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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Apr 14. 2022

주인 잃은 마당의 라일락

산문12


우리 동네가 재개발이 된다고 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등기부등본 상 그 집이 우리 가족의 소유라고 해도 온전한 우리 것은 아니라는 걸. 엄마는 처음에 재개발을 반대했다.

젊어서 단독주택을 목숨 줄처럼 여기고 관리해온 엄마는 크고 작은 수리도 직접 하거나, 일꾼을 불렀어도 같이 했다. 정말 억척스럽게 지켜온 집. 엄마는 노년을 이곳에서 보낼 생각이었다. 우리도 당연히 그리 되리라, 아니 그리 되고, 안 되고 다른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재개발은 단독주택을 제외하고 주변의 빌라와 저층 아파트, 상가에서 대부분 환영을 했다. 법은 수시로 바뀌어서 과반수 이상 찬성이면, 반대하는 집이 있더라도 진행이 되는 듯했다. 엄마는 결국 재개발을 하는 쪽에 찬성표를 던졌고(집을 지키자고 할수록 더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동네는 시간이 지나며 하나 둘 집을 비워갔다.

이른 아침 출근을 하려 골목을 걸으면 시시각각 제 모습을 잃어가는 빈집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어느 날은 커다란 가림막이 드리워져 이제 정말 집들을 부시는구나 했는데  오늘 아침, 한 곳이 열려 있다.

아, 우리가 사랑했던 그 집의 라일락이 피었다. 장기 출장을 간 탓에 동네에 봄꽃이 핀 것을 보지 못했는데, 공사 중에도 그 집의 라일락은 여지없이 꽃을 피운 것이다. 내년엔 정말 필시 만날지 못할 그 나무를 보러 걸음을 옮겼다. 여유롭게 집을 나선 탓에 라일락과 잠시 작별 인사를 나눌 시간이 된 것이 참 다행이었다. 코가 막힌 탓인지, 라일락이 제 운명을 안 탓인지 향기는 맡지 못했다. 이 집 주인도 네가 핀 것을 알 텐데, 얼마나 슬퍼할까. 나도 몰래 내쉰 한숨이 빈골목에  퍼졌다. 사람들은 잠시 지구를 빌려 쓰는 줄 몰라. 우리 사람들이 참 나빠. 그치. 저희도 사라질 거면서, 얼마나 많이 벌고, 얼마나 편히 살겠다고.

아직은 단언할 수 없지만 난, 아파트에서는 오래  살지 싶다. 단독주택에서 유년을 보내고, 사회생활을 하고, 나이를 먹어가서인지 내 집인 듯 내 집 아닌, 내 집 같은 아파트는 영 내 보금자리가 아닌 것 같다.
엄마처럼 주택을 갖는다 해도 또다시 개발의 논리에 해체될지도 모르지만,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우리집을 갖고 싶다. 온전한 우리만의 집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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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아, 어디서든 다시 태어나렴

다시 태어나 부디 잘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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