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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창숙 Dec 10. 2021

겨울에 핀 장미

살아온 날의 단상


햇볕이 어서 나와 걸으라고 창가에 따사로운 시선을 보내는 날, 나는 걷기도 하고 책 한 권을 사기 위해 집을 나섰다. 유일하게 하나 있는 다음 주에 있는 모임에서(4명) 책 한 권과 좋은 글귀를 적어 서로 나누자는 의견이 나와서 미리 준비하려는 것이었다.


그날은 잘 걷지 않는 버스길을 따라 걸었다. 나는 이곳 S시에 내려와 둥지를 튼지도 6년이 다 되어 가지만, 버스를 잘 타지 않아 우리 동네에 몇 번 버스가 지나가는지도 잘 몰랐다.  조금 먼 곳은 차를 가지고 가고, 워낙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3km 안쪽의 길은 걸어 다녔다.


중심도로를 걸어가다 공공기관의 철 울타리에 피어있는 장미꽃을 보았다. "어머나! 장미꽃이 피었네. 겨울인데..." 넝쿨 장미는 울타리마다 피어있었다. 나는 중심도로에서 장미꽃이 피어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가며 걸었다.


겨울에 피는 동백꽃은 싱그러워 보이고 희망차 보이는데, 겨울에 피는 장미꽃은 애처로워 보였다. 마치 엄마손 잡고 있다가 손을 놓치고 울고 있는 아이 같았다.


                      넝쿨장미 by 사진:빈창숙


그렇지 않아도 길가에 가을을 알리던 노랗고, 하얗고, 자줏빛의 국화꽃들이 추운 밤을 서로 안고 지새운 흔적들을 보며 "아고! 추웠겠다." 하고 안쓰런 눈길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장미꽃은 고고했다.

어디에 피어있거나 언제 피었더라도 장미는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처음 보는 사람인양 한참을 쳐다보았다. 따사로운 햇볕에 빠알간 꽃잎은 마치 조가비 속에서 올라온 비너스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눈엔 그렇게 보였다.


                  넝쿨장미 by 사진:빈창숙


내가 몰랐나 보다.

겨울에 피는 장미도 있다는 것을.

아니 요즘 꽃들은 피고 싶을 때 핀다는 것을.

지난번 길가에도 노란 민들레가 피어있었는데...


허긴 나도 70의 나이에 40대가 고민하는 '마흔'의 삶을 함께 고민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교보문고에는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곳은 치워져 있은 지 오래인데, 계단 위와 계단 아래에 두 분이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나도 고 싶은 책을 골라 한쪽 구석에 서서 책을 읽었다. 잠시 후 계단 아래에 앉아 있던 분이 일어섰다. 나는 지하철에서 자리를 발견한 사람처럼 앉을 자리가 아닌 자리인데도 얼른 가서 엉덩이를 붙이고 책을 읽었다.


걸어서 돌아오는 길은 시간이 조금 지났다고 햇볕은 구름에 가려 스산했고 바람이 불어 추웠다. 나는 걸으면서 코트 앞을 여미고 손이 시려 주머니 속에 넣으면서 울타리마다 심겨 피어있는 장미꽃을 보았다.


장미꽃은

바람에 흔들려도 옷깃 여미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무리 져 고고히 피어있었다.


                        넝쿨장미 by 사진:빈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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