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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Mar 20. 2024

아이의 시간

세 살 아이를 두고 해외파견 간 엄마 이야기

엄마 해외파견 다녀올게


6. 아이의 시간


아이가 입을 묘한 모양으로 삐죽인다. 우는 것도 아니고,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토라진 것도 아니다. 서운하지만 드러내려 하지 않는 표정이다. 작은 입술의 근육이 아주 미세하게 좌우로 당겨졌다 되돌아온다. 얼굴 표정이 어색하게 굳어 있다. 처음 보는 표정이다.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을 때, 종종 아이는 그런 표정을 지었다. 


아이가 떼를 쓰거나 말을 듣지 않을 때 혹시라도 내 목소리가 좀 높아질라치면, 아이의 눈에 소리 없이 눈물이 차오른다.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게 아니라 얼굴을 묻고 훌쩍훌쩍 운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이기에 조금의 나무람에도 한없이 서러워지나 보다. 눈물을 또륵또륵 흘려보내는 눈 속에 원망이 가득하다. 


아이를 다시 만난 휴가 기간 동안 깨달은 것이 있다면, 당연하게도, 아이가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고 있음이었다. 아이가 엄마와의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음이었다. 그 그리움과 서러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집 근처 공원의 놀이터에 그물사다리, 흔들 다리 같은 것으로 이어진 높은 미끄럼틀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원숭이들처럼 날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고 다가선 아이는 첫 사다리에 발을 올리자마자 무섭다며 매달려 꼼짝도 못 했다. 뒤에서 잘 잡아줘도 겁이 나는지 한 발도 떼지 못하고 내려오고 말았다. 결국 미끄럼틀 옆의 그네를 타기로 했다. 그네에 앉아 미끄럼틀을 타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보던 아이가 문득 호기롭게 일어선다. 


"엄마, 나 용기 내볼래! 나중에 너무 깜짝 놀라지 마, 나 부끄러우니까!"


아이는 결국 첫 사다리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또 무섭다고 후들후들 떨다가 내려왔다. "용기를 낸 건 정말 잘한 거야. 다음에 또 용기 내서 올라가 보자." 나는 터지는 웃음을 참고 진지하게 말해주었다. 나는 그저 어느새 용기를 낼 줄도, 부끄럽다는 표현을 할 줄도 알게 된 아이가 대견하게만 느껴졌다. 


아이와의 하루하루가 새로운 발견이었다. 쇼핑몰에서 쇼핑가방에 잔뜩 이것저것 집어넣는 아이에게 "너 이거 다 사려고?" 하니 "아니 그냥 구경만 하는 거야."라고 천연덕스레 대꾸하던 것도, 도깨비로 겁을 주면 혼비백산하는 아이를 낄낄대며 놀려대던 초등학생 오빠들에게 "동생을 놀리는 건 나쁜 행동이야."라고 말하던 것도 아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대견하고 기특했다. 


휴가기간 동안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면 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답게 잘 자라고 있음이었다. 여전지 밝게 웃으며, 사랑과 믿음 속에서 단단하게 아이의 시간을 보내고 있음이었다.  




아이가 혹시라도 엄마가 없는 동안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었지만, 서운하고 불안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남은 가족들은 아이가 그 감정들을 잘 다루어갈 수 있도록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는 중이었다. 매일 함께 지내지 못하더라도 사랑이 변하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엄마라는 든든한 존재를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다. 나와 아이 사이의 유대와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아이의 일상을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짓는 사소한 행동과 표정에 죄책감을 느끼며 현실을 원망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후회하기보다, 가족들과 아이에게 감사하며 지금 이 시간을 견뎌보기로 했다. 


아이가 달린다. 뛰는 뒷모습이 뒤뚱거리고 불안하다. 나는 넘어질까 봐 조마조마하며 뒤따라 달린다. 해 질 녘 하늘 저 멀리까지 아이의 까르륵까르륵 웃는 소리가 퍼져나간다. 통통 통통 뛰고 또 뛴다. 그래도 넘어지지 않는다. 지치지도 않고 잘도 뛴다. 내일, 아이는 엄마가 없는 시간을 다시 보내게 될 것이다. 내일도 아이는 이 길을 뛰어갈 것이다. 뒤뚱거리고 불안해도,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스스로 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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