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예 작가의 글을 읽고
어디나 진상은 존재한다. 흔히 ‘JS’라고 말한다. 진상은 자기가 진상인 줄 모른다. 진상이 활동하는 시기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를 들면 아주 비가 많이 오는 날이나 반대로 맑은 날이다. 같이 있기 불편한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 내 맘 같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코드가 맞으면 관계없다. 정말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이코였다. 당해본 사람은 안다. 희한한 사람은 너무나 많다. 흔히 말하는 4차원을 넘어 상상을 초월한다. 나조차도 누군가에게는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남의 생각을 알 수가 없다. 화가 넘쳐나는 세상을 살고 있다. 툭 건드리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짜증 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일어나자부터 잠들기까지 별의별 일들이 발생한다. 싫으면 혼자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인간이 혼자 살 수 있는가. 그냥 신경을 안 쓰고 살아야 한다. 일일이 신경 쓰다 보면 미쳐버릴 것이다. 같이 이불을 덮고 자는 가족도 이해가 안 될 때도 많다. 하물며 일로 모인 직장 내에서는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근무하고 친분을 쌓았으면 어느 정도 이해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소한 문제로 완전 원수지간이 되는 것을 나도 경험했고 많이 봐왔다.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여러 유형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는 다양하다. 회사에서 손톱을 깎아서 더럽다. 타이핑 소리가 커서 방해가 된다는 등 수많은 사연이 올라온다. 그냥 내가 참고 넘기지 않으면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같이 있는 공간에서 남을 신경 쓰지 않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그 정도는 괜찮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절대 하면 안 된다는 사람으로 팽팽하게 맞선다. 옳고 그름을 판정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것들이 많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짜증은 시작된다. 늦었는데 엘리베이터는 왜 이렇게 늦게 내려오는지 열을 받기 시작한다. 상쾌한 마음으로 여유로운 출근 자체가 처음부터 힘들어진다. 지하철을 타면 사람은 메어 터진다. 백팩을 멘 사람들의 민폐를 참아가며 출근하면 내부의 진상들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지뢰밭을 잘 피하는 도리밖에 없다. 얼마 전에 공기정화에 좋은 파키라를 사다가 책상에 놓고 키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잎이 꺾여 있었다. 꺾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으니, 하소연도 못 한다.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 어디나 존재한다. 싫은 사람을 매일 봐야 하는 고통은 스트레스다. 내가 떠나든 네가 떠나야 해결된다. 인간관계가 가장 힘들다. 예전에는 조직문화가 선배의 말이라면 후배는 찍소리도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선배가 후배들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잘난 MZ세대와 꼰대들이 갈등은 차고도 넘친다. 이 책은 탕비실을 재현에 놓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진상들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다큐멘터리였지만 리얼리티쇼로 포맷을 바꾸게 된다. 소설은 마치 방송을 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을 대본으로 실제로 방송해도 괜찮을 것 같다. 이 쇼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미 방송국에서 설문조사를 통해서 동료들의 추천으로 선발된 회사의 진상들을 섭외했다. 참가자는 얼음, 텀블러, 혼잣말, 커피믹스, 케이크로 총 5명이 최종 참가를 한다. 원래는 8명이 참가했으나 3명이 포기를 했다. 이들의 별명은 다 이유가 있다. 공용 얼음 틀에 콜라 얼음, 커피 얼음을 얼려놓는 사람이 ‘얼음’이다. 20여 개의 텀블러 보유, 공용 싱크대에 안 씻은 텀블러를 늘어놓는 자칭 환경 운동가가 ‘텀블러’이다. 탕비실에서 중얼중얼 혼잣말하는 사람이 ‘혼잣말’이다. 인기 많은 커피믹스를 잔뜩 집어다가 자기 자리에 모아두는 사람이 ‘커피믹스’이다. 공용 냉장고에 케이크 박스를 몇 개씩 꽉꽉 넣어두고 집에 가져가지 않는 사람이 ‘케이크’이다. 그이 몇 명이 더 있었으나 참가하지 않았다. 공용 싱크대에서 아침마다 벼락같은 소리를 내면서 입을 헹구는 사람과 공용 전자레인지의 코드를 뽑고 무선 헤드셋을 충전하는 사람, 정수기 옆에 사용한 종이컵을 버리지 않고 쌓아두는 사람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술래를 찾기 위한 일주일간의 두되 게임이 시작된다. 각자 회사에서 진상으로 이름난 사람들이 탕비실을 이용한다. 탕비실의 체류시간은 100분으로 정해져 있다. 그리고 힌트를 얻는 방법은 규칙을 깨면 받게 된다. 결국 술래가 누구인지는 책을 읽어 보면 안다. 작가는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였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작가이기도 하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읽다가 말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끝까지 읽어봐야겠다. 탕비실에서는 각양각색의 과자들과 주전부리가 채워져 있다. 실제로 참가자들의 방은 사무실과 똑같이 만들어 놨다. 거기서 원래 하던 일을 하면 된다. 탕비실을 이용하고 힌트를 얻으면 된다. 참가자 중에 만들어진 캐릭터를 찾으면 된다. 힌트를 얻게 되면 주변 사람들의 음성파일이 재생된다. 진상짓을 동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생생하게 알게 된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으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떤 민폐를 끼치는지 모른다. 어떤 이유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자신만의 독특한 성격이나 환경이 있을 수도 있다. 혹 안다고 해도 그런 행동을 스스로 알아서 멈추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곤혹스럽다. 예전에는 머리 스타일도 내 맘대로 못 하게 했고 복장도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복장을 지적하는 회사는 드물다. 회사는 집이 아니기 때문에 집처럼 행동하면 안 되는 것이 맞다. 공용으로 쓰는 물건을 내 물건인 양 집에 가져가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얼마 안 되는 자잘한 것이라도 내 것이 아닌 이상 취하면 안 된다.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상식에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꼬집고 비튼 것이다. 싫어할 만한 행동은 자제하거나 하지 말아야 함에도 그것을 자행하는 우리 사회의 빌런들에게 이 책을 권유하고 싶다. 소리에 민감한 사람은 타이핑 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설 수 있고 오만가지 이유에서 싫을 수 있다. 결함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조금만 이해해 주는 배려심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온라인상에서의 폭력적인 댓글은 사람을 죽게 만든다. 앞으로도 반복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럴 수도 있다는 유연한 생각을 해야 한다. 나 하나쯤이 해도 된다는 생각이 질서를 파괴한다. 이기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면 안 된다. 다시 한번 내 생각과 행동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몰래카메라가 인기 있고 리얼리티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는 것은 연출 없이 인간의 행동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보고 있다면 행동에 제약이 있다. 도덕적으로 일탈행위를 하는 보통 사람은 없다. 대부분이 규칙과 예의를 지키고 같이 더불어 살기 위해 노력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의식 중에라도 어느 누군가한테는 불편함을 주고 무례함을 범하고 산다. 인간은 그래서 고귀하고 귀한 존재이지만 추악한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짝을 이루고 어느 한 사람을 도태시키기 마련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정답이 없다. 탕비실에서 일어나는 일뿐만 아니라 사람이 있는 곳은 불편한 일들이 일어난다. 법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우리가 모르지만, 다른 곳에서는 이상한 행동을 하고 다닐 수도 있다. 내 입장과 다른 사람의 입장은 큰 차이를 보인다.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고 갈등이 빚어진다. 대화로 풀어 나가면 안 될 일이 없고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면 싸울 일이 없다. 소설은 짧지만 많은 울림을 준다. 작가는 말한다. ‘싫음’에 관한 내 나름의 분출이다. 탕비실은 일상적 휴식의 공간이지만 원하는 만큼 무한정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내게 필요한 것이 구비되어 있지만 그것이 완전히 나의 소유는 아니다. 나에게 허락된 공간이지만 나에게만 허락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꼭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의 축소판과 같다고 말한다. 누가 나를 싫어하면 어찌할지 걱정하고 살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일부러 싫어하는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나를 챙기며 사는 것도 바쁘고 남을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그렇게 사람들이 남에게 관심이 있는 줄도 예전에는 몰랐고 나를 욕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나 같은 경우는 싫은 사람은 싫은 대로 좋은 사람은 좋은 대로 살았다. 예전에는 두루두루 친하기를 바랐던 것은 사실이다. 크게 싸우거나 대립하지 않았다. 내 이익을 기반으로 싸우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얼음을 얼려놓은 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얼려 놓은 것이다. 콜라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지나친 배려를 한 것이다. 지나친 관심과 배려는 오히려 그 사람을 오해하게 만든다. 내 물건은 그렇게 아끼면서 공용으로 쓰는 것은 물 쓰듯 쓰는 것은 진상이다. 같이 쓰는 물건을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집으로 가져가면 안 된다. 가져가라는 지시가 있다면 그럴 수 있다. 남 탓을 하기보다는 나 자신부터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작가는 힌트를 통해서 싫은 사람을 말하고자 한 것을 아닐까. 보편적인 싫음이다. 힌트는 이렇다. ‘편협한 사고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주의하십시오’, ‘습관적 거짓에 관계의 유통기한이 짧습니다’, ‘부주의한 언행은 싸움의 원인이 됩니다’, 상대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서 당신을 관찰하고 있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관찰하고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사람은 있는 것 같다. 무서운 현실이다. 술을 먹다 보면 많은 이야기 오고 간다. 저 부서 누구는 이렇다는 얘기가 안주다. 이렇게 동료나 선후배들이 애들처럼 남을 씹고 다니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심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알았다. 분노했지만 어쩔 수 없다. 되돌아보면 나도 술 먹으면서 상사를 욕했고 후배를 욕했다. 남 욕 안 하고 회사를 다닌 사람은 없을 것이다. 회사는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곳이다. 싫지만 다녀야 한다. 누구 눈치 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위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멋대로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왜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인권침해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발전한다. 확실한 선 긋기가 필요하다. 가족 같은 회사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회식은 없어졌고 각자 일하면 집에 가기에 바쁘다. 그것이 나는 나쁘지 않다. 끈끈한 우정과 끝까지 함께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변하는 것을 경험했다. 사람으로 인한 갈등이 가장 큰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 나처럼 남이 무엇을 하든 괘념치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사소한 것까지 관찰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솔직히 여기 나오는 진상짓들은 나는 개의치 않는 편이다. 그러나 지속을 하는가가 중요하다. 계속된다면 남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된다. 나 편해지자고 남에게 불편을 주지말자가 교훈이다. 내 맘대로 냉장고 맘대로 쓰고 커피믹스 챙기고 소란을 피울 거면 집에서 놀면 된다. 자영업을 하든가 프리랜서 선언을 하기 바란다. 성인이고 배운 사람이면 남에게 피를 주는 일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별 이상한 말이 회사는 떠돌아다닌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것을 발설한 사람이 바로 옆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조심해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웬만하면 들어주고 남에게 들은 이야기는 전파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 싸우지 말고, 둥글게 지내다가 나와야 한다. 다 지나면 추억이다. 그렇게 탕비실의 리얼리티 쇼는 시즌2를 기획한다. 내가 회사에서 이해 못 하는 진상 중의 진상은 맨발로 슬리퍼 신고 다니는 사람을 싫어한다. 무좀이라서 그런다고 하는데 그러면 회사 나올 때는 왜 구두 신고 나오는지 물어보고 싶다. 언젠가 후배한테 반바지 입고 다녀볼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러지 말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래서 하고 싶지만 더워도 입지 않았다. 그리고 회사 연못에 오리를 풀어놓고 키우는 것은 어떠냐고 물어봤다. 그것도 하지 말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게 물어봐야 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타인에게 물어보고 여러 사람에게 재가를 받으면 문제없다. 업무에 지장을 주는 여러 가지 개인적인 행동은 참아야 한다. 회사는 일로 모인 집단이지 개인의 취미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그래서 어항도 치워버렸다. 동료들과 융화해서 비유를 맞추거나 아니면 당당하고 자유롭게 조직을 나와서 프리랜서로 살거나 둘 중의 하나다. 탕비실도 사무실임을 명심하자.