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평범하고 끔찍한 삶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중에서

by 나작


공무원 준비를 한 적이 있다. 공무원을 하고 싶어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취업할 데도 없고, 취업을 한다 해도 잘 해낼 자신도 없었다. 보건직 공무원 공부를 짧게 했는데, 보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친구가 보건소 일이 널널해 보인다는 정보를 흘렸기에, 그저 대충 일하고 편하게 살고 싶은 내 욕구를 자극했다. 물론, 한참 후 공무원이 된 친구를 보며, 그것이 얼토당토않은 기대였다는 것을 깨닫긴 했지만, 아무튼 그때는 그랬다. 그런 정신으로 공부를 치열하게 했을 리도 없으니, 1년 만에 공무원 공부는 “나중에”해야겠다며 손을 놓았다.


이반 일리치가 지나온 인생사는 가장 단순하고 평범하면서도 가장 끔찍한 것이었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그 시절의 내가 읽었다면 무척 부러워했을 것 같다. 단순하고 평범한 삶, 바로 내가 살고 싶어 했던 삶이다. 이반 일리치는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법률학교를 다니고 아버지의 추천으로 도지사의 특별 보좌관으로 일을 시작한다. 그 후 법원 판사자리로 이직해 가정을 꾸리고 살다가 병을 얻어 마흔다섯 살에 죽는다. 조금 일찍 죽은 것 말고는 나름대로 축복받은 삶 아닌가.


대학교 졸업을 하던 시기에 나는 부모님 덕분에 조금이라도 더 수월하게 취업을 하거나, 적어도 취업 준비를 지원받거나, 취업을 못해 대학원이라도 진학하는 친구들을 보며 왜 나는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없는지 한탄했다.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들처럼은 못하겠고, 조금 도와주면 적당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취업할 때 내 최대 관심사는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보다도, 얼마나 일이 편하고 퇴근이 빠른 지였다. 나는 거창한 걸 하고 싶지도 않았고, 편하게 일하면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며 살고 싶었다.


그 후의 내 행보를 돌아보면 사실 나는 거창한 일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열심히 책을 읽고 훌륭한 글을 써보고 싶었던 것 같다. 다만 자신이 없었을 뿐이다. ‘나는 못하지’라는 말을 버릇처럼 했다. 대충 그럭저럭 그저 그런 평탄한 삶을 살고 싶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나에겐 불가능한 꿈이었다. 나는 공무원 학원비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내야 했고, 대학원이나 어학연수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주어진 공부라도 잘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못했다. 나는 대학 내내 뭘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고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학점으로 졸업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기보다, 그런 나를 조금도 구제해주지 못하는 환경만 원망했다. 아무튼 나의 이십 대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에게 죽음이 찾아왔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면서 ‘도대체 뭘 잘못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러다 퍼뜩, 이 삶이 “그게 아닌 것”일지 모른다고 깨닫는다. 그의 삶에 빠진 것은 뭐였을까?


이반 일리치가 죽은 나이, 마흔다섯을 지나고 있는 나도 “그게 아닌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무엇이 이 삶을 “끔찍하“지 않게 하는지 치열하게 찾아보고 있다. 부족한 나와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게 나를 지켜주었던 ‘환경’에 감사하며. 그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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