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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May 03. 2022

파리의 노트르담, 민중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싸움.




파리의 노트르담, 빅토르 위고


‘파리의 노트르담’은 읽기 쉬운 책이 아니었다. 우선 민음사의 완역본 번역이 그리 자연스러운 느낌이 아니었던 데다 너무나 장황한 파리와 노트르담에 대한 묘사 부분을 읽는 것은 고역이었다. 주석이 페이지의 반을 차지하고 있어서 왔다 갔다 하며 읽기도 힘들었고. 파리의 노트르담은 그러나 그만큼 묵직한 질문거리를 던져주는 책이었다.


유명한 고전은 원문 완역본보다는 각색이 되거나 주요부분을 풀어쓴 작품으로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아서 완역본을 읽고 나면 전혀 다른 분위기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파리의 노트르담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이 저마다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훨씬 복합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대를 살았던 '민중'이라는 이름의 사람들


에스메랄다를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마치 파리 중심부의 거리처럼 방사로 뻗어 있으며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카지모도, 클로드 프롤로, 그랭구아르, 페부스... 그리고 파리에 공존하는 각자 다른 세계들.. 파리의 거리, 기적궁 그리고 노트르담. 이 책에서는 에스메랄다를 포함하여 다른 등장인물들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며 또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혹은 15세기의 파리라는 도시와 노트르담이라는 공간이 주인공일지 모르겠다. 그만큼 이 소설에는 공간과 시대가 주는 무게감이 인물을 압도한다.


아름답고 자유로운 집시 소녀가 한순간에 마녀로 둔갑되는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필요치도, 증거가 필요치도 않았다. 민중의 시기, 두려움, 분노면 충분했다. 그 무엇으로도 '사실로 규정되어진 사실'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었다.


'민중'은 빅토르위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민중'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 국민. 흔히, 피지배 계급으로서의 일반 대중을 가리킴.'이다. 특히 피지배계급으로서의 일반 대중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 민중이 취하는 모든 입장은 그 '피지배 계급'으로부터 오는 억압이나 탈출 욕구를 상징할 수밖에 없다. 레미제라블에서의 '민중'과 파리의 노트르담에서의 '민중'은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다르다.

민중은 억압을 주는 세력에 대해 대항하기도 하지만 보다 억압받는 계층에 대해 또 다른 억압을 가하기도 한다. 이런 점이 위고가 표현하고자 한 '뒤틀린 민중'인지 모르겠다. 늘 두려움에 싸여 있기에 다른 이를 향한 매몰찬 학대에 대해 차라리 관대하고, 오히려 두려움의 대상을 경외하게 된다. 지배계층은 바로 이 점을 잘 이용해왔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늘 민중에게 있었다.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보이지 않는 싸움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알고있으며 그 정보들에 대해 얼마나 올바로 주체적으로 판단해왔는지,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 과연 누구를 위함인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고민하기에는 사회가 너무 복잡하고 생각을 가로막는 요인들이 너무 많다.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감정이 끌어내지고, 흥분을 하고 나면 걷잡을 수 없이 치달아버린다. 에스메랄다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 파리의 시민들, 클로드, 페부스, 그랭구아르, 카지모도 모두가 에스메랄다를 지켜내지 못했다. 마지막에 노트르담에 모든 계층이 모여 서로 뒤얽혀 싸우면서도 이들은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것이 가장 가슴 아팠다.


이 싸움이 오늘날에도 보이지 않게 계속되고 있고, 우리의 저 에스메랄다는 수천억번씩 교수대에 목이 매달리고 카지모도는 수없이 울부짖는다. 15세기의 파리를 통해 19세기의 파리를 보여 준 이 소설은 지금 21세기의 사회 전반을 읽기에도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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