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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May 04. 2022

인생은 소설이다, 현실과 픽션을 알아보는 방법.



기욤 뮈소, 인생은 소설이다.


기욤 뮈소는 2001년 ‘스키다마링크’라는 작품으로 성공적으로 데뷔한 이래로 현재까지 무려 18권의 소설을 집필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2004년에 발표한 ‘구해줘’라는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나도 ‘구해줘’를 읽으면서 기욤 뮈소를 알게되었다. 그런데 분명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은 있는데 줄거리가 생각이 안난다. 이번에 인생은 소설이다를 읽고나서 그때 읽었던 책이 무슨 내용이더라 하고 줄거리를 찾아봤는데 세상에 그래도 기억이 안났다. ㅋㅋㅋ 읽은게 확실한가?


기욤 뮈소의 책은 두권밖에 안 읽었지만 확실히 손에서 놓기 힘들정도로 흡입력이 있고 흥미진진하다. 기욤 뮈소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만 일각에서는 ‘공항소설’이라고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던데 그것도 이해는 간다. 시간을 때우며 즐겁게 읽고 금새 잊어버린 책이 ‘구해줘’였던 것이다.


인생은 소설이다도 가볍게 읽으려고 펼쳤지만 다음이 궁금해서 도저히 중간에 끊을 수 없는 소설이었다. 이야기는 헐리웃영화 한편을 휘리릭 보고난 것처럼 흥미진진하지만 그가 소설 전반에 내세우고 있는 사랑, 삶과 죽음의 가치는 가벼운 주제는 아니다. 언제나 무겁고 진지할 수는 없다. 이렇게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 속에서 그런 가치들을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훌륭하다.



각성, 자아의 깨달음.


2019년에 ‘어쩌다 발견한 하루’라는 드라마를 봤다. 이재욱이라는 배우때문에 열심히 본방사수했는데 끝으로 갈수록 내용이 진부해져서 흥미가 좀 떨어지긴 했었다. 이재욱이라는 배우는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서 보고 관심을 가졌었다. 이 두 드라마를 언급하는 이유는 두 드라마 모두 '자아'라는 개념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에서 전혜진이 연기했던 '송가경'이라는 인물은 본인 스스로의 능력으로도 잘나가는 기업의 임원이지만, 한편으로는 대기업 며느리로 꼭뚜각시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대기업 그룹의 회장인 시어머니 장희은(예수정)는 어느날 자기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가경에게 말한다. "가경아, 너 왜 자아가 있니?" 당시에 내가 '자아'에 대해 나름 열심히 고민하던 시기라서 귀에 날카롭게 박혔던 대사다.


사춘기 소녀처럼 나는 누구인가, 하는 감상이 아니라 과연 사람들은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는게 맞나, 의문이 들던 시기였다. 술마시면서 일년 365일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되먹지 않은 말만 되풀이하는 직장상사와 그와 함께 몰려다니며 하찮은 헛소리를 주고 받으며 시시덕거리는 동료들의 머릿속이 너무 궁금했다. 저 사람들, 자아가 있는 거 맞을까? 저런 멍청한(두뇌의 문제가 아니다) 캐릭터로 이미 설정되어 앞으로 영원히 어떠한 대화도 변화도 통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아무생각없이 그들과 시시덕거릴 수 없는 내 스스로가 미치도록 괴로웠다. 그냥 나도 저 농담이 재미있으면 삶이 편할텐데!


'어쩌다 발견한 하루'라는 드라마는 본격 각성의 드라마다. 순정만화의 주인공들이 하나씩 스스로의 캐릭터와 작품 속 위치를 깨달아가면서 '설정된 작품세계'를 거부하며 작가에게 반기를 들어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시도를 한다. 이 두 드라마를 보며 들었던 생각은 '자아'라는 걸 인식한다는 것은 몹시 괴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자아와 세계의 불일치로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게 차라리 정신건강에 좋을 것만 같지만, 알을 깨고 나온 자는 다시 알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법이다.


'인생은 소설이다'의 시작은 플로라 콘웨이가 어린 딸 캐리를 잃어버리고 6개월 후 문득 자신이 누군가 만들어 놓은 세계속에서 누군가 의도한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작가에게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3초를 줄테니 어디 한번 나를 말려보시지. 하나, 둘, 셋....."



소설 속의 소설, 픽션 속의 현실


플로라 콘웨이가 소설 속 인물이라는 걸 자각하는 순간 글의 전개가 기이하게 이어진다. 소설을 쓰던 로맹이 소설속으로 들어가 플로라와 이야기를 나누지를 않나, 플로라 콘웨이가 현실 세계에 나타나기도 한다. 로맹이 현실이고 플로라 콘웨이는 픽션이다. 그런데 조금 더 읽다보면 플로라 콘웨이는 현실이다. 그러나 플로라 콘웨이는 가상의 인물이다. 마지막에 자신이 쓰다 만 소설의 결말을 보기 위해 소설 속으로 들어간 로맹은 플로라 콘웨이가 쓴 소설을 읽는다. 그 소설의 주인공은 로맹이었다. 로맹은 픽션일까 현실일까?

로맨스 스토리가 전면에 흐르는 다른 기욤 뮈소의 작품들에 비해 '인생은 소설이다'에는 남녀간의 로맨스 스토리는 비중이 크지 않다. 물론 결말부분에서 이 모든게 로맨스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되긴 하지만 말이다.


인생은 소설이다를 읽으며 생각했다. 현실과 픽션을 우리는 알아챌  있을까?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자각하고 나면 혼란스러움이 찾아온다.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는 '이것이 물이다'라는 책에서 우리의 디폴트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기 자신의 믿음과 신념으로 만들어진 초기설정값대로 자각 없이 살아가는 삶을 어떻게 하면 벗어날  있을까 하는 것이 진짜 공부라고 말한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만들어낸 세계속의 소설이다. 우리가 믿으면 픽션이 현실이 된다. 엄연한 현실도 믿지 않으면 픽션이 된다. 플로라 콘웨이는 픽션이면서 누군가에게는 현실이다. 그녀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모순적인 상황을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나와 정치적 혹은 종교적 성향이 전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다. 내가 믿는 현실이 그에게는 픽션이고, 내가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픽션은 그에게는 진지한 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가 다른 세상 속에 산다. 그 세계를 알아채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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