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성을 잃으면 방향도 잃는다
요즘 신문을 읽다 보면 세상이 점점 더 잘게 쪼개지고, 서로 다른 언어만 사용하는 집단들 속에서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오늘 읽은 칼럼은 그 파편화된 시대를 ‘단테’와 ‘리히터’라는 두 인물을 빌려 설명한다.
단테는 자신의 고통을 개인의 서사로 끝내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지옥, 인간의 길을 전체적인 구조로 그려냈다. 지금의 개인화된 시대에서는 보기 드문 ‘보편성’의 태도다. 리히터가 오늘날의 세계를 조망하며 던지는 말도 비슷하다. 우리는 너무 서로 다른 프레임으로 살아서, 더 이상 ‘세계’를 하나로 경험하지 못한다고.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철학적 감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점이다.
알고리즘은 나를 위한 정보만 보여주고, 각자의 분노와 취향은 더 강하게 분리된다. 모두가 자기 안의 진실만 확신한다. 그 결과 우리는 같은 사안을 두고도 서로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게 된다.
칼럼이 말하는 ‘보편성’은 거창한 이상이 아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한 번쯤은 같은 인간으로서 이해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단테처럼 개인의 고통을 ‘전체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선. 리히터처럼 나와 세계 사이의 균열을 자각하는 감각.
나는 이 부분이 지금 특히 와닿는다.
정보의 속도는 빠른데, 이해의 깊이는 얇아졌다.
서로의 고통은 보이지 않고, 각자의 문장만 커진다.
리더십도, 조직도, 개인의 회복도 결국 ‘보편성’을 잃으면 방향을 잃는다.
칼럼은 결국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세상을 전체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잘게 나뉜 조각만 보고 있는가?”
이 질문은 지금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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