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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Mar 09. 2024

일상으로의 휴가

세 살 아이를 두고 해외파견 간 엄마 이야기

엄마 해외파견 다녀올게


5. 일상으로의 휴가


매일 오후 12시 30분이면 휴대폰을 열어본다. 어린이집의 알림장을 확인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2시 30분에 올라오지만, 나는 12시 30분에 확인할 수 있다. 아이 사진들과 그날의 활동내용을 보다가 함께 점심을 먹는 동료들에게 불쑥 내밀기도 한다. 


"이것 봐요, 귀엽죠?"


나도 안다. 결혼도 안 한 사람에게 아이 사진을 보여주는 것은 고문이라는 것을. 고맙게도 관심을 보여주는 동료들 덕에 한두 마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퇴근 후 숙소로 돌아오면 저녁을 만들어 먹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기대서 아이의 사진을 본다. 최근에 남편에게서 받은 사진들, 어린이집에서 올려준 사진들, 예전에 찍어놓은 수백 개의 사진과 동영상들을 뒤적뒤적거린다. 작년 이맘때 아이랑 벚꽃을 보러 가고, 놀이공원에 가고, 근처 저수지에도 가고, 멀리 바다도 보러 갔었구나.


사진첩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장난감이 잔뜩 어질러진 거실에서 무언가에 열중하는 사진, 입을 크게 벌리고 와아아 울고 있는 사진, 목욕 후 수건만 걸치고 장난치고 있는 사진, 침대에 누워서 같이 찍은 셀카, 식탁에 앉아 간식을 잔뜩 먹고 있는 사진들을 또 한 장씩 넘겨본다. 아이와 매일 부대끼고 살던 시간과 공간이 그리워지면, 혼자 코를 풀어대며 울었다.


알림장 사진 속 아이가 활짝 웃고 있다. 또 나만 애틋하구나, 하며 화면 속 얼굴을 어루만진다. 그렇게 캄보디아에서의 시간이 흘러간다. 




"엄마! 엄마! 엄마!"


열흘의 휴가를 냈다. 파견 후 다섯 달 만이었다.  다른 동료들은 호주로, 노르웨이로 여행 계획을 세웠지만, 나는 매일 일상을 보내던 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내 옆에 붙어서 "엄마"를 부르고 또 불렀다. 오래 떨어져 지낸 후 혹시 엄마를 어색해할까 봐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아이는 나를 반겼다. 내 손을 작은 두 손으로 잡고 얼굴을 비비고, 무릎 위로 올라와서 한 몸처럼 꽉 껴안았다. 반갑고 행복한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는 아이의 표정과 몸짓을 보며 우리가 언제 떨어져 지냈냐는 듯, 내 마음도 한없이 밝아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반가움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렀다. 내심 반가워도 두 팔을 벌려 반기는 사람 앞에서는 조금 움츠러들곤 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아이를 꼭 끌어안고 보고 싶었다고, 만나서 너무나 기분이 좋다고 마음껏 웃었다. 아이처럼. 


나는 휴가기간 동안 집에 있기로 했다. 근사한 여행지에 가는 것보다, 아이가 일상을 보내는 공간 속에 함께 있고 싶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등원을 하고, 하원 후엔 매일 집 근처의 찜질방으로, 영화관으로, 키즈카페로, 쇼핑몰로 돌아다녔다. 아이는 그동안 많이 자랐다. 더 또박또박 말할 줄 알게 되었고, 어른들이 쓰는 표현을 능청스레 따라 해서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키도 많이 컸고, 혼자서 척척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졌다. 


신이 난 아이를 보면 기쁘면서도 또다시 헤어져야 하는 짧은 휴가 기간을 생각하면 동시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루하루가 너무 귀해서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이의 일상 속에 엄마와의 기억을 꾹꾹 눌러 담아주고 싶었다.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주말에는 육아에서 해방되고 싶다며 친구들은 다들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나왔다. 나에겐 그립고 반가운 육아였기에 아이를 데리고 갔다. 친구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도, 아이에게 충실하지도 못하는 시간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시간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엄마가 온 후로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너그러워졌어요."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가 훨씬 안정되어 보인다고 했다. 아빠나 할머니가 눈치채지 못한 아이의 변화를 선생님은 알고 있었다. 미운 네 살이라서, 원래 고집이 센 성격이라서 그럴 거라고 애써 위안했지만, 아이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나 보다. 한동안 부쩍 친구들에게 까칠하게 대했었는데 엄마가 온 이후로 장난감도 잘 양보하고 기분 좋아 보인다는 것이다. 


어머님은 처음에 적응하는데 힘들었다고 했다. 아이가 할머니 말은 유독 잘 안 듣고, 툭하면 할머니에게 가라고 소리치고 심술을 부렸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가끔 만나더라도 할머니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곤 했던 아이였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사라지고 할머니가 나타났으니, 혹시나 할머니가 가면 다시 엄마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을까? 


하나씩 아이가 겪었을 변화의 흔적을 확인한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을 아이의 혼란을 느낀다. 저녁에 샤워를 하고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리를 빗는데,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아이가 갑자기 달려와 와락 안긴다. 


"엄마! 다신 가지 마!"


그것이 아이의 진심이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어서 아이를 가만히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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