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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Jun 19. 2021

여행, 혼자 또는 함께


혼자 하는 여행의 나쁜 점은 사진 찍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인생샷은 바라지 않아도 멋있는 곳에서 멀쩡한 사진은 남기고 싶은데 말이다. 그렇다고 삼각대나 셀카봉을 챙겨다닐만큼의 열정은 없어서 같은 관광객들 중 한 명에게 부탁하거나 얼굴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셀카로 대충 남길 수밖에 없었다.


혼자 여행할 때 가장 좋은 점은 피곤할 때 쉴 수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하는 상황도 있지만, 혼자 돌아다니다 피곤해지면 예정했던 일정을 취소하고 숙소나 카페에서 빈둥거리며 쉬곤 한다. 유명 관광지에 가는 것보다 그 시간이 더 좋을 때도 있다. 쉼이란 분주함 가운데에 있어야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 2019년 가을에 정말 오랜만에 장거리의 장기여행을 친구들과 함께 다녀왔다. 스페인 여행이었다. 평소 혼자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어디로 갈지만 대략 정해놓고 세부일정은 도착한 후에 숙소에 누워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 미리 준비했으면 좋았을 기회들을 안타깝게 놓친 적도 많지만 언제나 나 혼자서는 아무래도 괜찮았다.


친구들과의 여행은 출발 몇 달 전부터 여행기간 동안 매일의 아침 점심 저녁 일정을 짜고 모든 교통편을 예약했다. 나는 그런 ‘알찬’ 여행도 좋다고 생각했다. 주요 도시에서 가이드 투어를 하고 맛집을 찾아다녔다. 우리는 여유롭게 앉아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없을 만큼 매일 저녁이면 녹초가 되어 있었고, 다음날은 새벽같이 일어나 짐을 꾸렸다. 고등학교 때 함께했던 수학여행이 더 여유로웠을 것이다. 나는 급기야 바르셀로나의 선셋을 보러 가는 친구들에게 도저히 안 되겠다고 선언하고 반대방향으로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하지만 강행군은 계속되었다.


계획을 세울 때 우리는 그렇게까지 힘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매일같이 변수가 발생했다. 특히 스페인의 가이드들은 하나같이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아는 모든 역사와 문화적 지식을 단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고 전달하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쳐있었고 이제 제발 그만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질 무렵 예정된 투어 종료시간을 훌쩍 넘겨 마무리되곤 했다. 나는 한 번씩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누이며 되뇌었다. ‘혼자 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래도 역시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우리는 서로 수백 장의 사진을 찍어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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