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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Apr 17. 2022

상상하지 말라, 선물하는 마음

상상하지 말라, 송길영



‘경험’이라는 위험한 자산


양준일의 책 '메이비'에서 '경험은 쓰레기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경험조차 비워야 한다는 의미였다. 한 분야에서 경력 10년을 꾸역꾸역 채워놓고 과연 그 10년의 세월이 무슨 가치가 있었을까 회의가 밀려오던 시기에 본 글귀라 마음에 와닿았던 기억이 난다. 송길영의 '상상하지 말라'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열심히 쌓아 온 경험이라는 소중한 자산이 때로는 지금 세상과 맞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지나간 경험을 통해 지금의 세상을 이해하려고 한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이 바로 그 지점이다.

경험이 위험한 이유는, 우리가 흔히 꼰대적 표현으로 경멸하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와 같은 말에서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내가 경험한 것으로 세상을 한정 짓는다면 상상력도 한정된다. 저자는 그래서 '상상하지 말라'라고 말한다. 처음부터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토대로 감히 '상상'하면 위험하다. 진짜 상상력은 그 경험을 비운 후에 생겨난다. 우리가 경험을 토대로 저지르는 빈약한 상상력에 대한 생생하고 공감 가는 사례들이 저자 특유의 유머러스한 어조로 책에 가득하다. 경험이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 순간은 '내 경험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걸 깨닫는 순간일 것이다.



관찰하라


저자는 '상상하지 말고 관찰하라' 고 말한다. 관찰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림 그리기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눈앞에 놓은 생수병을 그릴 때, 사람들은 생수병이라는 존재가 너무 익숙해서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고 생각하고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동그란 뚜껑과 원통을 쓱쓱 그려버린다. 강사는 '관념의 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강조했다. 생수병의 뚜껑은 매끈하게 둥글지 않다. 작은 홈들을 관찰하고 그림에 표현할 때 그림의 퀄리티가 달라진다. 나는 그때 얼마나 내가 주변을 '관찰'하지 않는지를 실감했다.

국제개발현장에서 일할때 현장 프로젝트는 현지 주민들을 잘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녔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가진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그들을 대해야 진정 그들과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마케팅에 관한 책이다. 어떻게 하면 콘텐츠나 상품을 사람들에게 잘 어필하여 팔 수 있을까에 대한 조언이다. 그 답은 '관찰'이다.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한 관찰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그 느낌과 감정들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는지를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국제개발활동을 했던 나는 우리가 왜 우리의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참여를 이끌도록 하는 것이 그토록 힘들었을까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나는 우리가 하는 일이 중요해서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랐지만,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것에 마음이 끌리는지에 대해 관찰해본 적이 없었다. 현장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에도 또 캠페인의 관점에서도 유용한 메시지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저자는 전문분야인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어떻게 '관찰'하고 또 그것을 통해 사람들의 니즈를 파악하는지 설명해준다. 우선 소셜 네트워크에서 문장들을 모으고 '맥락'이 있는 자료를 선별한다. 어떤 시간에 어떤 장소에서 어떤 행동을 했다는 맥락을 통해 행동 안에 잠재된 사람의 감정을 추론해보고 메타정보를 추가한 팩트 노트를 만든다. 그 후 인사이트 노트를 만들어 현장에 대한 통찰이나 사람들의 니즈를 정리한다. 저자는 이 과정을 '118억 건의 데이터에서 4개의 통찰을 건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팔지 마라, 배려하라


내가 일했던 국제개발 활동은 '남'을 돕는 일이었다. 빈곤한 지역, 기회가 제한된 사람들에게 필요한 '니즈'를 제공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종종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보다 '프로젝트'에 매달려 동동거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마케팅은 나와는 먼 이야기라 여기고 살았었는데 '상상하지 말라'를 읽으면서 그 생각이 더 배우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팔지 마라, 배려하라' 고 말한다. 다름과 틀림에 대해 말한다. 수많은 비즈니스 서적에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책에서 '선물하는 마음으로 고민을 시작'하라고 한 말이 참 좋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지만 서로의 지지와 배려를 바탕으로 살아간다. 그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것이 '관찰'과 '배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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