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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Oct 05. 2022

내가 일하러 갈게

다음 주 휴일엔 내가 일하러 갈게.

연휴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남편이 운영하고 있는 가게는 휴일에도 쉬지 않는다. 지난 연휴에는 내가 아이와 함께 있었으니, 다음 연휴엔 남편 차례다. 연휴에 일하러 가는 것이 더 욕심나는 날이 오다니.


아이가 세상에 나오고 나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상들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예들 들면, 나는 평생 밤늦은 시간에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 더 잘 맞은 성향이라 여기며 살아왔는데, 하루 종일 육아를 하고 나면 밤늦게까지 버텨낼 수 있는 에너지라곤 없이 쓰러져 잠들기 바쁘다. 주말은 마음껏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이었지만 주말이야말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장 바쁜 날이 되었다.


매년 연초가 되면 달력을 보며 연휴를 확인하고 빨간색 연휴를 보며 환호를 지르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원래 연휴에 더 바쁜 직종도 있는 법이다. 그게 육아다. 그러고 보니 회사 다닐 때 굳이 주말과 연휴에 사무실로 출근했던 상사들이 꼭 일 때문은 아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전엔 ‘연휴’라는 단어에 설렘, 안도감, 여행, 기다림 등의 키워드가 있었다면 지금 나에게 ‘연휴’는 부담, 걱정, 미안함 과 같은 키워드가 따라다닌다.


이번 달 첫 번째 연휴가 끝났다.

남편은 두 달 전 오픈한 가게를 오가느라 연휴 동안도 바빴다. 아이와 가까운데라도 놀러 가야 할 것 같은 부담은 매 주말마다 느끼지만 연휴가 되면 걱정이 배가 된다. 이번 개천절에도 남편은 가게로 출근했다. 나는 오늘은 또 어디를 가야 하나, 뭘 하고 놀아줘야 하나 고민만 하다가 결국 그냥 친정에서 뒹굴었다. 하루 종일 바람 불고 비가 와서 집 앞 놀이터도 나가지 못했다.


엄마는 매일 따뜻한 밥을 짓고, 아삭 거리는 김치를 무치고, 그날그날 국을 끓여 놓는다. 그날은 무려 백숙이었다! 아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무릎을 오가며 시간을 보내고, 나는 가장 편한 자리에 벌렁 드러눕는다. 연휴 3일째, 이미 지쳐서 뒹굴거리기만 하는 엄마라서 아이에게 미안하다. 다른 엄마들처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 좋을 텐데.


아직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집도 있는데 내가 너무 엄살인가 싶기도 하고, 아이와 하루를 함께 보내는 일상이 더없이 소중한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은 내 자유시간이 간절하기도 하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슈퍼마켓을 운영했다. 아빠는 출장 중인 날이 많았기 때문에 가게는 거의 엄마 혼자 운영했다. 동네 구멍가게에 불과했지만 엄마는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가게를 지켰다. 아침에 도시락을 싸서 나와 동생을 등교시키고, 저녁마다 식구들 저녁밥을 차려줬다. 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서 살았기 때문에 엄마가 바쁘다는 것을 느끼지는 못했다. 가끔 피곤하다며 30분 정도 나에게 가게를 맡기고 쉬기도 했다. 나는 그것마저도 귀찮아했던 것 같다.


엄마의 자유시간은
언제였을까?

내가 더 어릴 때 엄마는 시골에서 시집살이를 했다. 새벽에 일어나 아궁이불에 대식구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터에서 세 시간이 넘게 손빨래를 하고 돌아와 부랴부랴 점심을 차리고 점심을 물리고 나면 새참 준비를 해서 머리에 이고 논에 나간 식구들에게 배달을 다녀오고 나면 저녁밥 준비를 했다면서, 피곤하다며 누워있는 나에게 "너 애기 때는 시골에서~"로 시작하는 엄마의 하루 일과가 되풀이된다.


그 후 가게를 할 때도 엄마에게 쉴 시간은 없었다. 가족끼리 나들이를 가거나 외식을 하는 날은 극히 드물었다. 친구들과 만나거나 취미활동을 하는 것은 사치였을 거다. 그래도 엄마는 손님이 뜸한 시간에 책을 읽고, 매일 놀러 오는 동네 사람들과 친목을 쌓았다. 엄마는 특유의 쾌활함으로 그 시절을 '힘들지만 좋았던' 시절로 충실히 쌓아왔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부터 비로소 옛 친구들과 연락이 닿아 만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하고 싶던 공부도 시작하셨다. 지역의 각종 대소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엄마는 동네의 진정한 '핵인싸'였다. 그래도 엄마는 매일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를 하고 아빠와 우리들을 위한 식탁을 차려왔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런 엄마의 에너지가 부럽기도 하고 이렇게 '편한 세상'에 겨우 아이 한 명 키우면서 매일 피곤에 절어 있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도 그때 우린 밖에 나가서 알아서 놀았다고. 지금은 놀이터도 엄마가 데리고 나가서 놀아야 하니 그때와는 또 다른 다른 고충이 있다고.'


라고 변명을 해본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 나는 어릴 때 하루 종일 동네 친구들과 배고픈 줄도 모르고 온 동네를 쏘다녔다. 내가 서너 살이던 무렵에는 시골에서 언니 오빠들을 따라다니며 흙장난을 하고 바닥에 떨어진 나무 열매를 주워 먹고 다녔을 거다. 하지만 지금 아이는 하루 종일 내 옆에 붙어서 하루를 같이 보내야 한다. 모래놀이를 하려면 모래놀이 장난감을 사줘야 하고, 책 속에 흔히 등장하는 닭, 오리, 돼지, 소 같은 동물들을 보려면 일부러 동물원이나 농장에 가야 한다.


아이의 자유도 덩달아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남편 가게일을 봐주러 집을 나섰다. 하늘이 파랗고, 들판에 노랗게 익어가는 벼들이 일렁거린다. 지난밤 내린 비 덕분에 눈부신 초록빛을 자랑하는 나무들과 민트향처럼 시원하게 퍼지는 가을 공기. 이런 날엔 어딘가로 떠나서 예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싶다. 아, 내 사진 말고 딸내미 사진말이다. 이번 주말에 날씨가 좋으면 동물원이라도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역시 다음 연휴 날만큼은 내가 근무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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