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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Aug 09. 2022

클라라와 태양, 존재의 대체불가능에 대하여



클라라와 태양은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발표한 첫 소설이라는 수식으로 유명하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계 영국인 소설가로 1989년에는 '남아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s)'로 맨부커상을 수상했고,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영향력 있는 작가이지만 나는 클라라와 태양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클라라와 태양을 이번에 흥미롭게 읽어서 다른 작품들도 꼭 읽어보고 싶다. 


작가가 철학을 전공했다고 하던데, 클라라와 태양을 읽고 나면 인간, 삶, 선택, 믿음 등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해보게 된다. 꼭 작가가 철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좋은 작품은 풍부한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믿음


AI가 등장하는 많은 소설들에서 AI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은 하나의 공식이 된 것 같다. 다만 작가가 무엇을 통해 '인간적임'을 고민하는가 하는 차이점이 있다. 클라라와 태양에서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던 차이점은 바로 '영적인 믿음'에 대한 태도였다. 다른 말로 하면, 종교적인 믿음말이다. 


클라라는 AF 매장의 안쪽 벽감에서 밝은 태양이 쏟아지는 쇼윈도 자리를 바라보고 있다. 클라라가 바라보는 '해의 무늬'를 묘사하는 장면들이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데, 태양은 클라라에게 '자양분'을 제공하는 절대적인 존재다. 먼 인류가 태양신을 모셨던 것 처럼 클라라는 태양의 절대적인 능력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쿠팅스 머신'이 매장 앞에서 며칠동안 공해를 내뿜어 태양빛을 가리는 바람에 클라라는 몸이 안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항상 매장 맞은편 거리에 앉아 있던 거지아저씨와 개가 쓰러져 죽은 것으로 믿고 있던 클라라는 그들이 찬란한 태양빛을 받고 다시 일어나 앉아 있는 것을 목격한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클라라는 태양이라는 절대적 존재의 자비를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게되었던 것 아니었을까.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속에서 인류는 유전자조작을 통해 인간의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 같다. (소설은 아무것도 직접적으로 설명해주지 않고 클라라의 제한된 시선으로만 서술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추측해야만 한다.) 인간의 기능을 대체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내적인 성장, 영성적인 능력이 인류에게 중요해지고 있지만, 그러한 영적인 능력이나 믿음은 설명될 수 없다. 오직 갖고 있는 자만이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기술'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존재는 AI인 클라라다. 절대적 존재의 자비에 대한 믿음, 위험을 무릅쓰고 태양에 '도움이 되는 일'을 수행하고 본인을 희생하는 과정은 클라라 본인 말고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 


클라라의 미션 수행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매개체들은 너무 하찮아서 우습게 보이기까지 한다. 공사장에서 쓰는 흔해빠진 기계일 것으로 생각되는 쿠팅스머신과 태양을 영접하기 위해 찾아가는 맥베인씨의 헛간을 통해 '믿음'을 보여주는 아이러니. 어쩌면 '믿음'을 갖는데 무엇이 '중요'한지를 이야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감정


클라라는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여러개의 상자에 담긴 다양한 표정을 가진 얼굴들을 인식한다. 인간이 느끼는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읽고 진지하게 '진심'이 무엇인지 찾아낸다. 클라라는 날카롭고 모난 말들 속에서 그가 가진 외로움을 알아차리고, 무덤덤한 얼굴에서 슬픔을 인지한다. 클라라의 특별한 능력이다. 


인간들은 한마디 말때문에 상처받기도 하고, 하나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틀로 편견을 쌓는다. 편견은 공유되고 무리를 만들고 또 소외시킨다. 사람들은 다른이의 '진심'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클라라는 조시의 '진심'을 순수하게 믿고, 조시를 사랑하는 조시 엄마와 릭의 진심도 알아봐준다. 그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고 서로 오해하고 상처를 주고 받는다. 때로는 알면서도 믿지 못하고 시험하기도 한다. 감정과 표현이 진심을 가리기도 한다.


클라라는 인간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지만, 정작 감정을 직접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 보통 감정에 휘말려들때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라는 조언을 많이들 하는데 클라라가 그와 가까운 상태다. 


짖궂게 놀리고 함부로 대하는 조시의 친구들에게, 클라라를 무시하고 불친절한 가정부에게, 클라라를 이용하려는 조시의 엄마에게, 또 클라라에게 점점 소홀해지고 멀어져가는 조시에게 클라라가 느껴야하는 감정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대체불가능 


그래서 인간이 가진 고유한 능력은 뭘까? 인공지능이 빠르게 발달하는 시대에 흔한 질문이다. 소설 속에서 내가 읽은 것은 '믿음'과 '감정'이었다. 다만 그 둘다 에이에프인 클라라가 갖고 있었다는 것이 아이러니지만. 그래서 어쩌면 그 '대체불가능'은 꼭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존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고 성장해나가는데 가장 '인간적인' 부분이 있다면 서로에 대한 믿음과 감정의 교류일 것이다. 


조시의 엄마는 '향상'으로 인해 몸이 약해진 조시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때문에 조시의 복제품을 만들려는 계획을 세운다. 복제품을 만드는 카팔디씨는 '과학적으로' 그 사람을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함'은 없다고 주장한다. 육체와 기억과 습관들을 완전하게 복원한 복제품은 조시 그 자체로 대체될 수 있을까? 


클라라는 말한다.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클라라가 엉뚱하고 이상한 부탁을 하며 조시를 살리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말할 때, 조시의 아빠와 릭은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성의있게 진심으로 클라라를 도와준다. 오직 조시를 위해서. 이것이 바로 조시를 대체불가능하게 만드는 특별함일 것이다. 



클라라와 태양은 조금 슬프지만 해피엔딩이다. 조용히 다용도실에서 해를 바라보는 클라라의 모습이나 유적장에서 뒤죽박죽이 된 옛 기억들의 순서를 맞춰보는 모습은 쓸쓸하면서도 평화롭다. 클라라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어쩌면 AF로써 가장 행복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그저 '서서히 꺼져가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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