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 오렌지>를 중학생 때 읽고 17살 때부터 나는 철이 드는 게 두려웠다
어른이 되면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어나는 것도 겁이 났고
무엇보다도 엄마가 우리에게 잔소리하며 입에 달고 살았던 말 '나잇값을 못할까'였다
나는 철이 들고 싶지 않았다
어른인 엄마의 삶은 고단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영 철 없이 굴 수 도 없다는 것도 알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나는 강제로 성인이 될 테니깐
언젠가는 엄마의 말대로 철이 들고 나잇값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잇값이라...
한편으로는 억울하다는 생각도 든다
세월이 지나면 무조건 그 값을 치러야 하는 날이 오기 때문이다
지금 말하려는 '이 남자'처럼 말이다
45살, 그는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사귀고 싶다고 대시를 하고 있다
나는 친구 이상은 안된다고 처음부터 선을 그었고
그는 궁여지책으로 나와 친구라도 되겠다며,
올해 안으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겠다 한다
나는 이런 남자들을 종종 보았다
하지만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하는 레퍼토리는 항상 같다
지금껏 자신은 원하는 건 다 얻었다며
나의 마음도 얻을 자신이 있다고 호언장담을 한다
누가봐도 그 자만스럽고 오만한 태도때문에
실패를 했어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그가 끝내 나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은 실패한 것이 아닌
‘나의 눈이 너무 높기 때문’이 될 것이다
그는 마음을 얻고 싶다는 여자에게
자신이 어떤 멍청한 짓을 했는지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는 최근 자신이 사귀었던 두 명의 여성과
왜 헤어졌는지 내가 묻지도 않은 헤어진 이유와
그녀들의 험담을 시작했다
특이한 상황에 호기심이 생긴 나는
일단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맞장구도 쳐 주었지만
어느새 그녀들을 옹호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일면식도 없는 그녀들에게 왠지 모를 연민마저도 느껴졌다
그리고 난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 사람과 헤어지면 나도 저렇게 험담으로 난도질당하겠구나'
나는 그를 보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의 파장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하지 못하고 말하는 사람을
나잇값을 못하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로 꼽아둔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나잇값을 못하고 살아왔다.
<잠시 9, 오늘은 나잇값 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