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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Jul 21. 2024

나만의 시간

세 살 아이를 두고 해외파견 간 엄마 이야기

엄마 해외파견 다녀올게


8. 나만의 시간


캄보디아에서 돌아온 지 벌써 3개월이 지났다. 파견된 지 1년이 지났을 때 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아직 2개월의 연장기간이 남아있을 때였다. 돌아오기 전에 아이와 헤어져 지낸 시간들을 정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업무를 마무리하느라 바빠져서 꾸준히 쓰지 못했다. 지금은 그날들이 먼 옛날처럼 느껴진다. 돌아온 후에는? 물론 더욱 바쁜 날들의 연속이다.




아이와 헤어져서 지내는 상황의 애틋함을 얼마나 더 강조해야 진심이 표현될 수 있을지 모르겠을 만큼 할 말이 많지만, 한편으로는 아이 없이 혼자서 호사스러운 날들을 누릴 수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퇴근 후 집에 들어와 조금 누워서 쉬다가, 씻고 싶을 때 씻고,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한편 보다가 자는 일상이 호사스러운 것이 아니면 뭘까! 돌아보면 캄보디아에서의 시간들은 분리불안과 육아해방의 그 어디쯤이었던 것 같다.


업무가 아무리 바빠도 매일같이 생겨나는 '나만의 시간'이 처음 몇 개월 간은 생소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다 뭘 하며 보내야 하나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 시간을 마냥 아이만 그리워하며 지냈던 것은 물론 아니었고, 집에서도 업무를 쉬지 않는 워커홀릭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당연하게 주어졌던 그 시간, 매일 저녁과 주말마다 찾아오는 선물 같은 그 시간을 '나를 위해' 잘 쓰고 싶어졌다.


나는 NGO에서 국제개발사업을 실행하는 업무를 했다. 학위도 따고, 경력은 10년을 훌쩍 넘기고 있지만, 점점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이나 미래에 대한 계획이 모호해지고 있었다. 내가 잘 해내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마음이 컸기에, 앞으로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무엇보다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항상 따라다녔다. 출산 후 3년간의 경력단절 후에 다시 일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아이와 떨어져 지내게 된 상황이 벌어지니 생각이 더욱 많아졌다. 누구나 어느 시기가 되면 반드시 하게 되는 고민, 즉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와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수시로 나를 괴롭혔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거의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내가 지냈던 곳은 유명하지 않은 작은 지방도시였고, 그나마 시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에서도 멀찍이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해가 진 후에 갈 곳이라고는 함께 파견되어 온 동료가 사는 옆집뿐이었다. 집은 사무실 인근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손님용 별채였다. 처음엔 동네에 마땅한 집이 없어서 무척 실망했었다. 과하게 넓고, 가구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청소가 안되어 지저분하고, 진입로가 엉망인 집들만 보다가 결국 당분간 사무실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라도 지내야겠다고 생각하고 간 곳이었다. 적당히 아담한 크기에 가구가 갖추어진 쾌적한 VIP룸을 보고 숨통이 트인 참에, 마침 장기임대도 가능하다고 하니 냉큼 계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겉보기와는 달리 어딘가 하나씩 부실한 가구들과, 시시때때로 방 안을 찾아오는 온갖 종류의 벌레들 때문에 초반 적응이 쉽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업무와 생활이 익숙해진 후부터는 안락한 '나만의 시간'을 완성할 수 있게 해 준 집이었다.


나는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보고 싶은 드라마 몇 편을 정주행 했고, 드로잉 강의를 들으며 그림을 그렸고, 한 동안은 타로카드에 심취해 있기도 했으며, ASMR 영상을 만들겠다며 마이크를 사서 이 소리 저 소리를 녹음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정착한 것은 노트 한 권이었다.




창을 통해 자줏빛으로 물든 하늘이 잠시 머물다 가고 나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 풀벌레들이 우는 소리 등이 집 주위를 감싼다. 잔잔한 음악을 틀고, 적당히 아늑한 분위기의 조명을 켜고, 따뜻하거나 시원한 차를 따른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편다. 프놈펜의 한 문구점에서 겉표지와 속지가 모두 크래프트지로 된 도톰한 노트 한 권을 샀었다. 나는 이 노트에 여러 가지를 적었다. 일기이기도 하고 계획이기도 하고 수필이나 소설의 초안이기도 했다. 작은 노트를 한 장씩 채워가는 시간들은 너무 많은 생각과 불안 속에서 오롯하게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들을 돌아보니, 일을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보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보다, 그저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혼자서 떠오르는 무언가를 노트에 채워나가던 순간들이 아니었다면 다음 결정을 위한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고민은 고민으로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한 채로 남아 있지만, 나는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에 대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아니, 사실 알았다기보다는 받아들였다. 직업이 아니라, 직장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을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 노트를 쓰고 있다. 점점 뒷장이 얇아져간다. 지금은 일을 그만두었고, 아이와 식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나의 삶은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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