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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Jul 12. 2019

엄마! 나 6시 퇴근했어. 챔피언처럼

소소한 행복을 핑계로 놓치고 있는 그 무엇은 무언가



이번 직장에서도 난 여지없이 ‘빵 참 좋아해. 커피 참 좋아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이십대 초반에 바게트피자빵을 처음 먹고 그 맛에 푹 빠진 적이 있다. 지금에야 이 빵이 흔할지 모르겠지만 백화점에서 팔던 그 빵은 어느새 빵집 매출 1순위가 될 만큼 중독적인 맛이 있었다. 기본이 되는 바게트는 촉촉하고 고소했으며, 적당히 짭짤한 토마토소스와 구운 양파, 옥수수, 베이컨의 조화로운 맛은 내 두 손을 꽉 쥐고 ‘빵순이’의 세계로 이끌었다.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한 그것을 빵 배, 밥 배 헤아릴 수 없는 나날동안 먹었다. 어떻게 하면 살이 찔까 고민할 정도로 마른 축에 속한 나는 피자빵 덕분에 아무래도 체질이 바뀐 것 같다. 몸무게는 내가 막을 수 없는 나이처럼 잘도 늘어났다. 이후 다이어트는 살아오는 내내 껴안아야할 숙제가 되었다. 살은 간절할수록 빼는 게 어려웠다. 


참 많은 날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빵을 못 놓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빵 자체보다 먹기 전의 행위를 못 끊어서 빵을 사는 것 같다. 며칠 전에도 퇴근길에 괜히 역에 있는 랄라블라에 들렀다. 다른 사람들은 화장품을 볼 때 난 드럭스토어의 스낵코너를 가장 먼저 기웃거린다. 슈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재미있는 간식이나, 특별한 아이템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뭐지?’ 애플망고를 건조한 간식을 1+1에 팔고 있었다. 일단 두 개를 사서 집에 가는 길에 한 봉지를 다 먹고, 다음날 8개를 더 샀다. 가방 가득 들어있는 간식들을 보며 어찌나 뿌듯한 맘이 들던지. 어제도 퇴근길에 굳이 올리브영에 들렀다. ‘올리브영에는 뭐가 있나?’ 특별히 눈에 띄는 게 없었는데 그냥 나오고 싶지 않아 굳이 음료 하나를 사들고 집엘 갔다. 집에 가는 길을 설레는 무언가로 채우고 싶은 맘이었던 것 같다. ‘엄마! 나 6시 퇴근했어. 챔피언처럼!’


금요일 출근길은 그나마 지하철이 좀 여유로웠는데 오늘 아침 그 생각에 뺨을 맞았다. 뒷사람들에 떠밀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지하철 안으로 곤두박질치듯 떨궈졌다. 감옥에서 죄인을 다룰 때 그렇게 밀치지 않는가.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으나 스멀스멀 어두운 생각이 똬리를 친다. ‘아! 왜 이렇게까지 해가며 회사를 가야하는가’ 한 시간 가까이 제 몸을 간신히 지탱하다가 역을 빠져나오면서 든 생각은 ‘GS에 들르자!’ 다행히 편의점에는 하나 남은 내 간식이 있었다. 회사에 도착해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누르며 끼리모찌롤 하나를 먹고 냉장고에 넣었다. 특별히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여느 날처럼 이 간식 자체가 간절했던 것도 아니었다. 


6.30~7.12 약 2주간의 간식 행진.. 앞으로도 계속 되리


일을 하러 가기 위한 길에서, 내가 좋아하는 집에 가는 길에서 그 기분을 달래줄, 그 기분을 더 살려줄 거리를 산다. 빵을, 커피를. 내가 회사를 다니며 월급을 받으려는 이유는 때론 이것들이 전부인 것도 같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서 소확행이라고? ‘그래, 그래서 나는 행복해’ 라고 자조했지만, 오늘 점심에 사온(주말에 먹으려고) 두 개의 식빵을 바라보다 문득 아찔해졌다. 어쩌면 소소한 행복을 핑계로 큰 무언가를 놓친 것은 아닌가. 나는 무엇을 놓친 걸까? 아니 놓치고 있는 걸까? 월급보다 더 큰 그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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