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위의 비둘기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둘기 한 마리가 도로 가장자리에 서있었다. 둘기야, 조금만 있으면 신호등이 파란불이 되고 차들이 쌩쌩 달릴 거니까 안전한 인도로 넘어와.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이윽고 신호가 바뀌고 달려오는 차에 푸드득 비둘기가 날았다. 어딘지 위태로워 보이더라니,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 발 한쪽이 없다. 사람으로 치면 발목 아래가 사라진 것이다. 달려오는 차를 피해 급하게 날아오른 비둘기는 멀리, 아주 멀리 도망치듯 피했고. 그 도로에 차들이 움직임과 동시에 다른 비둘기도 있던 자리에서 서둘러 날아올라 가로등 위에 앉거나 내가 알 수 없는 먼 곳으로 피신하듯 날아올랐다.
내가 요새 왜 이럴까. 별안간 뜨거운 눈물이 퐁퐁 눈시울을 적신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구의 주인은 사람이 아닌데 비둘기는 난민처럼 권리도 외치지 못한 채 지구를 방랑한다. 사람을 주인처럼 모시고, 사람은 당연히 지구의 주인처럼 행세한다. "비둘기 따위, 저리 비켜." 나는 안다.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누구도 지구에서 백 년을 못 산다는 것을. 그리고 이 지구는 사람만이 주인이 아니라는 것도. 당최 왜 비둘기가 사람을 그렇게 피해서 제 살 보금자리도 못 찾아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두유노우? 비둘기를 혐오할 수도 있다. 그건 개인의 취향 중 하나다. 그것과 짐승, 동물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생각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사람은, 나는 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다. 고로 제 1등으로 대접받을 당연한 권리도 없다. 비둘기보다 내가 나은 점은 또 뭐야? 스스로 밥을 구해 살아가는 비둘기나, 나나.
모르겠다. 모르겠어. 비둘기보다 하나 잘난 것 없으면서 무시하지 말란 말이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안하무인 주인 행세도 하지 말란 말이다. 곧 신호등이 바뀌고 차가 출발해야 하는 시점에도 비둘기가 횡단보도에 서성이면 화날 수 있어. 왜 이렇게 굼 떠? 그건 그 애 발 하나가 없어서 그런 거야. 그래서 빨리 도약할 수 없는 거야. 30초, 1분 늦게 출발한다고 해서 너의 하루가 어두워지진 않아. 오히려 잘 살피는 게 너의 삶을 복되게 할 거야. 계획된 건 하나도 없어. 너의 말투, 눈빛, 걸음. 그 하나로 너의 운명이 결정되는 거야. 오늘 횡단보도 위를 서성이는 비둘기를 봤다면 불쌍히 여겨줘. 이 지구의 주인 중 하나니까. 제대로 대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