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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창숙 Dec 03. 2021

엄마의 겨울나기 김장.

살아온 날의 단상

 일주일 전에 김장을 하였다.

1년 중 제일 큰 행사라 해도 좋을 '김장'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예전 친정엄마의 "추위가 와도 걱정 없다. 김장을 해놨으니." 하신 말씀대로 나도 겨울 추위가 와도 김치 하나만 있어도 밥은 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예전 친정엄마는 겨울이 되면 연탄부터 광에 들여놓으셨다. 연탄을 말려 때야 한다고 가을부터 연탄 들이고 김장을 해놓으면 겨울나기 준비가 다 된 것이었다. 그리고는 콩을 삶아 절구로 찧여 네모 반듯한 메주를 만들어 띄우셨다. 우리 집 남매들은 네모 반듯하게 빚어 놓은 메주의 겉면에  반쪽이나 한쪽 그대로 남아있는 콩을 오며 가며 하나씩 떼어먹곤 하였다. 겨울 지나 장을 담가야 할 때 메주의 겉면은 마치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처럼 옴폭 옴폭 파여 있었다.


 엄마는 콩을 떼어먹어 자국이 남으면 안 된다고 하셨지만 친할머니께서는 "어떻게 먹어도 먹을 것이니 놔두게." 하셨다. 그런 친할머니의 말씀에 우리의 메주콩 떼어먹기는 계속되었고 점차 콩 떼어먹는 부위가 커져 메주를 모서리마다 떼어먹었다. 메주콩은 점차 말라가며 쫄깃쫄깃했고 그 맛은 표현할 수 없는 요상한 맛이었다. 푸른곰팡이가 피고 겉이 딱딱해지면 우리 남매들의 콩 떼어먹는 서리도 아쉽게도 멈추곤 하였다. 그러니까 56년 전쯤 인 것 같다.


  그때의 김장은  '접'으로 배추를 들이셨는데, 1접은 배추 100포기였다. 우리 집은 식구가 10명이나 돼서 김장을 1접 반에서 2접을 했다. 트럭으로 싣고 온 배추가 집 대문 옆에 쌓아 놓을 때 아저씨들은 배추를 큰소리로 세어가며 쌓아 놓으시고, 친할머니께서는 배추를 나르지 않으시고 아저씨께서 배추 세시는 것을 왔다 갔다 하시며 보고 계셨다. 배추를 모자라게 트럭이 가버리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친할머니는 숫자를 그렇게 많이 세시지 못하셨다. 그냥 친할머니의 존재 자체로 아저씨들은 배추를 쓰러지지 않게 잘  쌓아 놓으셨다.


 배추가 대문 옆에 다 쌓아지고 나면  일일이 배추를 마당으로 들여놔야 했다. 그러면 온 집안 식구들이 양동이에 담기도 하고 둘씩 짝을 지어 커다란 다라이에 배추를 함께 담아 나르기도 했고, 동생들은 혼자 1포기씩 나르고 나면 마당에는 배추 산이 생겼다. 그러면 엄마는 광 속에 꼭꼭 자고 있던 커다란 다라이들을 몽땅 꺼내 배추를 절이셨다.


 그때 엄마의 배추 절이는 방법은 "배추가 밭으로 갈 정도만큼"  절이셨는데 배추를 푹 절이지 않고 숨만 죽을 정도로 절이셨다. 그리고 배추를 씻을 때는 수돗물보다 펌프 물로 씻으셨다. 펌프 물이 수돗물보다 따듯했기 때문이었다.


 무채를 썰고 갖은양념을 넣어 배추 속을 만들어 놓고는 배추에 속을 넣을 때는 모두 팔뚝까지 식용유를 발라주셨다. 고무장갑이 없던 시절이라 매운 고춧가루가 손등이나 팔에 묻으면 쓰라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식용유를 발랐어도 배추 몇 포기 속을 넣고 나면 맨 살이 되었고 김장이 끝날 때면 손과 팔뚝은 고춧가루 김장 양념으로 빨갛게 되곤 했다.


 속을 다 넣고 나면 광 옆에 묻어둔 커다란 항아리 속으로 엄마는 두 무릎을 꿇고 켜켜이 김치를 으셨다. 항아리에 김치를 다 넣고 나면 엄마는 허리가 펴지지 않는다고 한참을 구부리고 계셨고, 빨간 양념이 묻은 손을 씻을 때면 따듯한 물로 씻을 수가 없었다. 따뜻한 물이 닿으면 더 쓰라려 찬물로 씻었고, 손과 팔이 얼얼해서 손을 들고 있어야 했다. 나도 맨손으로 기름을 바르고 절인 배추에 속을 넣었던 기억으로 손과 팔뚝까지 아린 경험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집안 식구 몽땅 목욕탕에 다. 금처럼 수건을 주지 않았기에 빨 수건들을 찾아서 대야에 하나 가득 담아 목욕탕 가져가서 빨아오곤 했다.


 겨울은 김장김치로 시작하고 김장김치로 끝났다. 엄마는 밀가루를 직접 반죽하여 한쪽에 동그랗게 떼어 놓고, 그러면 또 한쪽에선 다듬이 방방이로 얇게 밀어 다음 사람에게 주고,  마지막 팀들은 만두속을 넣으면 되는 김치만두, 김치찌개,  김치 썰어 넣은 콩비지찌개, 김치전, 김치 볶은밥, 돼지고기 김치 두루치기,밀가루로 반죽하고 동그란 상에 넓게 밀어 밀가루 턱턱 뿌려 넓적하게 말아 칼로 쑤욱 쑤욱 썰어 만든 칼국수, 찬밥 넣어 말아먹는 김치말이는 저녁밥 다 먹고 늦도록 잠자지 않은 날 이불 뒤집어 쓰고 먹는 별식이었다. 


                             우리 집 김장하는 날!


  요즘 김장은 배추 몇 포기기가 아니라 절인 배추 몇 kg을 김장했냐고 한다. 시대가 바뀌며 간소화되어  집에서 배추를 절이지 않고 산지에서 절인 배추를 사다가 집에서 김치 속을 만들어 넣으면 된다. 그런데 이것도 더 간소화되어 싱싱 장터나 가까운 농가에서 절인 배추와 속도 다 준비해 놓고 김치통을 가져와 속을 넣고 갖고 가면 되는 문화로, 또한 주부에게서 가족 모두 참여하는 문화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문화라고 생각한다.


 올해 나는 절인 배추 80kg을 주문했다.  20kg에 7~8포기가 들어가니 28포기에서 30포기 정도였다. 김장을 위해 서울에서 아들 며느리, 딸 사위들이 모였다. 아들은 제일 중요한 아이들을 담당하여 작은딸의 집으로 갔고,  우리는 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며느리의 진두지휘 아래 김장하기는 끝이 났다.

                              우리 집 김장하는 날!


  김장에 빠지지 않는 수육과 수산시장에서 , 그리고 삶은 문어 한 마리와 연어회를 사 오고, 요즘 들어 나의 특별 주요리가 된 족발과 막걸리가 김장을 끝내고 나서 밥상을 풍요롭게 했다. 점심과 저녁과 그다음 날까지도 겉절이와 함께 푸짐한 밥을 먹었다. 


  한 이틀 현관 옆에 놔둔 김치통에서 살픗 김치 냄새가 났다. 딤채에 넣기 전에 김치 한쪽을 뜯어먹으니, 예전 엄마의 짜지 않고 시원한 김치 맛이 그대로 재현된 것 같았다.


 "맛있네.~맛있네~친정 엄마가 담근 맛 그대로네."

나는 가족 카톡방에 이 맛난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다른 재료들은 작년에도 맛있게 된 김장의 재료들을  적어둔 기준대로 하였는데, 마지막 김치 속을 맛보며 "조금 짭짤해야 되는데 지금 간이 딱 맞는 것 같아 젓갈과 소금을 조금 더 넣야 할 것 같아요."라는 우리 집 요리의  대가인 며느리 말에, 큰 딸이 젓갈통을 통째로 들어 김치 속 속에 '휘리릭~ 휘리릭~' 두 바퀴를 돌리는 순간 며느리가 "그만요!"를 외쳤다. 또 소금통을 들고 한 줌 '휘리릭~휘리릭~'뿌려 댈 때 며느리가 "그만요!"를 외쳤다.


나는 이번 김치의 맛이 큰 딸의  '휘리릭~휘리릭~'과 며느리의  "그만요!"의 외침과, 속을 넣은 큰 사위와 작은딸, 무거운 배추를 옮기고 뒷정리를 다 해준 작은사위의 정성, 개구쟁이 다섯을 봐준 아들과, 다섯 손주들의 평화,  그리고 시장을 다 봐준 남편의 덕이라 생각한다.


 김치통 속에 다 담은 뒤의 모습.(마지막 남은 김치 속의 육수는 아직 붓기 전)


올 겨울은 왠지 맛난 김장 김치처럼 맛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휘리릭~휘리릭~맛나게 드세요."

그러나

"엄니! 과식은 안돼요. 그만요!"라고 아이들이 말하는 것 같다.


오늘 날이 좋으네... 행복하다.


    금강수목원 '나뭇잎 리스' by 사진:빈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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