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트웨인, The Late Benjamin Franklin 중에서
나는 불렛저널을 쓴다. 아무런 틀이 없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매년 다이어리를 사면서도 제대로 채워본 적이 없던 나는 불렛저널 방식을 알게 되고 '지속가능한 기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의 다이어리는 Monthly와 Weekly가 구분되어 있고, 기록과 습관을 위한 다양한 템플릿들이 추가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시간이 지나 빈칸이 늘어나면 흥미가 떨어지곤 했다. 템플릿이 나랑 안 맞나 싶어서 무지노트로만 되어있는 다이어리를 사기도 했는데, 오히려 뭘 써야 할지 몰라 이도저도 아닌 꼴이 되었다. 한 번은 다이어리들을 둘러보다가 유명한 '프랭클린 플래너'가 궁금해졌다. 얼핏 보니 뭔가 전문가스럽고 생산적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용방법을 자세히 읽고 난 후에, 나는 그것을 결코 완성하지 못할 것을 깨달았다. 먼저, 플래너의 유래 속 벤자민 프랭클린이 평생 실천했다는 13가지 덕목에서 벌써 기운이 빠졌고, 실제 수첩을 쓰는 방법들은 복잡해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결국 "뭔지 모르겠지만 좀 복잡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프랭클린 플래너와는 급속히 멀어졌다.
어릴 적부터 엄격함은 나와 거리가 먼 개념이었다. 규범, 규칙, 형식, 체계... 이런 단어를 들으면 어쩐지 두드러기가 날 것만 같았다. 특히 매일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 정해진 순서에 따라야 하는 것은 최악이었다. 학교생활은 고역이었고, 대학생활은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았으며,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9-6 근무 자체가 부조리로 느껴졌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라는 말로 시작되는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은 일찌감치 멀찍이 던져놓고 살았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여기까지 무사히 살아온 것만으로도 대견히 여겨질 정도다.
뒤늦게 내가 ADHD라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세상이 날 괴롭히는 것 같았는데, 단지 ADHD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 불렛저널 방식이 마음에 들었던 것도 그것을 고안한 라이더 캐럴이 ADHD였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불렛저널'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어쩜 내 마음을 이리 잘 아는지 감탄했더랬다.
마크 트웨인이 쓴 'The Late Benjamin Franklin'이라는 풍자글이 있다. 작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벤자민 프랭클린의 일화와 모범이 되는 습관들을 비꼬는 글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유명 정치가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으로 불리고, 미국의 초기 출판계를 이끈 출판업자이자 작가이며, 온갖 것을 발명한 발명가다. 프랭클린 스토브, 프랭클린 피뢰침, 프랭클린 시계 등등 열거하자면 손대지 않은 영역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의 생애는 또한 엄청난 절제력과 엄격함,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마크 트웨인은 말한다. 그가 실천한 것들은 그가 천재이기 때문에 나타난 징후일 뿐, 다른 사람들이 그를 따라 한다고 해서 프랭클린처럼 되지는 않는다고. 마크 트웨인 자신이 그러했듯이.
"Never put off till tomorrow what you can do the day after tomorrow(모레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로 시작하는 이 글은 칭송받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여러 예화들을, 다음 세대 소년들을 괴롭히기 위한 기괴하고 끔찍한 행동들이라고 폄하한다. 물론 유머로 받아들여야 한다.
I merely desired to do away with somewhat of the prevalent calamitous idea among heads of families that Franklin acquired his great genius by working for nothing, studying by moonlight, and getting up in the night instead of waiting till morning like a Christian; and that this program, rigidly inflicted, will make a Franklin of every father's fool. It is time these gentlemen were finding out that these execrable eccentricities of instinct and conduct are only the evidences of genius, not the creators of it.
나는 단지 세상의 가장 어리석은 고정관념 하나를 조금이나마 걷어내고 싶었을 뿐이다. 가장들의 머릿속에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대단한 천재가 된 까닭이, 공짜로 일하고 달빛에 의지해 공부하며, 기독교인답게 아침까지 기다리는 대신 한밤중에 일어나 매달린 덕분이라는 식의 재앙 같은 관념이 뿌리내려 있다. 그리고 이런 ‘엄격한 훈련’을 아이들에게 강제로 들이밀면 누구나 프랭클린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제야말로 이 양반들이 깨달아야 할 때다. 그런 가증스러운 기행과 괴벽은 천재성을 낳는 원인이 아니라, 이미 천재임을 드러내는 징후에 불과하다는 것을.(ChatGPT 번역)
이 글을 읽으면서 여러 번 웃음이 터졌다. 한편으로는 통쾌하기도 했다. 어릴 때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서 비슷한 마음으로 반항을 했던 것 같다. 대신 나는 데미안의 싱클레어나, 인간실격의 요조 같은 인물들에 이입하며 지구 행성에 잘못 태어나 겪는 괴로움을 공감하곤 했다. 괴롭고, 또 괴로워서 괴롭고, 그래서 더욱 괴로운 날들을 어디에서부터 고쳐나가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런 사람에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매일 13가지 덕목들을 점검하고, 사명 선언문을 쓰라는 둥의 조언은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외계어일 뿐이다.
어릴 적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프랭클린처럼 되기를 바라며, 프랭클린의 행적을 흉내 내야 했다던 마크 트웨인은 "And here I am(그리고 지금, 이 꼴이다)"라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로 이름이 남았으니, 겸손을 가장한 이 풍자글은 어쩌면 기만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비뚤어져있던 시기의 나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러나 프랭클린의 덕목들을 도저히 진정으로 실천할 수 없었던 한 사람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며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다는 점은, 나에겐 작은 위로가 된다. 마크 트웨인은 확실히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자유분방한 기질이었던 것 같다. 나 또한 나답게 글을 쓰고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내면을 다져가고 있다. 세상이 보편적으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나와 통하는 방식은 또 있을 것이다. 프랭클린 플래너를 쓰지 못했더라도, 불렛저널을 찾아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