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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Sep 20. 2022

좋아하는 일

공부를 왜 해야 돼요?

“난 우리 애가 공부 못해도 괜찮아."


같은 나이의 아기를 키우고 있는 동생이 말했다. 아직 아이가 만 3세도 안되었으니 그 다짐을 장담할 수는 없겠으나,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곧바로 초등학생인 조카들의 수학과 영어공부를 어떻게 봐줘야 할지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공부를 못하니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괜찮다'는 말은 가장 무너지기 쉬운 엄마의 다짐 아닐까?


하루는 아이에게 숫자를 가르쳐주려고 그림책과 카드를 펼쳐놓고 "이건 하나, 이건 둘, 이건 셋..." 하며 가르쳐주고 손가락을 접었다 펴며 열까지 세는 법도 알려주었다.


"자, 이건 몇 개야?"

"한 개!"

"이건 몇 개야?"

"음... 많아!"


"그럼,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세볼까?"

"하나, 둘, 셋, 다섯, 아홉, 열!"


"아니, 아니, 이거 봐 봐, 이거 몇 개야?"

"엄마, 잘 모르겠어..."


고개를 갸웃거리다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는 아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우리 애는 공부 잘하긴 글렀나'하는 생각을 했다. 글쎄, 어떤 천재 아이는 세 살 때 방정식을 풀었다던데 말이다. 문득, 결국 나도 아이가 공부를 잘하길 바라고 있었구나 싶었다.


우리는 어릴 때 한 번쯤 어른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공부를 왜 해야 돼요?

과연 그 질문에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은 사람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내가 들었던 말은 공부를 해야 돈을 잘 번다거나, 훌륭한 사람이 된다거나 하는 말들이었을 거다. 물론 그 대답은 완전히 틀렸다. 우리는 성적순으로 돈을 벌지도, 훌륭해지지도 않았으니까.


대학교에 다닐 때 용돈벌이를 위해 학원에서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아이들은 밤 9시, 10시까지 학원에서 문제집을 풀어댔고, 나는 학원강사로 일하면서도 '아이들에게 이게 뭐하는 짓일까'하는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누군가 물었다.


"선생님! 공부를 왜 해야 돼요?!"


오래전 내가 던진 질문이 한참의 시간을 지나 나에게 되돌아온 것이다. 나는 세상 쿨하고 무책임하게,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마.
너 하고 싶은 거 해.

아이는 곧 시무룩해졌다. "엄마가 안된대요..." 중학교 3학년이던 그 아이는 매번 수업시간에 딴짓하고, 걸핏하면 사라지고, 성적도 좋지 않은 아이였다. 그래도 내가 가르쳐주는 건 재미있다고 가끔은 예쁜 말을 해주는 아이였다. "학원 그만두고 네일아트 배우고 싶어요." 나는 혹시 나 때문에 이 아이가 학원을 그만둔다고 말할까 봐 뜨끔해졌다. 어른이란 이렇게나 어설프다. 내가 답을 기다렸던 어른들도 그랬겠지.


나중에 아이가 똑같이 물어보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까. 나는 여전히 그때처럼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두렵다. 학교 공부가 모든 것을 보장해주지 않지만, 그렇다고 공부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장담도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걸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나의 경우엔 공부를 하느라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것을 잃어버렸으니까.


"우리 애가 공부 못해도 괜찮아."라고 말한 동생은 실제로 어릴 때 학교 공부를 잘하지 않았다. 부모의 권유로 악기를 하나 배워서 대학을 갔지만, 음악에 관심이 없어서 그만두었다. 대신에 손재주가 좋고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것을 잘했다. 지금도 아기 사진을 예쁘게 찍거나 집을 꾸민 것을 보면 전문가 못지않다.


나의 경우엔 어릴 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중학생 때는 소설가가 꿈이기도 했다. 쓰고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점점 손을 놓았다. 나는 공부를 아주 잘하지는 않았어도 희망을 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공부에 더 매진했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는 못했다. 그럭저럭 한 대학교를 다니고 그럭저럭 상황에 맞춰서 일을 하며 살았다.


이제 와서 드는 후회가 있다면, 더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공부하고 돈 벌고 그다음에 하려고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지 않은 것이다. 동생도 그랬다. 좋아했던 것들을 하지 않고 흘려보낸 것이 아쉽다고 했다.


엄마들은 자신의 결핍을 아이를 통해 채우려고 할 때가 있다. 나의 엄마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교복 입은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봐야 했다. 엄마는 나를 낳고 다짐했다고 한다. "우리 아이는 꼭 대학교까지 공부시켜야지." 부모님은 형편이 좋지 않아도 무조건 내 대학교 학비를 책임졌다. 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졸업 후 갚을 학자금 대출이 없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러나 아쉽게도 엄마는 나를 '대학교'를 보내는 것에 목표를 둔 나머지 공부 말고 내가 열중했던 것들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림 그릴 때,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소설책을 밤새도록 읽을 때 나는 행복했었지만 늘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다. 공부가 아닌 것들은 '쓸데없는 짓'이었기 때문이다.


동생과 내가 공감했던 것은, 그렇다고 그 시절에 우리가 좋아하는 일이 너무나 명확해서, 그것 아니면 안 된다고 고집을 부릴 만큼의 열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천재도 아니고 열정이 넘치는 것도 아니니 학교에 갇혀서 공부하고 대학에서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하다가 결국은 '좋아하는 것'을 잃어버리고 살게 된 것이다.


나의 결핍은 다시 아이를 향한다.


우리 아이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줘야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좋아하는 모든 '쓸데없는 짓'들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행복한 일을 다음으로 미루지 않도록. 학교 공부와 성적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삶의 모든 것이 되지는 않도록.


그리고 나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 다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 내가 행복해지는 것들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나의 엄마가 결국 대학교 졸업장을 받아낸 것처럼, 결핍은 스스로 채워야 채워지는 것임을 안다.


이제는 누구에게든 "너하고 싶은 거 해."라고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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