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천리포 수목원으로 향했다. 매년 한 번씩 오는 곳인데도 어떤 때는 이 꽃이 내 눈에 들어오고 어떤 때는 저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연신 전화기를 들고 사진을 찍어대는데, 나는 천천히 걸어 다니며 그 꽃의 자태나 나무의 자태를 보기만 하였다. 사진 안 찍고 뭐하느냐는 말에도 그냥 본다고만 했다.
너는 이렇게 피었구나!
작년과 같이 올 해도 만날 수 있어 고맙다.
엉! 그땐 여기에 이 꽃이 없었는데 내가 잘못 봤나!
그래! 너도 있었지.
들꽃 사이를 지나 나무숲으로 가면 나무들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노라 팔짱 끼고 있는 것처럼 여유를 부리는 것 같았다.
"네가 있었지. 반갑다. 그대로네. 잘 있었어? 또 바다 보고 나 기다렸다고? 고마워. 그래 넌 이제 항상 나하고 있지. 너도 알지?"
나는 작년에 여기 와서 이 소나무와 사랑에 빠져 나무 쳐다보느라 겨우 사진 한 장 찍었지. 그리고 그 해 가을에 소나무를 그렸었다.
어디 보자. 이 나무를 오른쪽으로 끼고 내려가면 3년 전인가 4년 전에 으아리 꽃이 있던 곳으로 내려가고, 좀 더 내려가면 차 한잔 할 수 있는 곳이 있었지."
나는 혼잣말을 하며 숲의 냄새를 맡으며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깔깔거리고 웃는 소리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두 세명씩 짝을 지어 다니는데 나는 혼자 다니는 걸 좋아했다. 내가 머물고 싶은 곳에 더 머물고 싶어서.
차 한잔을 마시려다가 뒤편에 넝쿨이 올라가는 모습이 보여 가보니 꽃은 없고 넝쿨에 잎을, 살아있노라고 조금 보여주는 듯했다. 그 넝쿨의 줄기가 내 마음을 물결처럼 흔들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