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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Jun 15. 2018

명재고택에서의 하룻밤

1박 2일 논산행 #3 명재고택



보고 싶은 것들을 눈 앞에 두고 보다

이제 막 해가 떨어지는 시각에 명재고택에 도착했다. 한옥스테이로 숙박객을 맞는 ‘초가집’에서 일박을 하기로 했다. 마침 객을 안내해준 분은 이 고택의 후손이었다. 흔쾌히 고택을 안내해주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걸음을 옮겼다. 

커다란 연못과 300년 된 우물을 지나 안채로 들어섰다. 대청마루 한쪽에「명재고택」과 관련한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차장섭 강원대 교수의 저서로 하나의 가옥으로 이러한 분량의 책이 만들어진 것이 놀라웠다. ‘명재고택’에 담과 솟을대문이 없는 이유도 책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윤증(1629-1714)은 조선 후기 숙종 때의 성리학자로 소론의 우두머리였다. 덕분에 노론의 감시 대상 일 순위. 윤증은 오히려 사랑채를 과감히 열어두었다. 당당함과 자신감,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개방성의 표현으로 말이다. 명재고택에서 고택은 古宅(고택)이 아닌 故宅(고택)을 쓰는데, 윤증이 실제로 거주하지 않고 유봉정사에만 머물면서 왕래했기 때문이란다. 덕분에 명재고택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양반 주택이자 오직 명재고택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특징을 갖게 됐다. 

고택에 숨결을 불어넣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명재고택을 대표하는 오브제로 느티나무, 배롱나무, 장독대가 있는데, 안채의 나무창을 열면 셀 수 없는 장독대가 줄을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창에는 말처럼 보이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전통적으로 장을 담글 때는 ‘손이 없는 날’을 골랐는데, 그 손 없는 날이 ‘말 날’이란다. 하여, 창문마다 우연히도 말 그림이 있는 나무를 쪽 떼어다 단 것이다. 좌우 대칭까지 일치하는 기가 막힘이다.



한 번도 형이란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내가 먼저 불러봐? 


우리는 이어지는 안내를 받으면서 호칭 사용법, 밥상머리 교육 같은 예의범절도 전해 들었다. 여동생은 언니의 남편을 형부라고 한다. 원래 동성의 손위 형제를 여자는 ‘형’, 남자는 ‘언니’라고 불렀던 까닭이다. 방석에 앉을 때는 밟지 않도록 주의하는 데 누군가의 상징적인 ‘자리’이기 때문이란다.     

장맛의 비결, 말 날에 있었네 (선생님표 달력도 시선강탈) 

다음 날 이른 아침, 선생님은 마당에 서서 벌써 객을 기다리고 계셨다. 집안의 제일 큰 어른이 사용하는 복합문화공간(?)인 누마루를 가보게 되었다. 손자의 방을 지나 비서-역할을 하는 이-의 방을 지나 할아버지 방을 통하면 누마루가 나타난다. 선생님이 깜짝 선물을 하듯 4개의 들문을 차례차례 들어 올렸다. 오늘날 와이드 TV 규격인 16:9의 창 너머에는 가까이 마당이며, 멀리 마을도 한 눈에 보인다. 담과 솟을대문이 없는 명재고택에서 할아버지가 이 누마루에 앉아 계실 때는 인사를 하고 인사를 받느라 바빠서 가끔씩 사용했을 것만 같다. 


누마루를 나서자 사랑채의 돌계단에 쓰인 ‘日影標準(일영표준)’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윤증 선생의 9대손 윤하중 선생은 천문학에 밝았는데, 해시계의 영점을 놓고 천체를 살필 수 있는 위치에 ‘일영표준’이라는 글을 댓돌에 새긴 것이란다. 마침 해가 쨍쨍하여 선생님이 시계 보는 법을 알려주었다. 이밖에도 많은 이야기를 듣고, 담느라 권유해준 우물물을 먹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시 또 인연이 닿는다면, 그땐 배롱나무 피어나는 여름날의 명재고택을 보고 싶다. 

16:9로 내가 보는 것 무엇? 실제를 바라보자 자주자주


논산 명재고택[論山 明齋古宅] 
문화재지정 중요민속자료 제190호  

관람시간
하절기(4월~10월): 오전 10:00시 ~ 오후 17:00시
동절기(11월~3월): 오전 10:00시 ~ 오후 16:00시 
※ 문화관광해설사의집 월요일 휴무     


@ 명재고택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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