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처럼 인당수에 빠진다해도 삶은 다르리

#드라마 #효도 #결혼 #내삶의가치 #심청 #기적

by 나비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며칠 전에 꼭 챙겨보진 않았는데 식구들이 챙겨보고 있었던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시청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 딸을 이승에 두고 갑작스런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는 엄마의 이야기였다. 내 앞에 누워 드라마를 보던 엄마의 손이 눈가에 몇 번 닿았던 것으로 보여 엄마는 울었던 것 같다. 사실 울지 않기가 어렵다. 우리 모두 부모로부터 탄생되어 둘도 없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엄마의 뒤에서 나도 뜨거운 눈물을 몇 번 흘렸으나, 드라마에서 마치 우리 자식들에게 들려주는 것 같은 메시지를 엄마에게 바로 실천하지는 않았다. 당장 효녀가 되리,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결혼을 하리. 같은 것.

드라마는 죽은 엄마의 입술과 손톱에 색을 칠하고, 엄마의 관이 화장되는 장면까지도 이어졌다. 정말 진하게 보여주는구나 싶었다. ‘너희들의 부모가 언제까지 니들 곁에 살아있을 것 같으냐. 살아계실 때 효도하고 매번 안부를 전하고, 그들을 기억하라’ 쩌렁쩌렁 울리는 듯 했다. 드라마를 보면서 엄마의 누워있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우리의 마지막 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비단 드라마가 아니라도 나는 그날들을 종종 생각하기는 한다. 좀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도 삶과 죽음은 늘 내 곁에 있다. 그래도 나와 엄마는 아직 세상 아래 있으니 헤어질 그날이 영 믿기지 않는지라 내 할 일들을 해나가고 엄마보다 다른 이를 더 챙길 때가 있다. 딸로서 효도하는 것과 내가 한 사람으로서 잘 사는 일은 좀 다른 문제 같다. 엄마의 바람대로 사는 것은 내가 정한 삶의 방향성과는 많이 다르니까.


가족들과 함께한 생일은 좋았어. 엄마 없이도 내가 이런 넉넉한 행복을 누리길 바라시는 거겠지

어제 엄마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왔다. 집에 일찍 오냐고 문자도 와 있다. 정시 퇴근하고 들어간다고 문자를 보내자마자 전화가 온다. “집에 일찍 와?”, “응. 퇴근하고 바로 갈 거야.” 사무실인지라 내 목소리가 작았는지 대답을 못 들은 엄마가 같은 질문을 또 한다. 문자도 보냈다며 살짝 짜증을 냈다. “왜 그래? 집에 무슨 일 있어?”

“아니, 너 내일 생일이잖아. 미역국 끓이려고.”

아, 어머니. 나는 할 말이 없어 허공을 잠시 바라봤다. 세상에서 나는 엄마에게 제일 나쁜 사람이다.

“미역국? 아이고, 괜찮습니다.”

겨우 대답을 찾은 내 말을 엄마가 따라한다.

“아이고. 괜찮습니다.”

그날 집에 가서 아침에는 출근하느라 못 먹을 미역국을 가득 담아 먹었다. 엄마가 없으면 누가 이런 미역국을 챙겨 끓여줄까? 없으리라. 엄마가 없다면 조건 없이 받았던 나의 큰 사랑도 영영 사라지리. 허리와 무릎이 아플 때면 하늘로 갈 그날을 기다리는 엄마라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 딸, 그 중에서도 결혼 안 한 불효자들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겠지. 아, 엄마여. 삶이여. 사랑이여. 믿기지 않을 그날이 오면 펑펑 눈물을 쏟으며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오늘의 나는 여전히 나쁜 딸로 살고 있다. 그래도 엄마를 대신 해 내 곁에서 사랑을 주고, 엄마만큼 의지할 사람을 만들어볼게. 엄마 대신 그 사람에게 제일 나쁜 사람이 될게.




심청이는 제 아비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 효도를 선택한 심청이는 용궁에서 죽은 엄마와도 재회하고, 육지에서는 왕과 혼인하여 끝내 아비를 만나 그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까지 이뤄낸다. 그때와 오늘의 시대는 퍽 다르지만 부모와 자식간의 끈끈한 정은 다르지 않으니 부모의 소원이 오직 결혼이라면-심청이는 제 목숨도 내놓은 마당에-그것조차 못 이뤄드리는 게 참 나쁜 딸 같다. 드라마를 보다 문득 진정한 효도에 대해 생각해본다. 부모의 걱정을 덜어주는 것이 진정한 효도라면, 내가 결혼하여 걱정을 더 끼칠지 안 끼칠지 누가 장담을 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날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것은 사실 엄마도 아니고 나 자신인 것을. 완전한 사랑은 있어도 완벽한 사랑은 없다. 좋은 사람을 만날 수는 있겠지만, 결혼이 완벽한 행복은 될 수 없다. 엄마에게는 참 미안하지만 결혼 약속은 못 드리겠다. 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거라는 약속은 해드릴 수 있다. "엄마, 나 건강할게. 행복할게. 안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