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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창숙 Sep 23. 2021

오미자

보타니컬 아트 그리고 시

넝쿨 속의 시간들


넝쿨의 굴곡이 땅을 일구며  살아온

어머니의  굽은 손가락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에

아예 굽어 버린 등


 "살아야지, 암, 살아내야지."


뱃속 품은 아이 살리려

낳아 놓은 아이 먹이려

긴 머리카락  자르시고


"얘야, 난 괜찮다." 하신 어머니


어머니는 무엇으로 남는가!


                            오미자 줄기  by빈창숙


 2019년 여름 천리포 수목원으로 향했다. 매년 한 번씩 오는 곳인데도 어떤 때는 이 꽃이 내 눈에 들어오고 어떤 때는 저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연신 전화기를 들고 사진을 찍어대는데, 나는 천천히 걸어 다니며 그 꽃의 자태나 나무의 자태를 보기만 하였다. 사진 안 찍고 뭐하느냐는 말에도 그냥 본다고만 했다.


너는 이렇게 피었구나!

작년과 같이 올 해도 만날 수 있어 고맙다.

엉! 그땐 여기에 이 꽃이 없었는데 내가 잘못 봤나!

그래! 너도 있었지.


들꽃 사이를 지나 나무숲으로 가면 나무들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노라 팔짱 끼고 있는 것처럼 여유를 부리는 것 같았다.


"네가 있었지. 반갑다. 그대로네. 잘 있었어? 또 바다 보고 나 기다렸다고? 고마워. 그래 넌 이제 항상 나하고 있지. 너도 알지?"


나는  작년에 여기 와서 이 소나무와 사랑에 빠져 나무 쳐다보느라 겨우 사진 한 장 찍었지. 그리고 그  해 가을에 소나무를 그렸었다. 


어디 보자. 이 나무를 오른쪽으로 끼고 내려가면 3년 전인가 4년 전에 으아리 꽃이 있던 곳으로 내려가고, 좀 더 내려가면 차 한잔 할 수 있는 곳이 있었지."


 나는 혼잣말을 하며 숲의 냄새를 맡으며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깔깔거리고 웃는 소리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두 세명씩 짝을 지어 다니는데 나는 혼자 다니는 걸 좋아했다. 내가 머물고 싶은 곳에 더 머물고 싶어서.


 차 한잔을 마시려다가 뒤편에 넝쿨이 올라가는 모습이 보여 가보니 꽃은 없고 넝쿨에 잎을, 살아있노라고 조금 보여주는 듯했다. 그 넝쿨의 줄기가 내 마음을 물결처럼 흔들어댔다 


내 할머니의 손등처럼,

내 할머니의 허리처럼,

내 할머니의 걸음걸이가,

거기 있었다.


그리고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숨어있는 작은 꽃은

할머니의  미소로 "나 여기 있다." 하였다.


사진 한 장만 찍었다.

여러 장 찍는 것조차도 설치는 마음 같아서...

할머니가 부산스럽다 하실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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