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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Sep 07. 2022

마음을 전하는 단 하나의 마법

구리구리통통통

구리구리통통통!


통통이의 마법은 한 번에 이루어진 적이 한 번도 없다. ‘엇? 이게 아닌가?’ 하고 머리를 긁적이고 나서 두세 번 실수를 더 반복한 후에야 원하는 마법이 이루어진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마법을 부리고 싶은 순간들이 수시로 찾아온다. 졸졸 따라다니며 도저히 해 줄 수 없는 것들을 요구할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울고 불고 드러누울 때, 늦은 시각까지 안 자고 버틸 때 등등. 마법이라도 부려서 아이의 행동을 당장 멈추게 하고 싶다.


그러나 돌아보니 분명, 마법은 일어나고 있었다. 통통이처럼 여러 번 실수하긴 했지만 제대로 된 마법이 통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오늘 아침, 아이는 어린이집 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나오자 스스로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더니 돌아서서 자랑스레 말했다.


“씩씩하게 들어왔어!”


집에 돌아와서도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지난 3월 새 학기가 시작된 후부터 지금까지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번 어린이집 앞에서 실랑이를 해왔기 때문이다.


드디어 마법이 통했구나!



아이는 매일 선생님이 나오면 엉덩이를 빼고 쪼르르 구석으로 도망갔다. “들어가자~”고 말하면 고개를 흔들며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가도 문 앞에서 사탕이나 과자를 흔들면 호다닥하고 쏙 들어갔다. 깜빡하고 유인할 사탕을 못 챙긴 날은 억지로 울면서 들어가는 날이 많았다.


흉흉한 세상이라 혹시 어린이집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이가 등원을 거부할 때의 모습은 정말 들어가기 싫어한다기보다 마치 장난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그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알쏭달쏭한 아이의 행동은 내게 때론 걱정으로,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하는 원망과 짜증으로 나타났다.


"선생님이 무서워?"


하고 물어보면 어느 날은 "응"이라고 했다가, 또 어느 날은 "아니"라고 하면서 오락가락했고,


"어린이집 가기 싫어?"


라고 물어보면 "어린이집 좋아! 선생님 좋아!" 하는 것이다. 게다가 종종 하원하면서 "정말 재밌었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안 들어가려고 해?"


라고 물어보면 대답하지 않았다.


어린이집 선생님과 몇 번의 상담을 거치면서 그 문제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곤 했었다. "아이가 아직은 엄마랑 떨어지는 그 순간을 힘들어할 수도 있어요."라거나 "그 순간에 관심이 집중되니까 그러는 것 같기도 해요."라며 여러 추측을 해보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어린이집에 다닌 지 얼마 안 됐을 때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이제 막 적응기간이 끝났을 때니 아이가 엄마와 문 앞에서 헤어지는 순간을 힘들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매일 펑펑 울며 들어가는 아이를 어떻게 하면 웃으며 들어가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어느 날,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전 무릎을 굽혀 아이의 얼굴을 마주 봤다. 유튜브와 블로그 등을 통해서 아이의 등원 거부에 대처하는 방법들을 찾아본 후였기 때문에 나는 하이파이브나 얼굴 보고 활짝 웃어주기 같은 전략을 수행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입술을 삐죽이며 울음을 참고 있는 아이의 표정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아이의 마음을 바라보게 됐다.


그동안은 ‘언제쯤 울지 않고 들어갈까?’ 하며 아이가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면, 그날 울음을 참고 서 있는 아이를 보고 나서는 ‘아이는 이미 잘 견디고 있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날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아침에 엄마랑 헤어지는 게 슬프지? 그런데도 잘 참고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잘 지내서 정말 대견해.”라고 말했고, 놀랍게도 아이는 바로 그다음 날부터 울지 않았다. 비로소 마법의 주문이 통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이미 잘 적응한 어린이집을 1년이나 다닌 후였기 때문이다. 처음엔 새 학기니까 또다시 적응이 필요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벌써 9월이 되어가는데도 매일 아침 같은 실랑이가 반복됐고 점점 실랑이를 벌이는 시간도 길어졌다.


"아직 어린 아가잖아요."


문득 상담 중에 선생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아직 30개월을 조금 넘긴 아기인데 아직도 아침에 엄마랑 헤어지는 게 싫은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작년에 극복했으니 이제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 건 내 생각일 뿐, 아이는 매일 아침 저렇게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그것이 마법의 비밀임을
여러 번의 경험으로 깨달았다.


15개월까지 기저귀를 거부하며 도망 다니는 아이를 순순히 드러눕게 만든 것은 단 한마디 때문이었다. "기저귀 입을 때 엄마가 붙들고 있는 게 싫어서 그렇지? 지금 쉬해서 축축하니까 뽀송뽀송한 기저귀로 갈면 기분이 더 좋아질 거야. 엄마가 불편하지 않게 해 줄게." 그렇게 기저귀 들고 쫓아다니며 두어 번 말하고 났더니 바로 다음날부터 아이는 스스로 기저귀를 가져와서 내 앞에 누웠다.


놀이터에서 시간이 다 됐는데도 집에 가기 싫다고 떼쓰는 아이에게 아무리 회유와 협박을 해도 통하지 않지만, "더 놀고 싶어서 그런 거야? 그네도 타고 싶은데 아직 못 탔지? 그럼 저쪽에 있는 놀이터로 가볼까?"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가다가 곧 잊어버리고 "이제 집에 가자." 한다.


요리하고 있는데 자꾸 얼쩡거리면서 안아달라고 떼를 쓸 때 "엄마가 뭐하는지 궁금해서 그렇구나?" 하면서 들어 올려 음식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나면 아이는 순순히 다른 놀잇감을 찾으러 간다.


나는 이번에도 마법을 부리기로 했다.


"아침에 엄마랑 헤어지기 싫어서 그런 거야?"

"응."

"그래도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노는 건 좋지?"

"응."

"어린이집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으면 엄마가 매일 데리러 오지?"

"응."

"아침에 헤어지더라도 엄마가 오후에 또 데리러 오니까 울지 말고 씩씩하게 들어가 볼까?"

"응! 좋아!"


그리고는 정말로 척척 걸어 들어가면서 "씩씩하게 들어왔어!" 했던 것이다.


마법의 순간은 너무나
아름답고 벅차다.
문제는 매 순간 마법을 부릴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이다. 가끔 아이가 나에게 마법을 걸 때가 있다. 남편과 투닥거리고 나서 씩씩거리는 나에게 "엄마, 아빠 때문에 짜증 나?" 하면 도저히 짜증을 낼 수가 없다. 아이 앞에서 싸우지 말자고 생각해도 순간을 참기는 어렵다. 피곤하거나 시간이 촉박할 때면 아이에게도 화를 낸다. 아이 마음보다 내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가끔은 억울하다. 내 마음은 누가 알아주는 걸까? 나의 엄마는 나를 부둥켜안고 예뻐하다가도 작은 실수에도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그때마다 내가 했던 생각은 그저 억울하다는 것뿐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왜 그랬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 엄마를 원망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지금 그런 엄마를 똑 닮아있다.


내가 화낼 때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내 앞에 서 있다. 그 아이는 간절히 마법을 기다리고 있다.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는 아무 힘이 없다. 아이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주문을 걸어야 한다. 여러 번 실수하더라도 나는 꼭 맞는 마법의 주문을 찾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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