방전된 체력을 펜끝으로 끌어모아 보다가 포기하고 덮어버린 날도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있었다. 글을 쓰지 못할 이유는 많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늘어났다. 다른 할 일이 많아서, 오늘은 너무 피곤하니까, 감기몸살때문에, 드라마를 보느라, 아이가 너무 늦게 자서, 그리고... 무엇을 써야할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글쓰는 것은 아무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그 동안 글쓰는 일을 너무 쉽게 여겼다. 틈틈이 시간을 내서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틈을 내서 글을 쓰는 것은 집중하기 어려웠고, 그 틈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지난 달부터는 4개월만에 만난 아이와 퇴근 후 저녁시간과 주말을 함께 보내다보니 더욱 어려워져서 '10분 글쓰기'를 시도했지만, 그 10분도 확보할 수가 없었다. 캄보디아로 파견되기 전에 한국에서 육아를 하면서도 늘상 그랬던 것 같다. 오늘은 아이가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피곤한 몸을 일으켜 스탠드 불을 밝혔다. 아이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달린 전구도 켰다.
혼자 쓸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가 오기 전에도 새벽시간은 여전히 너무 힘겨운 미션이라서 특별한 일정이 없는 저녁에 글을 썼었다. 주의가 분산되지 않는 스탠드 불빛을 켜고, 일정 시간 집중력을 돕는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글을 쓰고 있으면 그 자체로도 좋았다.
릴케가 젊은 시인에게 보낸 편지 속 조언처럼 '글을 쓸 수 없게 되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 묻는다면, 나로서는 그처럼 비장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저 살아있는 동안 무엇이든 써야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다만 무엇을 쓸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여태까지 아무것도 제대로 쓴 것이 없다는 좌절대신 여전히 쓰기를 포기하지 않은 나를 격려하려 한다. 좋은 글을 쓰고싶다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일상의 풍요로움'을 천천히 써 나가려 한다. 바쁘고 아픈 시간을 보낸 후, 비로소 스탠드 불빛과 음악을 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