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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Aug 20. 2024

한 사람과의 거리

그는 대학교 동아리 선배다. 학교에 다닐 때는 종종 밥도 얻어먹고, 술도 얻어먹었다. 그의 소개로 몇 번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다. 특별히 친해서 연락하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고, 동아리 내에서 자연스럽게 자주 만났었다.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하던 사람이었다. 잡다한 지식을 많이 알고 있었고, 술도 많이 마셨다. 만나서 이야기하면 재미있긴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면도 많았던 사람이었다. 몇 가지 에피소드와 소문들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다. 그를 못 본 지 20년 가까이 됐다. 


한 달 전쯤인가, 건강이 안 좋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진을 보니 몰라보게 야위어있었다. 그 후 동기들이 그를 만나고와 소식을 전했다. 나는 소식을 전해준 동기에게 '안 본 지 참 오래되었네...'라고 이도 저도 아닌 대꾸를 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서로 보지 않고 살아온, 봐야 할 이유도 없었던 20년의 간극 앞에 망설였다. 그와는 심지어 페이스북 친구조차 맺지 않았다(지금은 연락이 끊긴, 그 시절의 많은 선후배들이 여전히 페친으로 남아 있음에도). 


그의 죽음을 앞두고 그와의 거리가 얼만큼인지 가늠해 보면서 몇 주를 흘려보냈다. 그리고 이틀 전 그가 떠났다. 나는 장례식도 가지 못했다. 물리적인 거리와 관계의 거리를 넘지 못했지만,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온라인 부고장 속 계좌에 부의금을 보냈다. 전화 한 통, 메시지 한 줄이 어려웠는데, 돈은 참 쉽다. 


종로타워 33층에 고급 레스토랑이 있던 시절, 그가 그곳에서 밥을 산 적이 있다. 그와 내가 단둘이 시간을 보낸 거의 유일한 기억이다. 그의 소개로 두어 번 어린이들을 데리고 캠프 인솔교사로 일했었다. 한 번은 출발하면서 내 가방 하나가 없어져서 옷이며 세면도구며 지갑까지 싹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는 자기탓이라고 생각해서 내내 미안해했다. 그리고 꼭 밥을 한번 사주겠다며 데려간 곳이 종로타워의 고급 레스토랑이었던 것이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아마 꽤 값나가는 새지갑도 사주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말하니 그가 나에게 흑심이라도 품은 것만 같겠지만, 전혀 그렇지는 않다. 그곳에서 나눈 대화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서로 기억할만한 내용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잃어버린 것들에 비해 과한 밥과 선물을 받으면서, 내가 그에게 충분히 고마움을 느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는 좀 이해가 안 가는 면들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날의 과한 대접도 그런 것들 중 하나로 여겨졌었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그날이 그와 만난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날이 마지막이든 말든, 아무 의미 없는 그런 사이였지만, 아무 때나 만나도 이상하지는 않을 사이였다. 결국 가지 못했지만, 평소에 그가 일하는 곳에 언젠가 놀러 가야겠다고 자연스레 생각하고 있던 나였다. 내내 나를 망설이게 했던 그 거리가 사실은 그리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언젠가 페이스북을 뒤적여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번호를 물어 연락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가웠을 것이고, 아마도 반겨주었을 것이다. 


나를 망설이게 한 것은 그와의 거리 때문이 아님을, 이제야 안다. 잊고 살고 있었던 한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내가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 하나를 기억하게 한다. 그 시절 사람들과의 소원한 관계 속에 해소되지 않은 복잡한 감정들이 있었음을. 그 때문에 '20년'이라는 핑곗거리를 붙들고 괜스레 망설였다. 나를 어렵게 한 거리는 그 한 사람과의 거리가 아니었다. 나로부터 생겨난 거리이고, 내가 해결해야하는 거리다. 이제 새삼 그 시절의 그를 추억해본다. 그가 썼던 웃긴 글들, 진지하게 하던 이야기들, 함께 무리를 지어 다니던 그 시간들... 지우고 싶었던 20대의 내가 기대어 살던 사람들, 아무것도 아닌 많은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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