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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창숙 Oct 27. 2021

오목 1승과 숙식권 1장

살아온 날의 단상

  2021년 10월 22일 금요일이었다.

오후 4시경 독수리 5형제 중 두 번째인 손주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할머니! ㅇㅇ예요. 할머니네 아파트 3층 친구네 집에 놀러 왔어요. 근데, 이따가 할머니 집에 가도 돼요?"

"하문! 되고 말고!" 는 할머니 집에 놀러 오겠다는 손주의 전화에 축 늘어져 있던 기분이 반짝 링거를 맞은 상태로 변해 손님맞이 준비를 했다. 저녁을 먹여 보낼 생각으로 냉장고를 열어 아이스크림은 있는지 뭘 준비할지 냉장고를 흘터보았다. 그리고는 손주가 "할머니 집에 가도 돼요?"라고 물은 말이 생각나  "안될 게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혼자 "와이 낫?"을 외쳤다.


 그리고 잠시 후 합기도 복장을 한 씩씩한 손주가 벨을 눌렀다. 학교 끝난 후 합기도 학원에 친구랑 같이 갔다가 집에 가는 길목에 있는 아파트 놀이터에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의 아파트가 할머니가 있는 곳이었기에 전화를 한 것이었다. 이곳을 지나면서도 혼자 오겠다고 전화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던 손주였다.


 손주에게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할머니네 집에 온 김에 저녁을 먹고 가도 되겠냐?" 고 허락을 받으라고 하였다. 당연히 "오케이"였다. 지난주에는 '독수리 5형제' 중  딸의 막내아들이 혼자 놀러 와서 신나게 놀다 간 것을 엄청 부러워했기에 이번에 혼자 오고 싶었나 보다  생각했다.


 딸은 아들만 셋을 두었다. 아이들을 끔찍이 사랑을 해주어도 아이들은 가끔씩 혼자만의 엄마사랑을 원했다. 그래서 딸은 한 명씩 데리고 외출하며 그 시간을 한 명의 엄마로 있기도 했다. 형제적 사랑으로 모두의 엄마도 좋지만  각각의 엄마사랑도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귀한 손주가 와서 얼른 요리 시작 준비를 하였다. 손주들이  할머니 집에 오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요리실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요리실습이라고 하기엔 가장 쉬운 달걀말이나 김밥을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먹곤 하였다. 


  냉장고에서 달걀을 세 알 꺼내면 손주는 볼에다 달걀 세 알을 깨서 소금을 넣고 살짝 젓는다. 나는 빠른 칼솜씨로 당근, 양파, 버섯, 호박, 가지, 양배추 등 있는 재료를 다져 놓는다. 손주는 다져 놓은 재료를 다시 소금 간하고 후추 살짝 뿌려 저어 놓았다.  그사이 얼른 어묵국을 끓이고, 냉동실 모셔둔 소고기 이를 해동후 굽고, 달걀말이 하고 남은 야채를 슬쩍 들기름에 소금 후추만 넣고 볶았다. 이렇게 손주만을 위한 저녁상이 차려진 것이다.


                       손주를 위한 저녁 밥상


손주와 함께 맛난 저녁을 먹고 오목을 두었다. 오목은 내가 손주한테 가르쳐 준 것이기에 자신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손주가 한 번씩 이기더니 요즘은 막상막하였다. 그래도 오목만큼은 제일 잘할 수 있는 놀이였다.


 나는 모든 게임에서 손주들하고 똑같이 논다. 손주들하고 놀 때는 함께 노는 손주의 나이로 돌아가서 생떼를 부리기도 하고, 깔깔거리고 웃고, 손주가 갖고 노는 장난감을 꼭 갖고 싶다고 억지도 부린다. 그것뿐이랴 손주가 먹는 간식도 뺏어 먹는다. 근데 한 가지 뺏어 먹지 못하는 게 있으니 그것은 쭈쭈바나 빠삐코이다. 울 엄마처럼  얼음과자를 먹고 나면 이빨이 우리한 게 들떠서 그것은 못 빼서 먹는다. 억울하다.


  오목을 두면서

"할머니! 오늘 자고 가도 돼요?" 하고 손주가 물었다.

딸네는 나의 집과 5분 거리에 있어 놀다가도 잠은 제집에서 잤는데, 서울에 있는 아들네는 세종에 내려오면 손주 둘인 독수리 5형제의 셋째와 다섯째, 며느리가 모두 할머니네 집에서 자고 가는 게 부러웠나 보다. 


 나는 손주가 자고 가고 싶다고 할 때 함께 재우고 싶었지만 내일 새벽같이 나가야 해서  양해를 구했다.

"내일 토요일은 할머니가 일찍 서울 올라가서 안 될 것 같아. 그러면, 좋아, 우리 내기를 하자. 네가 오목을 할머니한테 이기면 숙식권을 주지. 그리고 그 숙식권으로 언제든지 할머니 집에 와서 자는 건 어때?"

"숙식권이요? 그럼 잘 수 있는 거예요?" 손주는 눈이 동그래지며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는 둘이서 규칙을 정했다.

그리고 합의를 보았다.



              손주와 할머니의 '오목 규칙 합의서'


그리고 서로 각각 한부씩 나누어 가졌다.

         서로 한 부씩 나누어 가진 '오목 규칙 합의서


  나는 손주가 이기면 숙식권을, 손주는 할머니가 이기면 스스로  시를 한 편 쓰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건 너무 밑지는 장사여서 3편은 써야 한다고 내가 주장하였고, 망설이다 손주는 3편을 쓰겠다고 하였다. 그 마음이 갸륵해서 '15편' 이 되면 숙식권 1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며 막상막하 가다가 처음 두 판을 손주가 이겼다. 알려준 데로 막고, 규칙에 있으니 한 수 물려달라고 했는데도 손주가 2판을 이겼다. 손주는 승리의 외침을 나는 패배로 고개를 떨구었다.

숙식권 2장이 손주에게 간 것이다. 

나는 숙식권 2장을 손주에게 주었다.

                 숙식권 2장 받은 손주의 증명사진


마지막 판까지 진다면 오목을 가르쳐 준 사람으로 체면이 말이 아니어서 나는 입술이 말랐다.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훌라후프 돌리듯이 돌렸다. 


10살과 70살의 대결!

손주와 할머니의 대결!

제자와 스승의 대결!

무슨 올림픽 오목 대회처럼!

그러나  판은 이겨야지!

                               손주의 자작시 '사과'


그리고 그날 저녁 손주의 시 한 편이 내게 전송되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마지막 1판을 이긴 것이다.

겨우 체면 유지를 했다. 그러나 손주는 "오우! 노우!  안돼!"를 외쳤고, 나는 승리의 "오우! 예스! 돼! 봤지! 할머니 이긴 거!"이렇게 외쳤다.

                          

이렇게 손주와의 저녁은 유쾌하게 결말이 났다. 이번 주 내로 2편의 시가 내게 전송되어 올 것이다.


나는 다시 <오목의 규칙 합의서>를 읽어보았다

<*손주 자작시의 저작권은 할머니에게 있다.*>

합의문 중 제일 작성 잘한 좋은 문구다.


손주는

 <*숙식하는 사람이 그날에 왕이다.*>

합의문 중 제일 작성 잘한 좋은 문구라고 좋아했다.


나는 이 문구로  입가에선 저녁 자기 전까지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나의 머릿속에선 하얀 바둑알 다섯 개가 이쪽저쪽에서 1열로 줄 맞춰서 행진을 하고 있었다.

누가 지고 이기는 것이 중요하진 않았으나, 중요했다.

3:0으로 패했으면 어쩔 뻔했는가?

손주와 함께한 유쾌하고 행복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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