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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창숙 Dec 06. 2021

손주님의 S A

살아온 날의 단상

 

 곁에 사는 은딸의 둘째 손주가 지난번 오목 두기에서 이긴 숙식권을 한 장 들고 금요일에 우리 집에 왔다. 할머니 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겠다는 뜻으로 가방을 싸 갖고, 또 자기 엄마가 사준 간식을 들고 당당히 초인종을 눌렀다.


 시간이 오후 5시라 나는 서둘러 상전인 손주의 저녁 준비를 서둘렀다. 손주는 할머니네 집에서 1박 2일을 지낼 것을 좋아하며, 가방은 소파에 던져둔 채로 합기도의 다리 올리는 포즈를 연신 취하며 혼자 신나 했다. 또 기가 하늘로 뻗친 것 같은 당당함으로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산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야호!"를 외쳐댔다.


 나는 바람 불고 날이 추워져서 멸치육수를 내고 어묵탕을 끓이고, 사다 놓은 콩나물 무치고, 재워 놓은 불고기와 맛난 김치를 꺼내 상전의 저녁식사를 차려냈다.


                                손주의 저녁밥상


 손주는 저녁밥상을 받고 엄지 척을 하고는 뜨거운 어묵을 후후 불어가며 잘도 먹어주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좋아서 손주가 반찬 인양, 손주를 한 번 보고 밥 먹고, 두 번 보고 밥을 푹푹 퍼서 먹어, 배가 불뚝하게 나오게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 그럼 안되는데... 요즘 앉아서 다리 모아 앞으로 쭉 뻗고 가슴 닫기 하면 가슴이 닫지 않고 배가 먼저 닫는 상황인데...


 저녁을 다 먹은 후 손주와 나는 소파에 앉아 오목의 대결에서 승자의  '숙식권'과 '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손주는 내게 머리를 기대며

"함므니! 시 쓰는 게 어려워요." 라며 혀 짧은 소리를 하고,

나는 손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려? 어렵지! 내도 어려워. 1박 2일 재워주고, 3끼 먹여주고, 간식 주고! 왕으로 떠받들어 주고. 이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디? 그렇다면 오목대결을 없는 걸로..." 라며  볼멘소리로 가진 자의 여유를 부렸다.


손주는 내 팔을 잡으며

"함므니! 그런 뜻은 아니지요. 그냥 어렵다는 거지요~"

나는 손주님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며

"그렇다면 시 말고 에세이를 써보면 어떨까?"


손주는 호기심 가득 동그랗게 눈을 뜨고

"에세이가 뭐예요?"

나는 학자가 된 양 잘난 척하며 (가짜 학자의  모습)

"너어~일기 쓰지? 일기는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누구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한테 쓰는 아주 솔직한 감정의 글이야. 화가 날 땐 화가 난 감정을 그대로  써도 되고. 기쁘고 슬픈 정을 쓰고 싶은 대로 써도 돼. 누구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니까."


손주는 놀란 표정으로

"근데, 함므니! 엄마랑, 선생님은 내 일기를 보는데요?"

나는 잠시 말문이 막힌 상태로

"그건 엄마나 선생님이 네 일기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아직은 어려 일기 쓰는 습관을 키워주려고 하는 것뿐이야. 일종의 가르침이지."


손주는 또 나를 마주 보며

"함므니, 아빠는 나보고 다 컸데요~ 나를 청년이래요."

나는 사위가 한 말이 생각나 잠시 난감해하며

"기저귀 차던 애기 때보다는 컸다는 뜻이겠지."라고 얼버무렸다.


 손주는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함므니! 에세이는요?"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인 손주가 청년이 된 듯한 착각에

 "근데 에세이는 누군가에게 내가 적은 글들을 보여주는 거거든. 그러니까 너의 감정상태나 사물을 보고 느낀 것들을  정리하고 글을 써서 '내 글을 읽어 보아 주세요.' 하고 보여주는 거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 이 글 참 좋다.'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읽기 위해 책으로도 나올 수 있어. 흠! 흠! 알았지?" 이렇게 말해주었다.


 손주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함므니! 나 에세이 쓸 거예요."

나는 싱거운 표정으로

"그려~써 보시게. 그리고 보여주시게나!"


 잠시 후 손주는 자기의 시 적는 작은 수첩을 내밀었다. 나는 손주의 에세이를 보고 빵 터졌다.


                         손주의 SA 제목:승리^^


정말 에세이(SA)였다.


 그날 저녁 나는 손주와 '시'와 '에세이'를 얘기하고

 '오목'과 '루미큐브'로 한 판 실력을 겨루었다.

또한 하룻밤 자게 될 땐 '숙식권 가진 자가 왕이 된다.'는 약속 문구 따라 샤워시키고 전신에 로션 발라 마사지해주었다.  뜨끈한 보리차 대령하고 함께 잘 땐 옆에 끼고 뽀뽀세례를 퍼부었다.


 손주는 그다음 날 오후 5시 반경에나 '즈그집'에 갔다.

나에게 착 달라붙어 '진드기'라는 별명을 갖고서...

 

                           루미큐브(게임도구)


추신: 가족 게임으로 적극 추천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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