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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창숙 Jun 07. 2022

 갓이딱지치기할래요

살아온 날의 단상

 ㅡ갓이딱지치기할래요 ㅡ


  일주일 전 뜬금없는 문자가 왔다. 올해 여덟 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들어간 작은딸의 막내아들이 처음으로 제 형의 핸드폰으로 내게 문자를 보낸 것이다. 내용인즉 ㅡ갓이딱지치기할래요ㅡ

띄어쓰기도 없고, 받침도 틀리고, 존대어도 없고, 할머니라는 대상도 없고, 다만 내게 보냈다는 증거로  내 핸드폰 번호가 정확하다는 것으로 미루어, 나하고 딱지치기 하자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아무래도 제 형아들이 안 놀아주나 보다 생각했다.


  흠!

작년에 내 나이를 쿨하게 20년이나 줄여 준 손주가 아닌가! 나는 즉시 전화를 걸었다.

 "좋아 ~할머니도 기다리고 있었지!"

"그럼 빨리 우리 집에 오세요."

나는 연애할 때의 심정으로 후다다닥 뛰어갔다.

지난번까지는 사촌 형에게 물려받았다는 동물 모양, 로버트 모양 등 색깔도 다양한 여러 가지 플라스틱 딱지가 든 상자를 가지고 나왔는데 이번에는 직접 만든 종이 딱지였다.


   사촌 형에게 물려받은 플라스틱 딱지(막내 손주의 보물)


  아하~

종이딱지를 내게 보여주고 싶었구나!

종이딱지는 크고 작은 것, 두껍고 얇은 것, 색깔이 있고 없는 것, 또 커단 딱지 속에 작은 딱지를 끼워 넣은 것, 어떤 딱지는 살짝 물속에 넣었다 꺼내서 약간 마르기는 했지만 눅눅하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딱지도 있었다.


                            손주가 만든 종이딱지


  손주와 딱지치기는 시작되었다.

손주는 그중 제일 단단한 딱지 하나와 눅눅하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딱지  장을 갖고, 내게는 10장의 그냥 약간 허접한 딱지를 주며 2:10이라고 선심을 썼다. 지는 게임이 확실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어쩌랴~이기려고 온 것이 아니라 놀아주려 온 것이니 그냥 참을 수밖에...


  손주는 일어서서 온 마음을 다 해 춤을 추듯이 스텝을 밟은 후 사정없이 나의 딱지를 후려쳤다. 마치 어느 권투선수의 말처럼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한 방 날리는." 모습과 흡사했다. 내 허접한 딱지는 힘없이 뒤집혔다. 그럴 때마다 손주는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다음 딱지를 갖다 댔다. 나의 딱지는 손주의 정확히 내리꽂는 딱지의 힘에 미리 뒤집혀 줄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아뿔싸!

나의 10장의 딱지는 힘없이 몽땅 뒤집히는데 30초도 안 걸렸다.

이건 아니지~

할머니 불러 놓고 이렇게 패배감을 안겨주다니... 나는 이제 딱지를 바꾸어서 대결을 하자고 제안했다.

"네 것 2장을 내가 갖고 할머니 것 10장을 네가 가져라.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져야 하는거여~"

손주는 요상한 표정을 짓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려?~그럼 할머니는 집에 갈란다." 

마치 아이들이 놀다가 삐지면 집에 간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처럼 나도 삐져 으름장을 놓았다. 막무가내인 막내 손주가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 "할머니 집에 갈란다."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딱지치기를 한방에 끝낸 손주의 당당하고 의기양양하던 모습은 금세 사라지고 손주는 안된다고 가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곤 선심 쓰는 듯 응했다. 앉아서 당하기만 하던 나는 일어서서 손주가 하던 그대로 스텝을 밟아가며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한 방을 날리는." 권투선수처럼 내리꽂았다. 어머나~ 한 번도 뒤집어 본 적이 없는 상대방의 딱지가 곡예를 부리는 듯 춤을 추는 듯 뒤집히는 게 아니가!

"아싸라비아~야호~"

나는 환희의 소리를 질렀다.

"어여 딱지 대시 게."


  "야호~"

"아싸라비아~"

이렇게 해서 30초도 안 걸려 손주의 딱지를 다 따 먹었다.


  마지막 딱지를 따먹는 순간 손주의 두 눈은 빨개졌다.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가슴을 들먹이며 애써 눈물을 참으며 볼 멘 소리로

"할머니~나는 소리는 안 질렀잖아요?"

"아고~그러네. 손주님은 소리는 안 질렀네 그려. 근데  소리를 지르면 반칙인가?"

"그렇지는 않지만 기분이 나쁘잖아요."

"그럼, 좋아 결승전을 하자. 각자 자기가 원하는 딱지를 갖고 3판 2승으로, 어때?"


  공평하지 않는 종이딱지 대신 플라스틱 딱지로 대결을 했다. 이렇게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역시 손주는 제일 강한 딱지를 나는 제일 큰 딱지를 갖고 결승전을 했다. 3:0으로 손주가 딱지 왕이 되었다. 그제야 손주의 얼굴이 안도로 돌아섰다.  


  "할머니 플라스틱 딱지치기는 과학이에요. 요기, 조기,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해야 해요."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란 말은 들어봤어도  딱지치기가 과학이란 말은 그 어디서 들어보지 못했는데...

그러면서 주문을 외워야 한단다.

"가리가리~숑숑숑~" 하고 5초 안에 내리꽂아야 된다나~


  나는 손주가 알려주는 데로 일어서서 스텝 밟으며

"가리가리~숑숑숑~"하며 손주의 딱지치기 과학과 주문을  열심히 외우며 전수를 받고 손주의 딱지치기 제1전수자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다음 날 아침!

나는 오른팔을 쓸 수가 없었다. 오른쪽 겨드랑이 밑에 담이 걸렸고, 오른팔 팔꿈치 안쪽에 알통이 생겨 접지도 피지도 못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세수도 못하겠고, 숟가락질도 못하겠고..


왜 갑자기 담이 걸린 걸까?

"아고..." 생각났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한 방 날린 딱지치기!'

70의 나이에 8살 손주와 똑같이 놀은 결과였다.


끙~끙~

파스나 붙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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